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 가출 아름이의 고백 "조건만남 남자들.."

박소연 기자 2013. 7. 29. 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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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떠나는 아이들①]길 위의 소녀 아름이가 겪은 '지옥'

[머니투데이 박소연기자][편집자주] 가출청소년들이 신음하고 있다. 사회와 국가의 무관심 속에서 오늘도 불나방처럼 거리를 헤매고 있다. 살기 위해 몸을 팔고 먹기 위해 범죄의 유혹에 빠지고 있다. 가출청소년들은 이미 사회의 '시한폭탄'이 된 지 오래다.

대검찰청 범죄분석에 따르면 2011년 18세 이하 청소년범죄는 8만3060건(검거 기준)으로 전체 범죄(190만2700건)의 4.3%를 차지했다. 이 같은 범죄 가운데 대다수가 가출청소년과 연관돼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 이상 청소년 가출 문제를 개인이나 가정 문제로 넘기기만은 힘든 현실이다.

머니투데이는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가출청소년을 조명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우리의 아들·딸이자 미래의 버팀목이 될 청소년들의 아픔을 돌아보고, 이제라도 이들을 제대로 보듬어 보고자 하기 위함이다.

[[집떠나는 아이들①]길 위의 소녀 아름이가 겪은 '지옥']

2년 전인 17살 여름 아름이(가명)는 매독이란 병을 알게 됐다.

"매독 2차네. 치료 안 하면 큰일 날 수도 있어." 의사가 무심하게 말했다. '괜찮아요. 어차피 애도 못 낳는 몸인걸.' 아름이는 입술을 깨물었다.

가출 이후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매일 한 차례 꼴로 '조건만남' 성관계를 가져온 결과였다. 만남 상대 중엔 대학 교수부터 대학조교, 강력계 형사, 공무원, 일용직 노동자까지 있었다.

집을 나오던 그날 아침은 생각나지 않는다. 그저 어렸을 때부터 쌓였던 분노가 터져버렸다는 기억만 있을 뿐.

집은 지긋지긋한 '족쇄'였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의고 아름이는 손바닥만한 영세민 아파트에서 어머니와 할아버지, 할머니와 살았다. 택시기사였던 어머니는 항상 밤늦게 집으로 돌아와 아름에게 화풀이를 해댔다. 할아버지도 아들을 잃은 화를 손녀에게 풀었다.

"지옥이었어. 별 이유도 없이 회초리로 두들겨 맞고·‥. 남들 눈에 잘 띄지 않는 허벅지 같은 곳만. 엄마도, 할머니도 그냥 매맞는 걸 보기만 했어요."

날마다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유전적 이유로 어린 나이에 당뇨를 앓던 허약체질이지만 가족의 따스한 보호는 받은 적이 없었다.

학교도 아름이를 감싸 안지 못했다. 아름이는 중학교 때부터 '왕따'를 당했다. 친구들은 당뇨병에 걸리고 학습 능력이 떨어지는 아름이를 무시하고 놀려댔다. 언젠가 교실에서 반장이 물건을 잃어버렸는데 친구들이 모두 아름이가 훔쳤다고 몰아갔다. 선생님도 아름이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 이후 아름이는 진짜로 친구 물건을 훔치기 시작했다. 무단결석과 조퇴도 늘어갔다. 선생님은 일찍이 아름이를 '포기'했다. 간신히 실업계 고등학교에 입학했지만 왕따는 여전했고, 아름이는 학교에서 점점 더 멀어져갔다.

아름이는 세상으로부터 버려졌다고 생각했다. 할아버지에게 또 다시 맞아 얼굴이 시퍼렇게 멍든 어느 날 새벽 아름이는 남자친구와 집을 나왔다.

주로 목포, 광주 등의 여관을 전전했다. 여관비를 마련하기 어려운 날은 PC방과 찜질방에서 밤을 지샜다. 사정이 안 좋으면 빌라 옥상에서 박스 깔고 버티기도 했다.

↑'조건만남'은 종종 '범죄'로 이어진다. 서울 마포경찰서는 지난 5월 15일 성매수 남성을 유인한 뒤 폭행, 협박해 금품을 뜯어낸 혐의(강도상해 등)로 김모군(18) 등 3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성매매한 곽모양(14·여)도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사진(위)은 성매수남을 유인하는 채팅창. 사진(아래)은 가출팸이 성매수남과 주고받은 카카오톡 내용. /사진=마포경찰서 제공

조건만남은 중요한 '생계수단'이 됐다. 관계 후 돈을 순순히 주는 어른은 10명에 4명도 되지 않았다. 돈을 주기 싫어 얼굴을 때리는 건 기본이었다. 베개로 얼굴을 틀어막아 숨을 못 쉬게 하거나 목을 졸랐다. "얼굴이 못생겼다"는 이유를 들며 폭행을 가하고 돈을 안 주는 남성들도 있었다.

아름이는 평범한 여성들처럼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는 꿈은 꾸지 않는다. 사망한 아버지가 남긴 유일한 유산인 '당뇨'로 임신에 성공해도 착상이 어려운 터였다.

하루에 한 끼 쌀밥을 먹으면 운이 좋았다. 대부분 컵라면이나 빵, 우유로 끼니를 때웠다. 몇 달이 지나 배고픔을 못 이긴 남자친구가 정부에서 운영하는 쉼터를 가자고 했지만 아름이는 거부했다.

"가출한 친구들이 쉼터에 갔다가 오히려 상처받고 나오더라고요. 그냥 '빨리 집에 들어가라'라는 소리만 반복한다고‥."

쉼터에선 친부에게 성폭행해서 도망친 아이를 고모나 이모한테 인계를 했다.

소송이나 접근금지 등 사후대책은 없었다. 아버지가 술주정에 폭행을 해서 들어가도 단순하게 며칠 데리고 있다가 어머니에게 보내는 게 전부다.

아름이도 하루 종일 아무 것도 먹지 못했던 어느 날 인터넷에서 쉼터를 찾아봤다. 하지만 '청소년상담센터'라고 올려놓은 글은 하나같이 똑같은 내용의 복사+붙여넣기의 반복이었다. 이런 공감 없는 상담 글을 믿고 갈 용기가 안 났다. 어차피 조금만 길게 있으려 하면 나가라고 눈치를 주고 쉼터 안에서 텃세도 심하다고 했다. 배고파도 둘이 이겨내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결국 두 사람이 택한 것은 '범죄'였다. 처음엔 겁먹던 아름이도 조건만남에서 어른들이 들킬 것을 두려워한다는 약점을 알게 되자 악용할 방법을 떠올렸다.

조건만남을 하는 동안 남자친구가 친오빠인 것 마냥 소리치면서 방에 들어오게 했다. 성매수남이 화장실에 숨으면 지갑에 있는 돈을 가지고 나왔다.

찜질방에서 자는 사람의 락커룸 키를 몰래 가지고 나와서 열고 돈을 빼는 일은 일상사가 됐다. 찜질방에서 휴대폰을 훔치는 것도 '식은죽 먹기'였다. 훔친 휴대폰을 인터넷 '중고 사이트' 에서 업자들에게 넘기면 현금이 들어왔다.

남자친구가 합법적으로 돈 벌 노력을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한동안 인력소에서 일거리를 받아 일했다. 공장 청소, 전단지 배포 등을 무작위로 배정받아 일당 7~9만원을 받으면 10%는 인력소에 소개비로 넘겼다. 인력소엔 한눈에도 가출한 것으로 보이는 미성년자가 차고 넘쳤다. 신분증 검사도 없었다. 택배 상하차 알바는 '지옥알바'로 악명이 높을 정도로 힘이 들어 10명중 2명은 미성년자였다.

하지만 서서히 남자친구도 가출 소년들이 겪는 수순을 따르기 시작했다. 첫 번째 단계는 '아리랑치기'. 술집이나 나이트클럽 주변을 맴돌며 취객들의 금품을 빼앗는 건 비교적 쉬운 범죄였다. 거리에서 어린 학생들 코 묻은 돈을 뜯기도 했다. 처음엔 겁이 났지만 몇 번 반복하더니 '선수'가 됐다. 다음 단계는 '퍽치기'와 '강도질'. 가출한 남자애들 중엔 막대기나 쇠파이프, 벽돌까지 동원해 퍽치기를 하는 경우가 다반사였지만 남자친구는 '가출팸'(가출한 청소년들이 함께 사는 무리를 일컫는 말)에 들어가지 않았고 같이 범행할 친구가 없어 하지 못했다.

이들의 범죄 행각은 찜질방에서 돈을 훔친 장면이 CC(폐쇄회로)TV에 찍히면서 10개월 만에 막을 내렸다. 재판에서 남자친구는 죄를 뒤집어썼다. 아름이를 위해 그가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일이었다. 아름이는 집행유예로 풀려났고 남자친구는 징역 10월을 살았다.

하지만 아름이는 집에 돌아가지 않았다. 아직도 가출생활을 하며 길거리를 헤매고 있다. 가출소녀들은 처음엔 조건만남을 시작해 점차 키스방, 가요주점, 성매매 업소나 다방으로 흘러가게 된다. 19살이 된 아름이도 현재 10살 연상의 다른 남자친구를 새로 만나 다방과 주점 여러 곳을 전전하며 돈을 벌고 있다.

"집에 들어 갈 생각은 없어요. 보고 싶은 가족도 없고, 친구도 없고. 저를 찾지도 않는데요, 뭘. 나중에 후회한다고요? 아마도 그럴 일은 없을 걸요. 그 지옥을 또 들어가라고요? 난 한 번도 가출을 후회해본 적은 없어요. 제가 집으로 가야 하는 이유를 하나만 말해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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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박소연기자 soyu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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