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일베' 누리꾼에게 6.10 항쟁의 의미는?

박원경 기자 2013. 6. 10.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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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은 북한 남파 간첩의 소행이다.", "5.18은 폭동이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일간베스트 저장소에서 떠도는 이야기들입니다. '논란이 되고 있다'가 아닌 '유행하고 있다'고 수식어를 단 것은 많은 사람들이 아무런 생각없이 군중심리에 휩쓸려서 소위 일베라는 곳에서 놀고 있다는 판단에서입니다.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든 생각은 크게 2가지 였습니다. 일간베스트 저장소의 지지자들이라 할 수 있는 소위 '일베충'들은 팩트(fact.사실)는 신봉하면서 콘텍스트(context.맥락)는 모르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있다는 것과 이들이 폄하하는 민주화의 결과를 '일베충' 스스로가 제일 많이 향유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었습니다.

◈ 미사일 단추 신드롬

집에 침입한 도둑이 아이를 폭행하기 시작합니다. 아이 걱정에 애가 타며 발작 증세까지 보이던 어머니는 무작정 도둑에게 달려들어 닥치는 대로 손을 휘두르기 시작합니다. 어머니가 도둑에게 손을 휘두르는 행위 분명히 폭행입니다. 하지만, 폭행을 휘둘렀다고 그 어머니를 비난하고, 잘못됐다고 해야 할까요?

정부의 재개발 계획에 포함되서 재산이라고 하나 있는 집이 철거 위기에 놓인 사람이 있습니다. 자신이 기를 쓰고 반대해왔던 재개발 계획이었습니다. 그리고 강제집행을 위해 공무원들이 나온 날, 그 사람은 합법적으로 강제집행을 시도하는 공무원들에게 죽기 살기로 달려듭니다. 공무집행 방해와 폭행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사람을 비난해야 할까요?

강준만 교수는 이런 상황을 '미사일 단추 신드롬'이라고 불렀습니다. 수십만 명을 죽일 수도 있는 미사일 발사실에 앉아서 우아하게 커피를 마시면서 단추를 만지작 거리는 상황과 미사일이 떨어질지 모르는 곳의 사람들이 정부 건물로 쳐들어가는 상황이 벌어질 때 표면적으로 드러난 모습만 보고 거리의 사람들을 욕하는 상황을 빗댄 것이지요.

지금 '일베' 지지자들의 모습이 이렇습니다. 총, 칼로 가족과 친구들을 죽이는 상황에 일어난 시민군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거 봐라 애들 폭력 휘둘렀지 않냐? 그럼 폭동이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시민군이 폭력을 휘둘렀다? 맞습니다. 그것은 fact입니다. 하지만 이면에 있는 context는 어떻습니까? 미사일 발사실에 있었을 그 분을 칭송하면서, 거리의 시민들을 비난하는 것은 context를 못 읽은 많큼 일베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무지하다는 것일 겁니다. 아니면 의도적으로 회피하면서 조롱하고 있겠지요. 단지 그게 유행인 것 같으니까요.

◈ 민주화를 반대하던 사람들이 민주화의 결실를 가장 많이 본다

대학시절, 소위 운동을 열심히 했다는 모 인사에게 자조적인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고난을 겪고, 피를 흘리면서 겨우 한 푼어치의 민주화를 이뤘는데, 그 민주화의 결실은 그것을 반대한 사람들이 제일 많이 누리고 있다. 하지만, 그게 옳은 길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해석해 보면 이렇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특히 정부에 반하는 생각은 쉽게 말하지도 못하는 엄혹한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겨우겨우 조금씩 나아져서 소위 언론의 자유가 조금 이루어지니까 언론의 자유를 명시적으로 혹은 암묵적으로 반대해 온 사람들이 그 자유를 가장 많이 누린다는 겁니다. 저런 말을 해도 될까 싶거나, 술먹고 벽에다가 혼자서 해도 될 말은 '언론의 자유'라는 갑옷을 입고 공공연히 이야기 할 수 있게 된 겁니다. 종편에 나와서 설화를 일으키고 있는 사람들의 발언이 이런 것이겠지요.

'일베' 지지자들의 모습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배설에 가까운 말을 꺼리낌 없이 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예전 같으면 말하는 것 자체가 가능하지 않았을 수도 있는 일입니다. 재밌는 일이죠. 자신들이 앞장서 폄하하고 있는 민주화의 결실을 가장 많이 누리고 있는 것이 일베를 이용하는 자신들이라는 것이. 민주화를 비난할 수 있는 자유가 민주화의 결과라는 것이.

◈ 무책임과 무능

기실 현재와 같은 일이 발생하고 있는 것은 정치권의 무책임과 무능 때문입니다. 소위 보수 세력들은 자신에게 유리하다는 이유로 현재와 같은 왜곡된 현실에 눈 감아 왔습니다. 무책임한 일입니다. 하지만 더 큰 잘못은 소위 민주화라는 간판을 걸고 정치권에 들어온 진보세력에게 있습니다. 민주화라는 도덕적 우월감만을 내세웠지, 민주화의 의미는 공고화하지 못 한 것이 지금의 진보세력입니다.

축구 선수가 나치식 경례를 했다는 이유만으로도 출장 정지 등의 중징계를 받는 것이 유럽의 현재 모습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민주화'를 자신들의 브랜드로 내세우고 있지만 민주화에 대한 최소한의 합의조차 이루지 못해, 자신의 브랜드에 배설이 가능하게 만든 것이 우리나라 진보세력의 모습입니다.

◈ 6.10 항쟁 그리고 전두환

오늘은 6.10항쟁 기념일입니다. '일베' 지지자들은 어떤 fact를 찾아낼까요? 시위를 진앞하려는 경찰들을 향해서 돌과 화염병을 던지던 시위대의 사진을 찾아내 '6.10항쟁은 폭동'이라는 fact를 찾아낼까요? 그들이 칭송하는 전두환 전 대통령과의 context는 찾아낼 수 있을까요?

올해 10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추징금 납부 말료시기를 앞두고 검찰은 특별수사팀까지 꾸린 상태입니다. 일베에서 많은 fact들을 찾아내서 자신들의 새로운 context를 구성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박원경 기자 seagull@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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