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성매매 함정 단속과 피의자 사진 공개..선거 앞둔 검사의 승부수

심석태 기자 2013. 6. 8. 09:1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Operation Flush the Johns". 미국 뉴욕주 롱아일랜드에 있는 한 카운티 검찰이 경찰과 합동으로 1달 동안 벌인 성매매 단속 작전명입니다. 우리로 치면 군 정도에 해당하는 카운티 검찰과 경찰이 벌인 수사인데 국제적인 관심을 끌었습니다. 뉴욕의 지역 방송들과 Huffington Post를 비롯한 미국 내 언론은 물론 영국 Daily Mail에서도 보도했습니다. SBS도 박진호 뉴욕 특파원이 '8뉴스'에 보도했습니다.

( "美 뉴욕, 함정수사로 잡힌 성매수 104명 신상 공개" 참조)

별로 새로울 것도 없어 보이는 성매매 단속이 이렇게 관심을 끈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두 가지 눈에 띄는 대목이 있습니다. 단속 방법과 사건의 공개 방식입니다. 먼저 단속 방법.

이번 수사에는 전형적인 함정 단속이 동원됐습니다. 국내에서는 경찰이 고속도로 등에서 숨어서 속도 측정을 해서 과속 단속을 해도 함정 단속이라고 논란이 됩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운전자들이 과속을 하도록 만들어놓고 단속을 하는 것, 즉 함정을 파놓고 단속한 것이 아니라면 정확한 표현은 아닙니다. 미국에서도 숨어서 과속 단속을 하는데 함정 단속이라며 논란이 되는 경우는 없다고 합니다.

이번 수사는 진짜 함정을 파서 벌인 겁니다. 아예 인터넷 사이트에 가짜 성매매 광고를 내고 이걸 보고 연락을 해온 사람을 경찰 요원이 성매매 여성으로 위장해서 호텔방에서 만났습니다. 물론 몰래카메라가 설치돼 있는 방입니다. 그리고 성매수를 하려는 남성과 가격 협상까지 벌입니다. 흥정이 마무리되면 옆방에서 기다리던 경찰이 덮치는 겁니다.

물론 이 광고를 하지 않았더라도 어떻게 해서라도 성매매를 할 사람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혹시라도 단속에 걸린 사람들 중에는 이 광고가 없었다면 하지 않았을 성매매 시도를 한 사람도 있을 수 있죠.

우리가 볼 때는 이게 정말 놀라운 대목인데 미국에서는 함정 단속 자체는 크게 논란이 되지도 않습니다. 미국에서는 이런 단속 자체는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기 때문이죠. 가끔은 FBI가 가짜 테러 관련 사이트를 만들어서 찾아드는 불나방을 잡기도 합니다. 어떻게 보면 범죄 가능성을 처벌하는 거라고 볼 수도 있는데 미국 사회에서는 용인이 됩니다.

이번 수사와 관련해서는 한꺼번에 104명이나 단속한 것이 지역 사회에 큰 충격을 줬습니다. 이 카운티에서는 지난 10년 동안 성매수로 처벌된 남성이 겨우 30여 명에 불과했는데 한꺼번에 100명이 넘게 단속됐으니 놀랄 만도 하죠. 주로 단속된 건 성매매 여성이었다는 겁니다.

정작 논란의 대상이 된 부분은 다음 부분입니다. 검찰은 이렇게 단속된 사람들의 이름과 사진, 나이, 사는 곳을 모조리 공개한 겁니다. 104명의 적발된 남성들 가운데는 변호사도 있고 의사, 교사, 펀드매니저 등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나이도 20대 초반에서 79세까지 다양하고요. 그 중의 상당수는 미국 뉴욕주 롱아일랜드의 부촌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한인도 2명이 있다는군요.

검찰은 아예 수사 발표를 하면서 사진을 공개했습니다. 이렇게 공개된 사진은 Huffington Post나 Daily Mail에도 그대로 실렸습니다. 찾아보면 이름과 나이, 주소 등도 인터넷에 올랐습니다. 우리 같으면 불가능한 일이죠. 우리 대법원은 "범죄 자체를 보도하는 것은 공익성이 있지만 범죄자가 누구인지까지 알 필요는 없다"는 이른바 '익명보도원칙'을 선언하고 있으니까요. 법에 나오는 건 아니지만 대법원은 확고하게 이 원칙을 지키고 있습니다. 덕분에 우리 나라에서는 범죄를 저질러도 어지간하면 '모모씨'라는 익명성 뒤에 숨을 수 있습니다. 성범죄자의 경우도 공개가 되기까지는 장벽이 많습니다. 공인으로 분류되는 소수의 사람들만 예외입니다. 우리 법원이나 검찰은 공인의 범위도 매우 좁게 잡고 있습니다.

이 사건을 전해들은 동료 기자들도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을 많이 봤습니다. 아무리 미국이지만 이렇게 성매매 시도를 했다는 이유로 이름과 사진 등을 다 공개해도 되느냐는 거죠. 하지만 공개 자체도 미국에서 불법은 아닙니다. 아침마다 신문에는 전날 지역 사회에서 음주운전이나 폭력 등으로 체포된 사람들의 명단이 사진과 함께 실립니다.

범죄 피의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사진은 커녕 실명도 공개하면 안 된다는 한국의 태도. 그리고 법을 어긴 사람은 적어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투명하게 사실을 공개하는 것이 맞다는 미국의 태도. 똑같이 무죄추정 원칙을 가지고 있고, 수사에서의 적법절차 원칙 등을 우리에게 전수해준 미국의 이런 태도가 반인권적이라고 비난할 수 있을까요? 인권이라는 것을 어떤 측면에서 바라보는 것이 좋은가, 과연 우리는 왜 이렇게 언론 보도에서 익명 보도 비율이 높은가...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사건이었습니다.

물론 미국에서도 이렇게 실명과 사진을 모두 공개한 것에 대한 반발은 있습니다. 당연하죠. 가정이 있는 사람들을 이렇게 공개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항변하더군요. 당사자들은 변호사를 동원해 신원 공개 등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반발이야 할 수 있지만 신원 공개를 막을 방법이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심지어 일부 카운티 구치소에서는 재소자 사진까지 실명과 신체 특징, 죄명 등과 함께 인터넷 홈페이지에 공개하기도 하는 나라니까요.

이번 사건을 수사했던 카운티 검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런 공개적 수모는 자신들의 선택으로 당하는 일이다, 이런 일로 결혼을 희생하는 사람, 직장을 잃는 사람도 나올 것이다, 이런 일을 당한다는 것을 알면 앞으로 성매수를 하려는 사람이 줄어들 것이다, 수요가 없어지면 그런 사업(성매매)도 없다...고 말이죠.

이 검사는 곧 임기가 만료되어서 선거를 치러야 한답니다. 아마도 이런 기획 수사를 벌인 이유가 선거가 아니었을까 하는 추정이 가능합니다. 여성인데, 아마도 상당수 여성들이 이 검사를 지지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이 검사는 과연 재선에 성공할까요?

이 사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이 카운티 검찰청 홈페이지에도 올라 있습니다. 아래 주소를 참조하시길.

http://www.nassauda.org/

심석태 기자 stshim@sbs.co.kr

Copyright ©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