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째 영정사진 봉사' 동주대 박희진 교수
【부산=뉴시스】하경민 기자 = 부산의 한 대학 교수가 '영정사진 찍기'라는 독특한 영역에서 18년째 재능나눔 봉사를 이어가고 있다.
주인공은 동주대 방송영상과 박희진(50) 교수.
박희진 교수는 1996년부터 경제 사정이 어려운 노인들의 영정사진을 무료로 찍어주기 시작해 18년째 1만6000여 명의 영정사진을 촬영했다.
대학에서 다큐멘터리 사진을 전공한 그는 선전 선동으로서의 사진의 힘과 사회성을 누구보다 굳게 믿었지만 갤러리 안에서 적당히 포장된 전시사진으로만 머무는 게 안타까워 영정사진 찍기라는 독특한 영역에서 사진가로서의 재능나눔 봉사를 펼치게 됐다고 전했다.
박 교수는 지난해 여름방학 기간 동안 부산 실로암교회에서 영정사진을 찍었다. 홀로 사는 노인, 몸이 불편한 장애인 등 지금까지 여러 부류의 사진을 찍어봤지만 앞을 못 보는 시각장애인 영정사진 촬영은 처음이었다.
흔히 인물사진에서 눈 감은 사진은 못 쓰는 사진으로 버려지기 일쑤지만 박 교수는 "그들에게 있는 그대로의 모습,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나들이였다"고 회상했다.
예배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사진을 찍는 순간, 박 교수의 제자들이 간이 조명기와 카메라 설치를 마치자 예배당은 순식간에 근사한 사진관으로 변신했다.
"그렇죠. 하나 둘~ 하나 둘~ 한 번만. 활짝 한 번 웃어보세요. 더 더 더~". 박 교수의 분위기 띄우는 말에 시각장애가 있는 교인들도 어색하지만 미소를 지어보다 끝내 웃음을 터트린다.
박 교수는 "소위 예술가들도 스스로의 재능을 사회적 기부, 공헌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저 역시 알량하지만 사진가로서 제가 가진 재능을 함께 나누면서 사회에 기여하고자 한다"며 "예술이라는 매체가 자칫 잘못하면 여가활동 내지는 사치스러운 시간 때우기로 끝날 수도 있어 사진이라는 매체가 좀더 따뜻하게 세상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었다"고 말했다.
카메라 뷰파인드 속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환한 미소를 짓는다. 지난 세월 찍었던 그 어떤 사진보다 얼굴엔 함박 웃음이 가득하다. 울면서 왔지만 웃으면서 떠나고 싶어서일까. 세상에 남겨둘 마지막 영정사진을 찍으러 온 이들은 모처럼 멋을 냈다.
"슬퍼하실 것 같다고요? 천만입니다. 오랜만에 목욕하시고, 아껴뒀던 옷을 꺼내 입고 즐거운 마음으로 오시는 분들이 대부분"이라며 영정사진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박 교수는 자신의 순서가 올 때까지 몇시간씩 기다리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이들을 대하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질 때가 많다고 한다.
그는 낡은 모자를 쓰고 사진을 찍으시겠다고 고집피우시던 6.25전쟁 참전용사, 모조품 진주 목걸이를 한복 저고리 위에 걸치고 사진을 찍으시겠다는 할머니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할머니의 목걸이는 사연이 있었다. 하나 뿐인 아들이 어렵게 막노동하면서 70세 생일 때 선물로 사주고 갑작스런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것.
특히 영정사진을 촬영하고 액자로 제작하는데 드는 시간이 열흘, 그 기간을 못기다리고 사진 속 주인공이 세상을 떠나는 것을 지켜봤을 때는 정말 마음이 아팠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그의 카메라를 거쳐갔던 노인은 1만6000여 명. 박 교수는 한없이 행복해 보이는 이들 모습을 버릴 수 없어 그들의 사진 원본을 차곡차곡 저장해 두고 있다.
'한 두 차례 하다 그만두겠지'하던 주변의 따가운 시선도 18년이란 세월에 따뜻하게 변했다. 처음엔 박 교수가 카메라를 메고 허름한 골목길 노인정을 찾아다녔지만 이젠 여기저기 복지시설에서 사진 촬영을 요청해 온다.
"내가 가진 예술적인 재능인 '사진'으로도 봉사활동을 펼칠 수 있어 다행"이라는 박 교수는 영정사진을 찍고 돌아올 때마다 무거운 마음을 지울 수 없다. 세상 그 누구보다 자신을 아꼈던 할머니의 마지막 사진을 찍어드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 1991년 귀가 어두웠던 박 교수의 할머니는 덤프 트럭 경적 소리를 듣지 못해 후진하던 차에 치여 세상을 떴다. 서울에서 급하게 내려온 손자는 할머니의 손을 잡고 마구 흔들었지만 끝내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단다.
"장례를 치르려고 사진을 찾았는데 있어야 말이죠. 주민등록증의 빛바랜 사진을 영정사진으로 만들면서 많이 울었어요. 손자가 명색이 사진작가인데 사진 한장 찍어드리지 못했으니…"
그때 박 교수는 안정적인 직장을 구하게 되면 틈틈이 시간을 내 불우한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영정사진을 찍어드리기로 결심했다.
"사진가 하면 폼만 내는 예술가라는 인식이 많았던 시절이었죠. 사진을 통해서도 봉사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영정사진을 찍으러 다니면서 인생에 대해 더 깊게 고민하고, 세상에 대해서도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는 "형편이 어렵다고 자신을 버리고 간 자식들이지만 그 아들이 주고 간 낡은 옷을 입고 찍겠다는 할머니, 손때가 낀 훈장을 자랑스럽게 점퍼에 달고 온 할아버지 등을 통해 우리가 잠시 잊고 지낸 부모를 떠올리게 된다"고 말했다.
어려운 가정 형편 탓에 영정에 올릴 변변한 사진이 없는 노인들을 위해 액자까지 만들어 작품을 내놓으면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실물보다 낫다며 웃음을 터뜨린다.
한번 촬영 때마다 드는 비용도 만만찮지만 그는 사진 촬영 아르바이트로 그 비용을 충당하고 있다.
"돈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마음이 중요하다. '할머니'와의 약속을 평생 지키고 싶다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일이 힘들지 않다"는 박 교수는 18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자신이 영정사진을 찍어줘야 하는 어려운 형편의 노인들이 많다는 사실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박 교수는 이번 여름방학 기간에도 모두 6차례에 걸쳐 기장군 일대 노인 300명의 영정사진을 촬영할 계획이다. 앞서 지난 4일에는 사하종합복지관을 10년 만에 다시 방문해 촬영을 진행했다.
그는 체계적이고 의미 있는 봉사활동을 펼치기 위해 사회복지사 자격증은 취득했고, 지난 해부터 사회복지학과 박사과정에 들어갔다. "깊이 있게 배우면서 정말 많은 것들을 깨닫고 있고, 사회복지 공부가 끝날 때 쯤이면 보다 성숙한 봉사활동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박 교수는 "이젠 소문이 나 그만두고 싶어도 그러지 못한다"며 "카메라 들 힘이 있을 때까지 계속 봉사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 "18년간 영장사진 봉사를 했지만 정작 노부모의 영정사진은 아직 찍어드리지 못했다"며 "올 추석에는 용기를 내 꼭 부모님의 영정사진도 촬영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yulnetphoto@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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