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짧은 옷차림이 성폭행을 유발한다고?

입력 2013. 7. 2. 09:53 수정 2013. 7. 2.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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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담하기 짝이 없는 경찰의 성폭행 피해자 인식

[헤럴드경제=서상범 기자] 지난해 5월 한국판 '슬럿워크(Slut walk)' 운동을 벌이던 '잡년행동' 활동가들을 인터뷰 할 기회가 있었다. '2011년 캐나다의 한 경관이 여성의 헤픈 옷차림이 성폭력을 유발한다는 발언에서 시작된 슬럿워크 운동이 과연 한국에서도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집단이 공공연하게 여성의 옷차림과 성폭력을 연계해서 말할 수 있을까라는 의심도 들었다.

하지만 이들은 인터뷰 내내 남성위주의 폭력적 시선이 성폭력을 유발하는 것은 물론, 성폭력 피해자에게 2차 피해를 안긴다고 경고했다. 특히 법을 집행하는 경찰들이 폭력적 인식을 가질 때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이후 1년 넘게 경찰 출입기자로 일하면서 실제 성폭행 피해 여성들이 경찰을 통해 겪는 2차 피해를 종종 목격해왔다. 하지만 그럴때마다 경찰 조직 '일부'의 잘못된 인식이라고 믿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러나 이것이 일부의 문제가 아님을 보여주는 연구결과가 최근 나왔다.

지난 17일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경찰 18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53.8%가 "여성의 심한 노출로 인해 성폭력이 발생한다"고 대답한 것이다. 술에 취한 여성이 성폭행을 당하면 '스스로에게 책임이 있다'는 응답도 37.4%에 달했고, 밤거리를 혼자 걷는 여성은 성폭행을 자초하는 것이란 응답도 20.3%에 달했다.

성폭행 피해자에 대한 낡은 인식이 경찰 조직 전반에 팽배해 있다는 사실을 여과없이 보여준 것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참담하다"고 반응했다. "설마설마 했던 경찰의 인식이 이 정도일 줄을 몰랐고, 성폭행피해자에 대한 경찰 인식 개선에 위해 뛰었던 시간이 덧없다"라고 말했다.

경찰의 이러한 인식은 단순히 색안경으로 끝나지 않는데 문제가 있다. 성폭행 피해자가 처음 도움을 청하는 곳이 경찰인데, 바로 그 경찰이 "당할만 해서 당한 것 아니냐"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면 어느 누가 경찰서 문을 두드리고 피해구제를 호소할 수 있을까.수사과정의 2차피해를 호소하는 경우도 많다. 성폭력피해자가 형사사법절차상에서 겪는 2차피해는 2008년, 2009년 각각 133건에 달했다.

성폭행 친고죄가 폐지돼 일선 경찰의 성폭행 범죄업무는 더 증가할 것이다. 경찰의 인식이 개선되지 않는 한 2차피해가 늘어나는 것은 불보는 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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