[천자칼럼] 개가 풀 뜯어먹는 소리 ?
요즘 막말의 진원지는 정치판과 TV의 속칭 ‘떼토크(집단토크쇼)’다. 삼복더위에 수시로 쏟아지는 말의 홍수에 불쾌지수는 한껏 오르기 일쑤다. 자막에 ‘개뿔’이 버젓이 등장하고, ‘개가 풀 뜯어먹는 소리’ 같은 말도 심심찮게 들린다. 막말도 막말이지만, 뜻을 모르거나 잘못된 표현을 버젓이 쓰는 경우도 허다하다. 바른 언어생활을 위해선 TV부터 꺼야 할 판이다.

흔히 말도 안 되는 무의미한 주장을 가리켜 ‘개가 풀 뜯어먹는 소리’라고 하는데 이는 잘못된 표현이다. 잡식성인 개가 초식성인 소처럼 풀을 뜯어먹지는 않는 것이다 보니 그런 식으로 와전됐을 법하다. 개가 풀을 뜯는다는 말의 옳은 표현은 ‘개풀 뜯는 소리’다. 개풀은 개(犬)와는 무관한 ‘갯가에 난 풀’로, 하찮은 것을 가리킨다.

개뿔도 ‘개의 뿔’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실제로 “개는 뿔이 없으니 아주 보잘것없거나 작은 것을 속되게 비유할 때 개뿔이라고 한다”는 그럴싸한 설명을 버젓이 붙인 책이나 포털검색이 꽤 있다. 하지만 개뿔은 개의 뿔이 아니다. ‘개의 불(불알)’에서 나온 센 말이다. 개뿔과 같은 의미로 쓰이는 개코는 개의 코가 맞다. 요즘 정치판을 보노라면 “개뿔도 모르면서 개풀 뜯는 소리 한다”고 해야 할까.

‘쥐뿔도 모른다’고 할 때 쥐뿔도 개뿔처럼 ‘쥐의 불’에서 왔다. 본래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는 체하는 사람을 빗대 ‘쥐좆도 모른다’고 한 속담에서 유래했다. 쥐좆의 어감이 좋지 않으니 쥐뿔로 바꿔 부른 것이다. 김유정의 단편소설 ‘만부방’에는 “기껏 둘이 앉아서 개코쥐코 떠들다가…”라는 표현이 나온다. 쓸데없는 이야기로 이러쿵저러쿵하는 모양을 가리켜 ‘개코쥐코’라고 했다. 예부터 개나 쥐나 인간의 언어생활에선 똑같이 푸대접을 받았다.

정치판이 그렇듯이 언어도 근묵자흑(近墨者黑)이 되는 경우가 많다. ‘칠칠맞다’는 본래 ‘알차다, 단정하다’는 좋은 의미였지만 주로 ‘~지 못하다’와 어울리면서 진짜 칠칠치 못한 뉘앙스를 갖게 됐다. 또한 주책(일정하게 자리잡힌 생각), 채신(몸가짐이나 행동), 별수(특별한 수단), 엉터리(대강의 윤곽이나 골격) 등은 본래 긍정적 의미임에도 부정어(~없다)와 자주 어울려 쓰이다 보니 덩달아 부정적 의미까지 추가됐다.(조항범, ‘그런, 우리말은 없다’).

엊그제 국정원 국정조사 특위에서 국정원장을 불러놓고 “저게 저게 국정원장이야?”라고 한 국회의원이 검색어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십대 청소년도 아니고 먼저 째려봐서 그랬다는 데선 할 말을 잃게 만든다. 말은 인격과 성정을 드러내는 거울이라고 했다. ‘년’ ‘당신’ ‘귀태’ ‘저게’까지 나왔다. 또 무슨 단어가 등장할지.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