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기사 증언으로 재구성한 '대구 여대생 살인 사건'

2013. 6. 6.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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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5월25일…여자친구 걱정하는 남자친구로 알았는데

5월31일…"시신 유기 하지 않고 성폭행한 거냐" 추궁

"중간에 합승한 사람이 진짜 남자친구라고만 생각했는데, 내가 태웠던 여성이 살해당했다니 아직도 믿겨지지가 않습니다. 내가 태워서 그랬구나…. 눈물이 났어요."

키가 170㎝를 조금 넘어 보이는 그는 수척했다. 담담한 척하며 말문을 열었지만, 괴로워하는 표정은 감출 수 없었다. <한겨레>는 대구 여대생 살해사건의 용의자로 억울하게 몰려 6시간 동안 경찰에 체포됐다가 풀려난 택시 운전사 ㅇ(30)씨를 4일 저녁 7시께 만났다. 이 사건의 현장검증이 있던 날이다. 사진을 찍지 않고, 연락처도 받지 않는다는 조건이었다. ㅇ씨가 설명하는 사건 당일과 경찰에 붙잡혀갔던 날의 설명을 정리해본다.

■ 여대생이 택시를 탔던 5월25일에 무슨 일이…

택시 운전사 ㅇ씨가 살해된 여대생 ㄴ(22)씨를 태웠던 것은 25일 새벽 4시20분께였다. 대구 중구 삼덕동 삼덕119안전센터 근처에서 외국인으로 보이는 젊은 여성이 택시 뒷문을 열고 목적지를 말해주며 ㄴ씨를 태웠다. 또 뚱뚱하고 대머리인 백인 남성은 택시비로 2만원을 ㅇ씨에게 건넸다. 택시는 ㄴ씨의 집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절반쯤 갔을까. 수성구 중동네거리에서 신호대기를 하고 있던 도중, 갑자기 택시 뒷문을 열고 조아무개(25)씨가 합승했다. 처음에는 좀 의심스러웠지만, 계속해서 ㄴ씨의 이름을 부르며 흔들어 깨우는 것을 보고 남자친구거니 생각했다. 곧 조씨는 ㅇ씨에게 방향을 돌려 대구 북구 산격동으로 가자고 말했다. 택시는 방향을 돌렸다. 조씨는 ㄴ씨를 끌고 산격동에 있는 모텔 건너편에 내렸다. 늦은시간 여자친구를 혼자 보냈다가 걱정돼서 뒤늦게 따라왔거니 생각했다.

나중에 경찰의 설명을 듣고 알게 됐지만, 조씨는 ㄴ씨의 남자친구가 아니라 그날 술집에서 처음 만난 아동성범죄 전과자였다. ㄴ씨를 택시에 태워준 여성도 택시 운전기사 ㅇ씨는 외국인으로 봤지만 나중에 알고보니 한국인이었다. 보라색으로 머리를 염색하고 외국인처럼 옷을 입어 ㅇ씨가 외국인으로 착각했던 것이였다.

이후 택시 운전기사 ㅇ씨가 대구 여대생 살해 사건 소식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이틀 뒤인 지난달 28일 오후 4시49분께였다. 휴대전화로 우연히 포털을 검색하다가 이 사건이 대구에서 발생한 것을 알았다. 포털에 실린 뉴스에는 "사건 당시 한국인 젊은 여성 2명이 여대생을 태워줬다"고 보도됐던 탓에, 자신이 태운 여성이 ㄴ씨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ㅇ씨는 날마다 오후 4시부터 새벽 5시까지 하루 13시간씩 택시를 몰고 집에 돌아와 잠자기 바쁜 생활을 하고 있다. 여느 젊은 사람처럼 택시 운전 중에 라디오로 뉴스도 잘 듣지 않는다.

■ 택시 운전기사가 경찰에 긴급체포됐던 5월31일엔 무슨 일이…

택시 운전기사 ㅇ씨가 경찰에 갑자기 긴급체포된 것은 지난달 31일 저녁 8시께였다. 자신이 사는 아파트 앞에서 담배를 피우다 잠복중이던 경찰관에 의해 수갑이 채워졌다. 이유도 몰랐다. "25일과 26일 뭐했냐"는 질문만 계속 들었다. 그렇게 연행돼 간 곳은 대구 중구 대구시민회관 맞은 편에 위치한 역전치안센터였다.

조사가 시작됐다. 경찰은 ㅇ씨를 유력 용의자로 긴급체포했지만, 확보한 증거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경찰의 추궁은 계속됐다. 태어나서 경찰 조사를 처음 받아 보는 ㅇ씨는 억울하기도하고 무섭기도해 눈물을 흘렸다.

밤 10시께 ㅇ씨는 경찰에게 "사건 당일 어떤 남성이 택시에 합승해 산격동으로 방향을 돌리라고해 어느 모텔 앞에 내려줬다"고 말했다. 하지만 되돌아온 말은 "그건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당신은 진술이나 해라"였다. "그럼 시신 유기는 당신이 하지 않은 거고 성폭행만 한 거냐"는 추궁도 이어졌다.

그러던 중 ㅇ씨의 알리바이까지 나와버리자 분위기가 급변했다. 자정이 다 돼서야 경찰은 허겁지겁 ㅇ씨에게 모텔 약도를 그려달라고 했다. 약도를 들고 뛰어나가던 경찰은 "가보고 거짓말인지 아닌지 확인해보겠다"는 말을 ㅇ씨에게 남겼다.

경찰이 모텔에 설치된 폐회로텔레비전(CCTV)을 확인하는 순간 ㅇ씨의 혐의는 바로 벗겨졌다. 여대생을 끌고 모텔에 들어간 것은 사건 당일 ㄴ씨가 탄 택시에 합승했던 조아무개(25)씨였다.

하지만 ㅇ씨는 바로 풀려나지 못했다. 새벽 2시까지 수갑을 차고 있어야만 했다. ㅇ씨가 조씨가 택시에 태웠던 사람이 맞다는 사실을 확인해주고 나서야 경찰은 ㅇ씨를 풀어주었다. "신고했으면 1000만원 받았을 건데"라는 말과 함께. 하지만 이날 아침 6시 일부 방송에서는 '모텔에 ㄴ씨를 끌고 들어간 남성이 택시 운전기사로 확인됐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경찰이 ㅇ씨의 혐의가 벗겨져 풀려났다는 사실을 5시간 동안 언론에 발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와 보니 집안은 난장판이 돼 있었다. 경찰들이 자신의 옷과 컴퓨터, 낚시대까지 다 가져갔고, 장농은 부서져 있었다. 아파트 이웃들의 이상한 시선이 느껴졌다. 택시 운전은 둘째치고 외출할 엄두가 나지 않아 집에 틀어박혀 있는데, 경찰에서 전화가 왔다. "경찰서에 와서 짐 찾아 가세요." ㅇ씨는 지난 3일 10㎞나 떨어져있는 경찰서로 가서 자신의 짐을 모두 찾아왔다. 6시간 동안 수갑을 차고 있어 손목이 아팠지만, 더 아픈 것은 아무런 증거도 없이 자신을 살인범으로 몰아세웠던 경찰의 어처구니 없는 태도였다. ㅇ씨는 아직도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모자를 깊이 눌러쓰지 않고서는 외출하지 못한다.

대구/김일우 기자 cool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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