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동네 단란주점도 아니고.. 고객들은 우리가 삼성 직원인줄 압니다"

2013. 6. 18.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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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민규 기자]

글로벌 기업 삼성전자는 서비스 분야에서 수년째 '고객만족도 1위'라는 타이틀을 자랑합니다. 'A/S는 삼성이 최고'라는 말도 어색하지 않습니다. 고객들을 상대하는 기사들의 친절함과 신속 정확한 수리 덕분일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그 주인공들은 눈물을 흘립니다. 그들은 삼성의 옷을 입고 있지만 삼성의 직원이 아니었습니다. 협력사의 직원으로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면서 제대로 된 처우를 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 오마이뉴스 > 는 '삼성A/S의 눈물' 연속보도를 통해 고통 위에 세워진 '1등 서비스'의 실체를 확인하려 합니다. < 편집자말 >

17일 삼성전자서비스 D센터에서 고객을 가장 먼저 반긴 것은 '서비스는 역시 삼성입니다'라는 삼성전자서비스의 홍보문구였다.

ⓒ 정민규

"서비스는 역시 삼성입니다"

홍보문구가 쓰인 깔판이 고객들을 반겼다. 깔끔하고 시원한 삼성전자서비스 D센터 내부는 고장 난 제품을 든 사람들로 북적였다. 월요일인 17일은 다른 날보다 고객들의 방문이 많은 편이었다. 주말 내 수리를 받지 못한 제품이 한꺼번에 몰리는 날이다 보니 직원들의 손놀림이 분주해 보였다. 하지만 바쁜 틈에서도 직원들은 미소를 잊지 않았다.

바쁜 틈 속에서 잊지 않는 미소처럼 삼성전자서비스는 업계 1등을 놓치지 않았다. 삼성전자서비스는 지난해에도 한국서비스품질지수 1위 기업에 선정됐다. 무려 11년 연속이다. '서비스는 역시 삼성'이라는 홍보문구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11년 연속 1등을 달성한 직원들은 행복했을까.

"서비스가 1등이면 우리도 1등 대접을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어렵게 만난 복수의 삼성전자서비스 현직 수리기사들의 이야기는 달랐다. 밀려드는 수리요청처럼, 쏟아진다고 해도 될 만큼 성토가 밀려들었다. 수리기사들은 자신들의 소속부터 분명히 하고 싶어했다. 고객들은 삼성전자 제품을 구매했고 이에 대한 수리를 삼성전자서비스에 맡겼지만 막상 수리를 담당하는 대부분의 직원들은 GPA로 불리는 협력업체 직원들이다.

"살인적 노동강도... 북한도 안 이럴걸?"

GPA는 'Great Partnership Agency'의 약자. 그냥 파트너십도 아니고, 대단한(Great) 파트너임에도 삼성전자서비스는 이들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경영과 인사는 개별 협력업체가 책임진다는 이야기다. 협력업체 수리기사들의 코웃음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됐다. 수리기사 A씨 말이다.

"전국 어딜가나 협력업체 직원들은 명목상의 사장이 '바지사장'이란 걸 압니다. 사실상의 모든 권한은 삼성전자서비스가 갖고 있으면서 노무관계나 법적인 문제를 피해나가기 위해 가짜 사장을 형식상 앉혀두고 있는 겁니다. 사장이라지만 협력업체 사장이 할 수 있는 건 없다고 보면 됩니다. 대신 삼성전자서비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 사장을 움직일 뿐이죠."

A씨뿐 아니라 수리기사들은 "동네 단란주점도 아닌 국내 최대 대기업이 어떻게 '바지사장'을 앉혀 놓고 눈 가리고 아웅하기 식의 경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수리기사들의 말을 토대로 현직 협력업체 사장을 찾아 이야기를 듣고 싶었지만 그는 "삼성전자서비스의 홍보실을 통해 나온 입장이 전부"라며 인터뷰를 거절했다.

하지만 '바지사장'보다 수리기사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스스로가 '살인적'이라고 부르는 업무강도다.

삼성전자서비스의 GPA에 근무중인 서비스 기사의 유니폼에는 삼성 로고가 새겨져 있다. 같은 옷과 같은 일이지만 삼성전자서비스의 본사 직원과 협력업체인 GPA 직원들의 처우는 천차만별이다.

ⓒ 정민규

"실적이 나쁘면 '부진셀대책회의'라는 걸 합니다. 회의라지만 일종의 군대식 얼차려 같은 것인데 한겨울에 새벽 등산이나 해안가 구보를 시킵니다. 쉬는 날이라고 예외는 없죠. 그리고는 소위 '인증샷'을 찍어서 보내야 합니다. 꼴지를 한 셀이 얼차려를 받는 대신 1등을 한 셀은 돈을 받아갑니다. 치열한 내부 경쟁을 유도하는 겁니다."

이렇게 말한 B씨는 "북한도 이렇게 하지는 않을걸요"라고 씁쓸하게 웃었다. 하지만 이 수리기사는 직원들을 이런 식으로 옥죄어오는 협력업체 사장들에게는 별다른 책임을 묻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분(사장)들도 위에서 우리처럼 실적 경쟁을 시키니까 어쩔 수 없이 하는 거죠"라고 말한 수리기사는 "평직원들이 10~15명가량 모인 이른바 '셀'처럼 센터들 사이에도 삼성전자서비스 본사가 실적 경쟁을 시킨다"고 주장했다.

내몰린 실적 경쟁 속에 직원들은 과도한 업무강도로 신음하고 있었다. 외근 직원들의 경우는 그 강도가 더 심하다고 했다. 협력업체 직원들은 기자에게 업무지시가 내려온 스마트폰 화면을 내보였다. 촘촘하게 짜인 일정 속에서 점심식사 시간을 보장받기란 사치에 가까워 보였다. '틈이 날 때 알아서 먹어야 한다'는 나름의 팁 속에서 짬을 내 기자를 만난 수리기사들은 이날도 허겁지겁 밥을 먹고 다음 수리지역을 찾아 발길을 재촉했다.

"우리는 현대판 홍길동... 40년 전의 전태일"

특히 요즘 같은 여름은 수리기사들에게는 시련의 계절이다. 냉방기가 돌아가면 에어컨 수리가 대거 몰린다. 곱절로 늘어나는 수리요청에 주말은 다른 나라의 이야기가 된다. 늦은 밤까지 쉬는 날 없이 이어지는 수리에 뿔이 난 한 센터의 수리기사들이 사장에게 문제를 제기하고 조직적인 움직임을 계획하자 사장은 협력업체를 폐업했다. 그 과정에서 움직임을 주도한 직원 2명은 해고됐다. 협력업체가 폐업하자 서류상으로는 다른 회사인 타 협력업체가 나머지 직원들을 이어받았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협력업체 수리기사들은 조직적인 대응을 하지 못한다. 억울한 일이 있어도 그냥 참고 넘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란 이야기다. 하지만 < 오마이뉴스 > 보도 이후 삼성전자서비스의 불법 하도급 등에 논란이 일면서 국회를 중심으로 진상조사 등 후속조치가 논의되고 있다. 이같은 움직임에 발맞춰 숨겨왔던 목소리를 내는 직원들이 서서히 늘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이 삼성전자서비스의 직원이라면 그만큼의 대우를 해달라고 말한다.

"고객들은 우리가 삼성전자서비스의 정직원이라고 압니다. 연말에 삼성이 성과급 잔치를 할 때는 고객들이 우리에게 '좋은 회사에 다녀 성과급도 많이 받고 좋겠다'고 부러워하는데 우린 그냥 고개를 숙입니다. 같은 일 하는 정직원들은 그럴지 몰라도 정직원들보다 더 많은 일을 하는 우리들은 야근 수당도 제대로 못 받는 경우라고 어떻게 고객들에게 말합니까. 우리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현대판 홍길동'입니다."

이들은 "삼성전자서비스가 불법 하도급을 인정한다면 협력업체 등 중간 단계에서 가져가는 수수료가 줄면서 고객들이 내는 수리요금도 저렴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수리기사 C씨는 "삼성전자서비스나 협력업체 사장들은 우리가 더 나은 대우만을 받기 위해 이런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서비스 기사들의 심정은 너무나 절박하다"며 "우리는 40년 전 전태일이 겪던 삶을 살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그때 C씨의 말을 듣던 다른 수리기사가 가만히 낮게 읊조렸다.

"그래도 다른 건 있지. 전태일은 재봉기를 돌렸고, 우린 전동기를 돌리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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