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두식 칼럼] 관료 '마피아'의 무한 탐욕 시대

박두식 논설위원 2013. 6. 8. 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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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의 최대 파워엘리트는 관료다. 박 대통령은 장관 및 청와대 비서관급 고위직의 70%가량을 관료 출신으로 채웠다. 외교·안보와 경제 라인의 관료 비중은 90%를 넘는다. 물론 관료를 중용하는 게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과거 정부도 그랬다. 해당 분야 정부 업무의 경험과 전문성에서 단연 앞서 있는 관료를 빼고 정부 고위직 인사(人事)를 하는 것은 국가적 낭비다.

그렇다 해도 현 정부 출범 이후 관료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정부가 갓 출범한 시기는 정부 고위직에서 관료 비중이 가장 낮을 때다. 새 정부의 첫 내각은 국정 비전을 세우고 가다듬으면서 국민에게 알려가는 실험적 시기이다. 이때는 관리에 능한 관리보다 대통령을 도왔던 정치인·학자들이 대개 전면에 나선다. 이 정부 역시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이해하는 인물들로 진용을 짰다. 그런데 과거 정부와 달리 이 정권의 대선 캠프 출신 중에는 유독 전직 관료가 많았다. 여기에다 현직 관리 발탁까지 더해지면서 관료 비중이 크게 늘었다. 관료를 보는 대통령의 남다른 신뢰도 한몫했을 것이다.

이 정부 출범 후 관료 사회는 순항(順航) 중이다. 과거 새 정권 등장 때마다 치렀던 정치적 외풍(外風)과 홍역도 거의 없다.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관료들의 위세는 이제 정부 밖으로까지 뻗어나가고(?) 있다. 최근 국내 최대 은행인 KB(국민은행)금융지주와 농협지주 회장에 재정경제부 출신이 잇따라 임명됐다. 국제금융센터 원장, 여신금융협회 회장 자리도 재경부 몫으로 돌아갔다. 한국거래소 이사장을 비롯한 경제·금융 관련 협회장 인선 결과도 비슷할 것이란 소문이 파다하다.

흔히 재경부 관료들을 '모피아'라고 부른다. 옛 재무부의 영문 이름(MOF·Ministry of Finance)에, 이탈리아 갱 조직을 일컫는 마피아(mafia)를 합성한 말이다. KB지주 회장 임명 과정은 재경부 출신 엘리트 관료들을 왜 마피아에 빗대게 됐는지를 실감케 했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관료도 능력과 전문성이 있으면 (금융사) 회장을 할 수 있다"는 말로 재경부 출신 후보를 대놓고 지원했다. 민간 은행에 금융위원장은 수퍼 갑(甲)이다. 이 정도 얘기를 했는데도 KB 내부 출신이 주를 이룬 다른 후보를 회장으로 뽑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현직 관료 후배가 퇴직한 관료 선배의 뒤를 봐준 꼴이다. 마피아도 일단 조직원으로 받아들이면 끝까지 뒤를 봐준다.

이런 일은 재경부만의 특수 현상이 아니다. 부처마다 전·현직 관료들을 산하 단체와 협회, 관련 업계에 밀어 넣고 있다. 우리나라 관료 조직은 끈끈한 유대와 동료 의식으로 뭉친 집단이다. 이들은 서로 통하면서 뒤를 봐준다. 관련 업계와 관련 공기관·단체를 쥐락펴락할 힘도 갖고 있다. 이들이 작심하면 공기업의 인사 공모(公募) 절차는 얼마든지 요식행위로 만들 수 있다. 정권이 바뀌면서 요즘 관가엔 대형 인사 장(場)이 섰다. 직전 정권 사람으로 분류된 공기업·기관의 고위직이 줄사퇴했기 때문이다. 관가에선 경험과 전문성을 내세운 관료들이 앞장서면 정권 창출의 공신(功臣) 친박들이 뒤 차례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고 있다. 우리 공기업이 대규모 만성 적자에 시달리게 된 데는 정권마다 되풀이해 온 이런 인사가 가져온 적폐도 무시할 수 없는 이유다.

낙하산 인사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특정 분야를 자기들의 성(城)처럼 만들어 버리는 전·현직 관료들의 '뒤 봐주기, 끼리끼리 문화'가 결국은 국가적 재난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감독 관청과 업계가 하나로 똘똘 뭉쳐서 지내온 원자력 분야의 집단 문화가 원자력발전소 10기(基)를 세우게 만들었고, 국민은 영문도 모른 채 "올여름엔 특히 전기를 아껴 쓰라"는 정부의 '훈계'를 듣고 있다. '관료 독식'이 정부 부처와 공기관 및 관련 업계를 포위해 버리면 언젠가 또 다른 대형 재난이 터질 수밖에 없다.

재경부는 1997년 말 IMF 외환 위기가 터지자 주범으로 몰렸다. 국민이 모피아라는 비난 섞인 표현을 처음 접한 것도 그 무렵이다. 그 재경부 출신들이 다시 민간 금융기관의 요직을 꿰차고 있다. 급기야 관치(官治) 금융이라는 케케묵은 표현까지 부활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정작 국민에게 일자리 나누기 방안을 강조하고 있다. 퇴직자 구호 대책까지 세우며 민간 분야까지 싹쓸이하는 관료들이 국민에겐 고통 분담을 요구하는 셈이다. 요즘 우리 관가를 보면 '무한 탐욕 시대'라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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