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 성범죄 해마다 느는데.. 마녀사냥 당할까 쉬쉬

변태섭기자 송옥진기자 2013. 5. 30. 0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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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 고발 꺼려하는 구조적 불합리 바로잡아야

여대생 A씨는 지난해 초 학과 MT에서 술을 마신 뒤 빈 방에서 잠들었다 한 남자선배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밤새 울다 다음날 여자 선배에게 자신이 당한 일을 털어놓은 A씨는 오히려 더 큰 충격을 받았다. 그 선배에게서는 "왜 너 혼자 자 가지고 이런 일을 만드냐"는 힐책이 되돌아왔다.

지난해 수도권 모 대학 성폭력상담소에서 한 여학생이 털어 놓은 피해사례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대학에서는 성폭력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그에 대한 안이한 인식도 여전히 존재하는 게 현실이다. 심지어 최근 서울시립대 총학생회장의 성추행에다, 규율이 엄격한 육군사관학교에서까지 생도간 성폭행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전문가들은 피해자들이 피해 사실을 고발하기 어려운 대학 내 성희롱ㆍ성폭력을 막기 위한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말 280개 대학 사례를 조사해 발표한 '2012 대학교 성희롱ㆍ성폭력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대학교 성폭력상담소에 접수된 피해사례는 2009년 평균 0.6건에서 2010년 0.8건, 2011년 1.2건으로 지속적으로 늘어났다. 전문대에서도 2009년과 2010년 0.5건에서 2011년 1건으로 증가했다.

대학 당 1건 남짓이라도 연간 성희롱ㆍ성폭력 피해자는 최소 수백 명에 이른다는 의미다. 이는 공식적으로 신고가 접수돼 사건화된 사례만을 따진 것이라, 성희롱, 성폭력 사건의 성격상 피해자가 신고 없이 마음에 묻어둔 경우는 드러난 것보다 수십 배 더 많을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피해자들이 노출을 꺼리는 이유는 자명하다. 피해사실 입증이 어렵고 가해자를 처벌하더라도 주변 시선에 남은 학교 생활을 마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가해자 쪽이 학과나 동아리 같은 작은 집단에 의도적으로 관련 사실을 유포하기 쉬워 사실관계 조사가 끝나기도 전 마녀사냥 식 비난에 맞닥뜨리게 된다. 지난 2011년 5월 같은 과 동기 여학생을 집단성추행해 물의를 일으킨 고대 의대생 중 한 명이 피해자 사생활에 대한 설문지를 학생들에게 돌린 게 대표적 사례다.

배은경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대학 내 성폭력 문제는 술과 성욕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을 평등한 인격체로 보지 않는 인식의 문제"라며 "성 평등 의식이 신장되지 않으면 같은 사건은 끊이지 않고 발생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대학 내 성희롱·성폭행 사건은 증가 추세지만 성폭력 관련 상담을 위한 별도의 인원이 배정돼 있는 대학은 조사 대상 중 7.5%에 해당하는 21곳에 불과했다. 한마디로 대학이 성희롱ㆍ성폭력 문제에 소극적이라는 방증이다.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송옥진기자 cli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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