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인사이드] 격투기 익힌 100kg 남학생, 女性에 왜 그냥 당했나

정경화 기자 입력 2013. 7. 12. 03:13 수정 2013. 7. 12.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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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거하던 10대 제자 살해한 女과외교사 미스터리

지난달 29일 인천의 한 원룸에서 고교 중퇴생 권모(16)군이 온몸에 3도 화상을 입고 염증으로 인한 패혈증으로 숨졌다. 인천 연수경찰서는 지난 2월부터 권군과 동거하며 과외 교습을 해주던 이모(여·29)씨를 유력 용의자로 검거했다. 이씨는 경찰에서 "(권군이) 성폭행하려 해 정당방위 차원에서 끓는 물을 뿌리고 골프채를 휘둘렀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경찰은 "조사 결과 권군이 성폭행을 시도하지 않았고, 이씨가 다른 이유로 불만이 폭발해 권군에게 끓는 물을 붓고 구타한 후 사흘간 치료하지 않고 방치해 사망에 이르게 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동거 기간 이씨가 권군을 '훈육'한다는 핑계로 애완동물처럼 수차례 폭행해왔던 정황도 확보했다.

경찰은 지난 8일 이씨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지만 의문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100㎏이 넘는 체구에 격투기까지 익힌 권군이 키160㎝ 정도인 여자 한 명에게 그런 폭행을 당할 수 있었는지부터 의문이며, 이씨가 권군을 살해한 진짜 동기도 추론하기 어렵다.

이 의문을 풀기 위해선 권군과 이씨가 처음 만난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권군은 작년 4월 말 다니던 강릉 J고교에서 교생실습 나온 이씨를 만났다. 당시 권군이 처음 관심을 가진 것은 이씨가 아니라 이씨의 고교·대학 동기인 또 다른 교생 A(29)씨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교생 평가를 맡았던 한 교사는 "두 교생이 지나치게 학생들과 사적으로 어울려 실습 점수 최하점을 줬다"고 말했다.

교생 실습이 끝난 뒤 이씨는 권군에게 과외 지도를 하며 계속 만났다. 권군의 아버지(45)는 "이씨가 아들에게 '공부 열심히 하면 A씨와 사귀게 해주겠다'고 제안해 과외를 시작하게 된 것으로 안다"고 했다. 이 과외 덕에 꼴찌에 가까웠던 권군은 반에서 10등 안에 들 만큼 성적이 올랐다. 권군 부모도 이씨를 신뢰하게 됐다.

그러나 권군은 11월부터 검정고시를 보겠다며 학교에 나가지 않았고, 12월 6일 자퇴했다. 급우였던 김모(16)군은 "너무 교생 선생님에게 집착하는 것 아니냐고 질책한 적이 있다"고 했다. 이씨와 A씨는 인천 출신이지만 강릉의 한 사립대에 다녔고, 대학 4학년 기말고사가 끝나자 인천으로 돌아갔다. 권군은 부모 반대에도 지난 2월 초 인천으로 가 이씨의 원룸에서 동거를 시작했다.

권군의 아버지는 "교생이 아들에게 방을 따로 얻어 줄 것으로 믿었다"며 "아들 원룸이 어디냐고 두 차례 물었으나 이씨가 알려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권군 아버지는 아들 생활비 명목으로 이씨에게 월 40만원씩, 최근 2개월은 70만원씩 보냈다.

경찰에 따르면, 권군은 이씨의 원룸에 살면서 폭행도 감내할 만큼 '절대복종'했다. 인근 주민들 역시 "그 방에서 때리고 싸우는 듯한 소리에 시끄러워 잠을 잘 수 없을 때도 있었다"고 했다. 경찰이 이렇게 판단한 것은 지난달 30일 이씨의 남자 친구 B(29)씨가 권군이 이씨를 성폭행한 증거라며 낸 2분짜리 동영상을 보고서였다.

지난달 25일 오전 "권군이 나를 성폭행하려 한다"는 이씨의 전화를 받고 급히 달려간 B씨가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이 영상에는 속옷만 입은 채 바닥에 앉아 울고 있는 이씨와 맞은편 화장실 문 앞에서 속옷만 입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권군 모습이 담겨 있다. B씨가 "성폭행했느냐"고 추궁하자 "아니다"고 부인하던 권군이 "(내가 아니라) 누나가 먼저"라고 대답하는 도중 촬영이 갑자기 중단됐다. 인천연수경찰서 박재진 강력팀장은 "권군이 두려움에 떨며 말도 제대로 못 했지만 '누나가 먼저 접근했다'는 내용을 말할 때만은 단호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씨와 권군, B씨의 스마트폰을 곧바로 압수해 이미 지워진 세 사람 사이의 메신저 대화 내용을 복구했다. 그 결과 이씨가 뜨거운 물을 권군에게 부은 것은 이씨가 처음 진술했던 27일 오전 1시가 아닌 26일 오후 3시쯤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6일 이씨는 경찰의 추궁에 "성폭행이 아니었다"고 인정하고, 누워있던 권군의 얼굴과 몸 전체에 끓는 물 4L가량을 부어 제압한 뒤 골프채를 휘둘렀다고 진술했다고 경찰은 말했다. 경찰은 "권군이 계속 자기 친구인 A씨를 좋아하는 것에 이씨가 강한 질투심을 느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간의 동거 행태를 볼 때 이씨의 단독 범행이 가능했을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인천지방경찰청 과학수사대 프로파일러(범죄심리분석관)도 이씨에 대해 "집착과 질투가 강하고 '성격장애' 증상을 보인다"는 소견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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