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나는 이웃과 함께".. 적극적 사회참여 통해 예수사랑 실천

2013. 5. 31.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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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 60주년 맞아 '자유인의 교회' 펴낸 향린교회 사람들

[동아일보]

교회의 향린(香隣)이라는 명칭은 '향기 나는 이웃'이란 뜻이다. 조헌정 담임목사, 안정연 권사, 정수미 집사, 한문덕 부목사, 이규성 집사(왼쪽부터) 등 향린 사람들은 "이웃과 사회 속에서 어떤 향기가 나는 사람들로 살아갈지 항상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24일 서울 중구 을지로의 낡은 3층 건물. 입구의 한쪽 기둥에 작은 동판이 있다. '정의를 심어 평화의 열매를(야고보서 3장 18절)… 정권 탄압에 항거하여 1987년 5월 27일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가 결성된 곳이다. 6월 민주항쟁 20주년을 맞아 민주주의와 자유, 인권운동의 산실로 이를 기념한다.'

향린교회다. 이 교회는 5월 17일 창립 60주년을 맞았다. 5·17, 숫자가 주는 선입견인지 모르지만 공교롭다. 1953년 안병무 박사(1922∼1996) 등 10여 명이 설립한 이 교회의 운명은 처음부터 정해진 것일까. 교회라지만 외부에 십자가도 없다. 동판은 어쩌면 예수의 사랑을 사회적으로 실천한 향린교회의 또 다른 상징이다.

60주년 기념행사에 이어 최근 교회사를 정리한 '자유인의 교회-향린교회를 말하다'를 출간한 향린교회 사람들을 만났다. 3대 담임목사인 조헌정 목사(59)와 한문덕 부목사(40), 교회 60년사 편집위원들인 안정연 권사(67)와 이규성(51) 정수미 집사(37)가 함께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당시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가 결성된 곳임을 알리는 향린교회 입구의 동판. 향린교회 제공

―올해 60주년을 맞았다.

▽조 목사

=향린은 안병무 박사 등 당시 30대 초반 10여 명의 믿음 공동체로 출발했다. '밥도 먹고 잠도 같이 자고 기도도 함께 하면서 삶 전체를 하나님께 드리자'는 마음이 밴 교회다.

▽이 집사

=(향린을) 35년 다녔으니 최고참인 것 같다.

▽정 집사

=중간에 많이 빠졌죠.(웃음)

▽이 집사

=유학도 가고 그러긴 했다. 향린이 항상 지금의 모습은 아니었다. 일반적 교회의 성장 논리를 따르다 위기를 맞은 적도 있다.

▽안 권사

=60년 환갑이야 옛날 얘기지. 교회가 너무 호들갑을 떠는 것 아닌가 싶다. 저는 다른 교회에서 '불나방'처럼 찾아왔다. 세상에 눈 감고, 복만 달라고 기도하는 일부 교회들과 달리 바른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정 집사

=예배 시작을 알리는 징 소리에 정말 놀랐다. '자유인으로 살라'는 홍근수 목사(2대 담임목사)의 말에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향린의 국악예배는 유명하다.

▽한 부목사

=징은 물론이고 가야금 해금 대금 장구 등이 사용된다. 1995년 국악선교회 예향이 창단되면서 본격화했다. 이제 일부러 국악예배를 보러 오는 분들도 있다.

▽조 목사

=예배 중에 흥이 난 교인의 '얼쑤' 소리가 들릴 때도 있다. 억지로 '아멘' 하면 뭐 하겠나. 자유롭지 않으면 행복해지지 않는다. 10월 부산에서 열리는 세계교회협의회(WCC) 총회에서 '국악예배와 영성'을 주제로 국악예배도 보여주고 토론도 한다.

―향린교회는 분가선교(分家宣敎)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한 부목사

=1993년 창립 40주년 선언에서 성인 500명이 넘으면 교회를 분가할 것을 선언했다. 이후 강남향린과 섬돌향린교회가 분가했고, 다시 강남향린에서 들꽃향린교회가 나왔다.

▽조 목사

=교회 공동체를 '가족'이라고 하는데 몇 년 지나도 이름도 모르면 무슨 가족인가?

▽이 집사

=이 교회가 웃긴다. 다른 교회는 교인들이 교회에 안 나오면 찾아오고 난리다. 그런데 향린은 와도 반겨주지도 않고, 가도 잡지도 않는다. 허허.

―교회의 사회적 역할을 둘러싼 논란도 많다.

▽조 목사

=예수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나 갈릴리에서 활동했다. 일제강점기로 치면 조선을 떠나 옌볜을 주무대로 했다. 갈릴리는 반항정신이 강했고 어업 등으로 경제적 기반도 갖춰져 있는 변화의 중심이었다. 예수는 고통당하고 있는 이들을 외면하는 성전은 성전이 아니라 그냥 '벽'이라고 했다.

▽안 권사

=박정희 정권 시절 가족의 고통이 있었다. 여기에 신앙이 접목됐고 교회가 지탱해줘 용기백배했다. 개인과 사회 구원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하나의 동심원에 있다고 생각한다.

▽정 집사

=죽어 천국 가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찾아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주부이자 아이 엄마로 사회활동과 선교에 투신하느냐의 문제는 계속 고민으로 남는다.

―교회 내부도 민주적인가.

▽이 집사

=담임목사가 큰 소리로 '따라와라' 하면 신자들이 거부하기 힘들다. 향린의 경우 역대 담임목사들이 스스로 내려왔기에 민주화가 가능했다. 그래서 평신자 설교도 가능했다.

▽정 집사

=아직 부족하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 아니, 목사님 낀 편이 이긴다.(웃음)

▽조 목사

=나라가 잘되어야 교회도 산다. 예수는 사랑과 관용, 회개를 얘기했다. 원수를 사랑하라고도 했다. 한 민족인데 그걸 실천하지 못해서야 되겠나? 우리는 분열과 갈등으로 물이 뜨거워지고 있는데 스스로만 모르는 우물 안 개구리 처지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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