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병호 게임' 아닌, 이 연극의 감동을 느껴보세요"

2013. 7. 20.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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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박정환 기자]

▲ 손병호

< 8월의 축제 > 로 8년 만에 무대에 서는 손병호

ⓒ 박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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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악역 전문 배우로 알려졌지만 지금은 '예능 늦둥이'로 불리는 배우가 있다. 손병호가 그렇다. 세월이 지나면 지날수록 악역이라는 독기가 빠진 빈자리에는 인간적인 면모가 스며드는 배우 말이다.

그런데 그가 연극배우 출신이라는 걸 아는 대중은 많지 않을 듯하다. 손병호가 연극 < 8월의 축제 > 로 무대로 복귀했다. 8년 만에 무대에 서는 손병호를 대학로에서 만나보았다.

- 8년 만에 연극 무대로 복귀했다.

"대학로 연극배우 출신이라 무대가 항상 그리웠다. 연극은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서 하는 작업이다 보니 그동안 시간을 내지 못한 것 같다. 따뜻하고 감동적인 < 8월의 축제 > 는 가족의 사랑이야기를 담고 있다. 죽은 딸을 떠나보내고, 죽은 딸을 떠나보내지 못하고 기다리는 사위를 떠나보내는 아버지의 이야기다.

붙잡고 싶은 것이 사랑이다. 하지만 떠나보내야 할 때 보낼 줄 아는 것이 진정한 사랑의 완성이라고 생각한다. 부모의 입장에서 이 연극을 보면 자식을 생각할 수 있다. 반대로 자식의 입장에서 관람하면 부모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는 작품이다."

- 실제로 딸을 키우는 아버지의 입장에서 아련함과 애틋함이라는 감정이 연기 가운데서 절로 묻어날 것 같다.

"두 딸을 키우는 아빠의 입장에서 대입한다면 미칠 것 같다.(웃음) 딸을 키우지 않는다면 모를까. 만일 딸이 저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고 딸이 사랑했던 남편 주위에 자꾸만 딸이 나타난다면 그런 딸을 위해 무얼 할 것인가, 사위를 어떻게 보듬어 안을 것인가를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질 때가 있다."

- 죽은 딸을 놓아주어야 하고 죽은 딸을 잊지 못해 재가를 하지 않는 사위를 놓아주어야 한다. 손병호가 생각하는 '놓아준다'는 건 무엇일까?

"삶은 인연이라고 본다. 머물러 있으면 작은 인연 밖에 닿지 않는다. 하지만 여행을 가면 또 다른 인연이 생긴다. 죽은 딸을 잊지 못하고 3년 동안 자신을 희생하는 사위를 장인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씁쓸하다. 사위를 자식 같은 마음으로 본다면 새로운 인연을 찾아가도록 하는 게 진정한 부모의 마음이 아닌가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잊혀지기 싫은 인간의 갈망 담았다"

- 손병호의 눈으로 바라보는 죽음이란 어떤 의미일까?

"아버지와 형, 고모 및 장인어른까지 4년마다 가족을 떠나보내야만 했다. 그때 깨달은 게 '(고인을) 잊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이었다. 돌아가신 분을 잊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지만 막상 살다 보면 잊게 된다. '내가 만약 죽으면 나 또한 잊혀지겠지' 하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제가 죽고 난 후 친구나 선후배들, 주위 사람들이 저의 존재를 잊는다면 화가 날 것 같다. 그래서 고인이 (잊혀지는 게 싫어서) 귀신이 되어 나타날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고인이 살아있을 때 아무리 사랑하고, 작고했을 때 많은 눈물을 흘려도 어느 순간에는 고인을 잊는다.

연극 속 딸도 잊혀진다는 것 때문에 고인이 되어서도 나타나는 게 아닐까. (자신의 존재가) 잊혀지길 싫어하는 딸의 심정을 알 것만 같다. 살면서 누군가에게 잊혀진다는 게 제일 아픈 것 같다. 누군가에게 잊혀지기 싫은 건 인간의 제일 큰 갈망 가운데 하나다."

- '손병호 게임'이 있을 정도로, '예능 늦둥이'로도 대중에게 알려졌다. 연극 팬이라면 8년 만에 무대로 복귀한다고 알고는 있지만, 일반 대중은 예능을 하던 손병호가 무대에 오른다고 반응할 것 같다.

"예전의 손병호라면 악역 전문 배우로 알려졌겠지만, 지금은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서 '재미있는 사람이네?'라고 반응할 정도로 이미지가 바뀌었다. 이 연극을 하면서 걱정되는 건 관객이 제가 선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코미디가 아닐까?' 혹은 '손병호 게임하는 거 아냐?' 하는 반응이 나올까 하는 점이다.

만일 이런 관객 분이 있다면 이 연극이 제공하는 감동을 통해 '손병호에게 이런 진지한 면이 있었네?' 하는 걸 느끼고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손병호라는 배우가 무대에도 어울릴 수 있구나 하는 바람을 관객이 가졌으면 좋겠다."

"시시한 배우는 있을 지언정, 시시한 역할은 없다"

▲ 손병호

< 8월의 축제 > 로 8년 만에 무대에 서는 손병호

ⓒ 박정환

- < 8월의 축제 > 는 가족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면서 감동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요즘은 감동에 목말라 하는 세상이다.

"감동은 깨닫는 것이라고 본다. 자연을 통해서든 혹은 작품이나 음악을 통해서든 이를 통해 자신을 변화할 수 있는 깨달음을 감동이라고 본다. 나는 등산을 좋아한다. 산에 오르면 저 자신을 버릴 수 있게 된다.

몰랐던 부분들을 깨닫고 감사할 수 있는 과정을 등산을 통해 얻을 수 있다. 자기 자신이 변화할 수 있는 것, 변화할 수 있도록 깨달음을 주는 모든 것들이 감동이라고 본다. 자기 자신이 변하면 이전에는 보기 싫은 것이나 지저분한 것도 아름답게 볼 수 있다."

- 어떻게 오태석 연출가의 수제자가 되었는가?

"어떤 분야든 내가 꿈꾸는 걸 누군가가 하고 있는 경우를 겪을 때가 있다. 저 나름대로 연극을 공부하고 연기라는 걸 깨달을 무렵에 누군가가 제가 생각하던 걸 하고 있었다. '앞으로 이런 연극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던 때에 누군가가 제가 꿈꾸던 연극을 하면 돌아버릴 것만 같다. 저 사람은 어떤 상상과 어법으로 만들었을까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다.

왜? 저렇게는 못 만드니까. 이걸 만든 장인에게 가봐야 하는 게 순리다. 그래서 찾아간 사람이 오태석 연출가다. 오 연출가의 작품 세계를 깨닫기까지 4년이 걸렸다. 예전에는 무엇이 잘못되었는가에 대해 설명을 해주지 않아서 답답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스스로 깨닫게 만들려는 의도였다.

제가 후배들에게 연기 동선을 이야기하면 그때뿐이지 지나고 나면 제가 가르쳐준 지적을 잊는다. 4년이 지나고 나니 오 연출가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되어서 제가 혼자 알아서 움직이게 되더라.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게 깨달음이다.

오 연출가를 통해 깨달음을 얻기 전까지는 '내가 배우가 아닌가?' 혹은 '배우를 그만두어야 하나?'하는 아픔의 시간이 있었다. 스승 복이 많은 사람이 저라고 생각한다. 여러 분야의 대가를 만나 작업할 일이 많았다. 이분들을 만난 것이 손병호를 배우로 서게 만든 행복이 아닌가 생각한다."

- 대기만성형의 배우다. 젊어서부터 주목을 받았으면 하는 아쉬움은 없었는가?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TV나 영화로 일찍 진출한 동기나 후배가 있다. 당시에는 저보다 출발이 빨랐다. 하지만 지금 와서 보면 반대가 되어 있다. 깊이의 차이에서 비롯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처음에 작품을 빨리 만나는 것도 좋지만 작품을 만들기 위해 어떻게 다지고, 많은 시행착오도 해보고, 여러 가지 형태로 조합하다보면 배우 자신만의 철학이 생긴다. 배우는 자기 철학이 분명해야 한다. 자기 철학이 다져지지 않으면 (연기하면서) 흔들리게 된다.

자기 철학이 없다 보니 잘 나가던 동기나 후배들이 어느 순간부터 사라진다.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승승장구 잘 나가던 후배가 저를 보고 하는 말이 있다. 형이 부럽다고 말이다. 자신은 너무 빨리 달려와서 후회가 된다는 것이다. 무대 위에서 연마하고 깨닫고 자신의 관념을 채울 수만 있다면 어떤 상황이 닥쳐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제가 못 하는 역할이 있는 것 같다. 러브라인은 못할 것 같다.(웃음)"

- 연기 철학이 확고할 것 같다.

"시시한 배우는 있을지언정 시시한 역할은 없다. 영화에서 아무리 작은 역할의 캐릭터일지라도 강렬한 연기를 펼친다면 관객은 그 배우를 잊지 못한다. 그건 배우가 만들어야 하는 몫이다. 비록 자그마한 역할을 맡더라도 치밀하게 분석하고 노력해서 극 중의 인물을 창조적으로 만드는 게 중요하다.

이런 마음가짐을 갖고 작품을 대하다보니 작은 역할 하나에도 무언가 최선을 다하려 하고 캐릭터에 맞는 철저한 분석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작은 것 하나가 좋아야 큰 게 이루어진다고 본다. 작은 부분들이 잘 다져져야 엄청나게 단단해질 수 있다. 그것이 연기에도 적용되지 않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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