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악마가 될 수 있다

2013. 7. 15.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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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 엽기살인 피의자 심군..평범했던 10대 소년이 왜?

부유한 가정서 학창생활왕따도 없었고 영어 특히 잘해

알바시절 서글서글하고 성실홍대앞에서 밴드공연 하기도

전문가들 "사이코패스 단정금물"사회성 장애 '소시오패스' 가까워

10대 여성을 성폭행 후 살해하고 잔혹하게 시신까지 훼손한 심모(19) 군의 현장검증이 이뤄졌던 지난 12일 경기도 용인시의 한 모텔 앞. 세차게 내리는 빗줄기 속에서도 수십명의 시민이 몰렸다. 현장검증은 예상보다 훨씬 오래 걸린 2시간이 지나서야 끝났지만 자리를 떠나는 사람은 찾기 어려웠다. 시민들은 한목소리로 "이렇게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악마 같은 놈의 얼굴을 보고 욕이라도 한 마디 해야 속이 시원하겠다"고 목청을 높였다. 일부 시민은 범행 재연을 마치고 호송차를 타고 이동하는 심 군을 향해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하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과연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엽기 살인범 심 군은 그야말로 악마였을까?

▶밴드 그룹 데뷔를 꿈꾸던 기타리스트=심 군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한목소리로 "그런 일을 저지를 사람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고 말했다. 심 군의 지인들에 따르면 심 군은 무역업을 하는 아버지와 교사인 어머니 밑에서 남부러울 것 없이 자랐다. 그는 음악, 특히 기타에 관심이 많았고 교내 밴드부 활동은 물론, 서울 홍대 앞에서 기타 공연까지 했다. 음악에 몰두하고 싶어했던 심 군은 부모님과 상의해 고교 1학년 때 자퇴하기도 했다. 어머니 설득으로 심 군은 복학했지만 2학년 때 다시 음악을 위해 자퇴했다.

심 군이 1년간 아르바이트를 한 용인의 한 호프집 사장 A 씨는 그를 "완벽한 알바"라고 기억했다. A 씨는 "손님들에게 서글서글하게 대하는 것은 물론, 알바생들과도 사이가 좋고 굉장히 성실하게 일했던 아이였다"며 "너무 일을 잘해 알바생 가운데서도 시급을 가장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A 씨는 "심 군이 알바비를 모아 음악학원을 다니고 악기를 구입할 정도로 성실했고 가끔 친구들이 일부러 찾아오면 서비스를 꼭 챙겨주는 자상함도 있었다"며 "심 군이 그런 범죄를 저지를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말했다.

학교 친구들도 평범했던 그를 회상하며 범행을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밴드부 2년 선배인 이모(21) 씨는 "음악을 좋아하는 평범한 후배였다. 담배를 피우는 등 다소 껄렁한 기운이 있긴 했지만 일진 등 문제를 일으키는 스타일은 아니었다"고 기억했다. 이 씨는 또 "하루는 꽤 비싼 기타앰프(신호를 키워 소리를 커지게 하는 장비)를 학교에 가져와서 애들이 다 놀란 적이 있었다. 우리가 막 신기해했는데 '아버지가 생일선물로 사줬다'고 했다"며 "가정형편이 나쁘지 않았고 부모님이 음악을 반대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정말 이해가 안 된다. 성격에 문제가 있었던 아이도 아닌데 그렇게 평범하던 애가 어떻게 그토록 잔혹한 범죄를 저질렀는지 모르겠다"며 머리를 흔들었다.

▶"약간 허세를 부렸지만 평범한 아이" "아버지가 자랑하던 아이, 내성적으로 보였다"=중학교 때부터 가깝게 지냈다는 박 모(19) 군은 "범인이 심 군이라는 소문이 돌 때조차 믿지 않았다"며 "학교에서도 사고 한 번 안 치던 아이다. 오히려 존재감이 없을 정도로 평범한 친구였다"고 말했다. 박 군은 "약간 허세를 부린 면이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사춘기 또래의 그것과 별 다른 부분이 없었다. 성적도 나쁘지 않았다. 특히 영어를 잘했다. 왕따 같은 괴롭힘도 당하지 않았다"고 기억했다.

동네 주민들도 마찬가지로 심 군을 평범한 아이로 기억했다. 심 군의 집 인근에 있는 한 음식점 사장 B 씨는 "심 군의 가족이 지난 2011년 말 이사를 왔다. 동네 주민들과는 자주 왕래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특별히 문제 있는 집이라는 생각은 안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심 군의 아버지가 한 때 '우리 아들은 기타를 정말 잘 치고 홍대에서 길거리 공연도 한다'며 아들을 자랑한 적이 있다"고 떠올렸다. B 씨는 "심 씨의 가족들이 두 번 정도 찾아와 밥을 먹고 갔는데 당시 심 군은 내성적인 사춘기 소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며 어떻게 이런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고개를 흔들었다.

▶전문가, "특별한 인격장애는 보이지 않는다"=전문가들도 심 군을 사이코패스와 같은 특별한 인격장애로 보는 것을 경계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심 군은 자퇴 등을 통한 폐쇄적 환경 속에서 반사회적 사회성 장애를 지닌 소시오패스(sociopath)에 가깝다"며 "소시오패스는 우리 주변의 가정, 학교, 사회에서도 쉽게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이 사회와의 부정적 관계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의도치 않은 살인을 저지른 경우 현장에서 벗어나고 들키지 않으려는 생각에 사체를 훼손하는 경우가 있다"며 "심 군의 경우도 범행 정도가 말할 수 없이 잔혹하지만 이는 계획적인 것이 아닌 당장 경찰에 잡히지 않기 위한 심리"라고 지적했다.

경찰은 현장검증 내용을 바탕으로 심 군에 대한 보강 수사를 한 뒤, 이번주 중 사건을 검찰에 송치할 계획이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미디어나 성장환경에서 받은 부정적 영향이 일정한 수준을 넘는 자극이 될 때 터지는 '점화효과'라는 것이 있다"며 "심 군의 경우도 겉으로는 평범하고 문제없어 보이지만 은연중에 봤던 음란물, 폭력물이 성폭행, 살인행위 등의 과정을 통해 내재된 잔혹성을 자극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용인=서상범 기자ㆍ김다빈ㆍ강대한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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