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환의 씨네칵테일] '위대한 개츠비'의 화려함 강박증

김명환 기자 2013. 5. 24. 09:4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고전적인 문학 작품을 스크린에 옮기는 영화 감독들은 누구나 어려운 문제와 하나와 마주하게 됩니다. "이번엔 또 어떻게 새롭게 해석해낼 것인가"입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고, 너무나 여러 번 영화화 된 소재를 또 영화로 만들려면 예측 가능한 수준을 넘어서는 영화적 새로움이 요구되는 것이죠.F.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을 원작으로 또 만들어진 영화 '위대한 개츠비'(바즈 루어만 감독)도 아마 그런 고민을 거친 작품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고두고 볼만한 영화의 반열에까지 올리기는 어려운 영화가 된 듯합니다.'위대한 개츠비'는 급격하게 신분상승한 어느 젊은 남자의 굴곡많은 사랑과 꿈에 관한 영화입니다. 개츠비(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젊은날 데이지(캐리 멀리건)와 사랑을 나눴으나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전쟁터로 갑니다. 가난하게 살던 데이지는 돌아오지 않는 남자를 잊고 부자인 톰(조엘 에저튼)과 결혼했습니다.

그런데 개츠비는 데이지에게 잊혀져 가던 세월 속에서 여러가지 놀랄만한 행운을 안고, 땀흘려 노력도 하면서 백만장자가 됩니다. 옛사랑을 잊지 못하는 개츠비는 다시 고향 마을에 돌아와 데이지를 만납니다. 그녀는 이미 다른 남자의 아내지만, 남편 톰은 마을 정비공의 아내에게 한눈을 팔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옛 연인을 만난 데이지는 사랑의 감정을 되살립니다. 하지만 사랑은 순탄치 않습니다.

바즈 루어만 감독 작 '위대한 개츠비'에서 아쉬운 부분은 이렇게 이렇게 오랜 세월을 두고 만났다 헤어지는 남녀의 스토리 중에서, 백만장자가 된 이후의 개츠비에게 너무 집중하고 있다는 점입니다.영화는 1920~1930년대 뉴욕 외곽에서 살던 미국 최상류층의 삶을 실컷 보여 주려고 작심한 듯합니다.

개츠비 저택은 개인의 집이라기보다 중세의 성주가 살았던 캐슬을 연상시킵니다. 데이지가 개츠비의 안내를 받아 그 저택을 처음 구경하는 장면에선 노르망디 성에서 공수해 왔다는 거대한 철제 대문부터 관객들 입을 벌어지게 합니다. 실내는 또 어떻습니까. 으리으리한 실내 장식이나 가구, 집기야 더 말할 것도 없고, 건물 5층 높이는 족히 되어 보이는 파이프 오르간이 실내에 버티고 있습니다.

개츠비 저택의 드레스 룸은 거의 웬만한 백화접 의류매장 같습니다. 옵션을 잔뜩 넣어 주문 제작했다는 개츠비의 노란색 듀센버그 자동차는 그 시절 미국 최상류층만이 탔다는 부의 상징입니다. 호사의 극치를 누리는 공간에서 파티광(狂) 개츠비는 연거푸 귀족적 파티를 벌입니다. 이를 묘사한 장면마다 화려함이 넘칩니다.

영화가 이런 장면으로 노리는게 무엇인지 알아채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관객들에게 하나의 백일몽을 선사하며 잠시나마 눈요기해 보는 재미를 선사하겠다는 것이겠지요. 더구나 여성 관객이라면, 백만장자 신사가 되어 돌아온 디카프리오처럼 멋진 남자란 백마 탄 왕자님 그 자체이니 매혹되지 않을수 없죠.

할리우드의 계산이 속보이게 드러납니다. 화려하고 달콤하게 판타지를 빚어내 관객을 잠시 환상에 빠뜨리게 하는 게 상업영화의 미덕이라는 강박증 같은 것도 느껴집니다. 그러나 그랬다면 너무 단순한 판단이겠지요. 얕은 흡인력만 생각하다가 영화의 더 중요한 재미를 반감시킨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부자들의 생활을 보여주는 화려한 묘사는 백만장자를 주인공으로 삼은 이 영화의 중요한 매력 포인트일 것입니다. 그런데 바즈 루어만의 '위대한 개츠비'에는 화려함이 지나칩니다.관객들 눈을 휘둥그레하게 만드는 요소들을 너무 많이 펼쳐놓다 보니 개츠비의 내면과 데이지와의 사랑의 감정에 관한 깊은 묘사들은 소홀해진 느낌을 지울수 없습니다.

개츠비가 전쟁터에 나가서 겪은 체험 등 파란만장한 일들은 개츠비의 친구 닉(토비 맥과이어)의 과거 회상으로 매우 간략하게 처리될 뿐입니다.이 영화는 닉을 화자로 내세워 3인칭 시점으로 회상하는 액자구조로 되어 있는데, 영화를 다 보고 나니 이런 구조를 택한 것이 덜 화려한 러브스토리의 초반을 회상으로 스피디하게 처리하기 위한 것이었나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영화가 두 남녀 사이에 있었던 과거의 일들을 매우 간략히 축약해 보여 주다 보니, 둘이 어떻게 처음 사랑하게 됐는지, 개츠비는 왜 그 오랜 세월을 두고도 데이지를 잊지못하고 사랑의 감정을 쏟는지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마치 개츠비는 거의 맹목적으로 데이지에게 반한 사람같이 보입니다. 가난해서 무시 당했던 어린날 개츠비의 마음의 상처는 어떤 것이었는지, 개츠비는 어떤 생각과 노력으로 부자가 됐는지, 매우 중요한 스토리의 연결고리들도 소홀히 다뤄져 있습니다.이 영화가 만일 개츠비의 그 굴곡많은 인생을 좀더 진하게 그렸다면, 대 저택에서 벌이는 그의 화려한 파티엔 이루기에 너무 힘든 꿈을 가졌던 한 남자의 쓸쓸함이 묻어날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도 못했습니다.

배경이 진하면 그 배경 앞에 서 있는 배우가 잘 안 보이기 마렵입니다. 배우예술인 연극의 경우, 좋은 무대미술이란 아름다우면서도 배우들이 배경에 묻히지 않도록 한발 뒤로 물러선 듯한 단순한 미감을 갖게 꾸미는 것이라고 합니다.

감독은 아마도 상류층 생활의 화려함이 핵심이라고 여겨 '선택과 집중'을 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은 마치, '타이타닉' 영화를 만들면서 스펙터클하고 역동적인 침몰과 그 이후 바닷 속 사투 장면에 집중하고, 우연히 만난 남녀가 배에서 키워갔던 아름다운 사랑을 간단한 회상으로 줄이는 것과 마찬가지 아닌가 합니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 '타이타닉'에서 밤 바다에 내던져진 두 연인의 안타까운 사투가 많은 관객들 눈물을 쏙 빼놓은 것은, 영화 전반부에서 보여준 그들 사랑의 아름다움이 컸기 때문입니다. '타이타닉'이 왜 침몰 전 스토리 전개에 1시간 30분이나 되는 시간을 썼는지 새삼 생각해 보게 됩니다.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