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아날로그 반주와 만난 로봇 목소리의 환상 조합
[동아일보]
기마뉘엘 드 오망크리스토(39)와 토마 방갈테르(38)도 원래는 사람이었다.
파리의 두 젊은이는, 그들 주장에 따르면, 1999년 9월 9일 오전 9시 9분 컴퓨터 버그로 스튜디오 기자재가 폭발하는 사고를 당한 뒤 사이보그가 됐다. 1997년 데뷔작 '홈워크'를 낼 때만 해도 이 프랑스 전자음악 듀오 '다프트펑크'는 우리 같은 사람의 형상이었다. 2집 '디스커버리'(2001년)를 내며 이들은 머리에 로봇 헬멧을 쓰고 세상에 돌아왔다.
다프트펑크가 8년 만인 최근 낸 정규 앨범 '랜덤 액세스 메모리스'는 초현실주의 예술가 H R 기거가 창조한 영화 '에일리언' 캐릭터 같다. 생체와 기계의 교합. 컴퓨터로 연주되는 가상 악기를 즐겨 쓰던 다프트펑크는 이번에 실제 사람의 손이 연주하는 베이스 기타, 드럼, 피아노, 오케스트라를 대거 도입했다. 3집 제목 '휴먼 애프터 올(결국 사람)'(2005년)이 복선이었나.
4월에 난 건강검진을 받았다. X선은 몇 년 전 내 심장에 생긴 변화를 감지하지 못했다. 분홍색 껍질 위로 자라난 은빛 금속 껍데기를. '세련된 어른스러움'이라는 상품명이 찍힌 외피를. 외로움이나 슬픔 같은 걸 수족관의 열대어처럼 볼 수 있게 해준, 더이상 울지 않게 해준, 감정이 아닌 합리로 도금된, 그 편리하고 멋진 쇠붙이를.
근데 왜일까. '랜덤 액세스 메모리스'를 듣던 내 멋진 은색 심장이 뜨끔 저렸다. 한때 인간이었던 다프트펑크 멤버들의 변형된 로봇 목소리는 '위딘'에서 감정 없이 노래했다. '이해할 수 없는 게/아주 많아./내 안에 세상이 있는데/설명하지 못해./살펴볼 방이 많은데/문은 다 똑같이 생겼어./길을 잃었고 내 이름도 기억 안 나.'
검진되지 않는 내 금속 심장에서 문득 뭔가가 돋아났다. 갈라진 틈은 부드러운 입술이 됐다. 두 로봇과 동기화(同期化)된 그것이 노래했다.
'누군가를/기다려왔어./이젠 알아야겠어./제발 내가 누군지 말해줘.'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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