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방우체국-이옥희 인도 선교사] 데칸고원이 나를 불렀다

2013. 8. 4.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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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벗은 광야가 응답할 때까지 나무심고 기도해야죠"

뉴델리 사역을 접고 첸나이로 내려와서 안드라푸라데쉬주 데칸고원에 위치한 시골마을로 향할 때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더불어 약간의 설렘이 있었다. 데칸고원에 대해 아는 것은 세계지리 시간에 면화 생산지라고 배운 것뿐이었다. 하지만 오염되지 않은 푸르른 대자연의 품에서 순박한 사람들과 함께 뭔가 할 수 있다는 꿈, 상록수가 될 거라는 그런 기대가 있었다.

야간열차를 타고 야라군틀라역에서 내려 무다누르힐을 넘어 잠말라마두구에 도착했을 때 내 꿈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광야와 낮은 산들은 바위와 가시덤불투성이였고 곡식들이 자라야 할 들판은 가뭄으로 갈라져 있었다. 작은 집들은 딱정벌레처럼 땅에 붙어 있었다. 빈곤, 절망, 불가능이라는 말들이 일순간 머릿속을 휘저었다.

캠벨병원 안에 주어진 숙소는 그 지역에서는 가장 좋은 건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불편했다. 물, 전기, 음식, 식수, 더위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었다. 건물과 대지가 밤새도록 내뿜는 복사열과 날마다 쌓이는 먼지, 쥐들의 잦은 방문, 악취가 밤잠을 설치게 만들었다.

가장 힘든 것은 할 일이 없다는 것이었다. 캠벨병원은 100여년 전 세워진, 빈민을 위한 병원이었다. 환자들을 찾아가 기도하고 상담사역을 하라고 했지만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서로에게 편치 않았다. 일이 많은 도시로 나갈 궁리를 하면서 버텼지만 도시로 나기기 전까지는 일을 해야 해서 시골마을 방문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병원 중심으로 주변 마을을 방문했다. 딱히 할 일이 없어 시작한 방문이었지만 의외로 주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사람들의 요청에 따라 아난다뿌르, 카루눌, 카다파, 치뚜르 지역을 순회했다. 안드라푸라데쉬주가 남한 땅의 2.77배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남한 땅의 절반 정도를 순회한 것이다.

내 순회 지역을 하나로 묶어 '라열라씨마'라고 부르는데 '라열'은 '돌, 바위'라는 뜻이고 '씨마'는 '지역·지방'이라는 말이다. 라열라씨마는 데칸고원의 황량함과 척박함의 진수를 보여줬다. 사막화가 진행 중인 라열라씨마는 풀 한 포기 없이 헐벗은 광야, 폭양에 시달려 일사병에 걸린 것처럼 보이는 낮은 산들의 연속이었다. 비가 오면 농사를 짓고 비가 오지 않으면 농사를 지을 수없는 땅들은 배고파서 보채는 아기와 같았다.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을 방치한 사람들에 대한 분노가 일어났지만 곧 빈곤과 고통을 운명으로 알고 사는 달리트(불가촉천민) 계층의 형제자매들에 대한 동정과 연민이 나를 압도했다. 그들을 억압하는 고통과 파괴, 죽음의 악순환의 고리를 대지와 사람이 서로 돕고 섬기며 함께 사는 선순환의 구조로 바꾸고 싶었다.

무작정 나무를 심기로 작정했다. 데칸고원에 숲이 우거지고. 나무 그늘 아래서 아이들이 웃고, 목마른 사슴이 시냇가에 와서 목을 축이는 비전을 보았다. 푸른 숲을 만드는 일꾼이 되고 싶었다. 일정한 지역을 선정해 집중적으로 나무를 심고 가꾸어 숲의 사례를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역부족이었다. 재정도 부족하고 계획에 호응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러나 데칸고원에 샘이 넘치는 환상을 보며 땅의 회복을 위한 기도를 무시로 드렸다.

2001년 1월 드디어 청년들과 함께 나무를 심었다. 그늘도 생각하고 농가 수입도 생각하면서 석류, 구아바, 망고, 써포타, 싱가포르 체리, 라임, 님트리 등 다양한 과수 묘목들을 구입했다. 이후 하나님의 은혜로 단기선교팀과 함께 1년에 5∼6회 나무를 심을 수 있었다.

우리는 종교에 구애받지 않고 아무 집에나 들어가 인사를 나누고, 나무를 심고, 기도를 했다. 우리가 나무를 심으러 마을에 들어가면 축제가 열렸다. 우리를 영접해주는 주민들을 존경과 애정을 담은 눈빛으로 바라보며 최고의 축복을 빌어주었다. 기도하면서 울고, 사진 찍으면서 웃고, 작은 선물을 나누면서 포옹을 하며 주 안에서 형제자매가 된 기쁨을 함께 맛보았다.

주민들의 반응이 열렬해서 나무를 심은 마을마다 5년 후에는 숲을 보리라는 기대가 생겼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주민들은 생계 문제에 시달려 나무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전혀 없었다. 나무들은 소와 염소의 밥이 되고, 가뭄에 말라죽고, 사람들에게 뽑히고 해서 겨우 몇 그루만 생명을 부지했다. 그 결과야 어쨌든 나무심기 사역은 심심찮게 지역신문과 TV방송에 소개됐다.

아열대 기후에서 초목들은 물만 있으면 쑥쑥 잘 자란다. 물가에 심긴 코코넛나무가 1년 만에 2∼3미터씩 자란 것을 내 눈으로 확인했다. 기대했던 5년이 지났지만 어느 마을에서도 숲이 형성되지 않았다. 간혹 '싱가포르 체리'가 큰 그늘을 만든 것을 보았지만 유실수는 거의 다 죽었다.

코코넛나무 또한 4분의 1 정도만 건강하게 자라고 있고 나머지는 물 부족과 영양실조로 허덕이고 있다. 나무를 심어서 죽이는, 그런 나무 죽이기를 더 이상 할 수는 없었다. 아무리 나무와 숲의 소중함을 강조해도 헐벗고 목마른 시골 주민들은 나무를 가꿀 수 없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그들을 변화시켜 나무심기 협력자로 만들거나 아니면 나무심기 자체를 포기해야 했다.

2006년 1월, 여러 사람의 자문과 조언을 받은 끝에 나무를 코코넛나무 단일 수종으로 바꾸기로 했다. 코코넛나무는 뿌리와 줄기, 잎, 열매, 열매 껍질이 다 농가에 필요하고 열매와 잎을 팔아 수입을 얻을 수 있었다. 그래서 누구나 다 가꾸고 싶어 하지만 가격이 비싸고 묘목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실제 코코넛나무는 매우 비쌌다. 보통 나무는 10∼40루피로 구할 수 있는데 코코넛나무는 한 그루당 100∼150루피였다. 게다가 묘목의 크기가 커서 운송하기도 힘들고 구덩이를 파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어서 코코넛나무를 선택했다. 과연 인도의 형제자매들이 나무를 잘 가꿀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자칫하면 또 돈만 날리고 헛수고하게 된다는 생각이 들어 나무를 잘 가꾼 사람에게 연말에 큰 상을 주기로 막연하게 약속을 했다.

가을 내내 약속대로 상을 주어야 한다는 것과 무슨 상을 줄 것인지, 또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를 고심한 끝에 염소를 상으로 주기로 했다. 안타깝게도 나의 약속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50여 가구에서 나무를 살린 사람은 5가구밖에 되지 않았는데 그마저 염소가 먹고 사람들에게 찢겨 상처투성이였다. 5마리를 상으로 주고 나머지는 다시 숙소로 가져오려 하니 마음이 불편해 마을교회 담임목회자와 교회 청소를 담당하시는 분들에게 드리고 왔다.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마을의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사람들이 나무를 잘 가꾸게 됐다. 덕분에 해마다 평균 100마리 이상의 염소를 마을 주민들과 나누게 됐다 요즘은 돼지와 닭을 나누는 일이 더해져 한 해에 200여 마리를 나누고 있다. 염소를 나눈 뒤 새끼를 밴 염소를 교회로 끌고 와 자랑하며 보여주는 형제자매들을 만나기도 한다.

데칸고원이 나를 불렀다. 헐벗고 배고프고 목마르고 병든 자기를 보라고. 자기를 태초의 하나님의 동산으로 회복시키라고. 나로서는 불가능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데칸고원의 숲이 우거진 환상을 보고 있다. 인도에 세워지고 있는 희망공동체 부지 안에 묘목원을 두고자 하는 것은 우리 달리트 아이들에게 숲의 비전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이옥희 인도 선교사

● 이옥희 선교사

-1956년, 전북 이리여고·한신대·한신대 신대원 졸업, 1991년 목사 안수

-기장 총회·전서노회 1997년 파송

-기장 총회 파송 남인도교단 선교사(현)

-비전아시아미션 파송 인도선교사(현)

-인도독립교단 실맛신학교 한국 협력 책임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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