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베의 매력은 '배설'" "'쥐박이'는 되고 '노알라'는 왜 안 되나"

입력 2013. 5. 23. 16:29 수정 2013. 5. 23.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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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이주영 기자]

온라인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저장소(www.ilbe.com) 홈페이지 화면

ⓒ 일베 화면 갈무리

지난 21일 오후 < 오마이뉴스 > 사무실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저 '일베' 회원인데요…"

'광고업에 종사하는 40대 남성'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이아무개씨는 "언론에서는 일베를 이상한 무리로 설명하는데, 나를 포함한 일베 회원들은 실제로 평범한 사람"이라며 "궁금하다면 일베를 하는 이유 등을 자세히 설명해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는 상식을 벗어난 게시물로 여론의 도마에 오른 온라인 커뮤니티다. 게시판에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폭동으로 왜곡하거나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사진에 코알라를 합성하는 게시물이 수시로 올라온다.

이씨 말대로 일베 회원들이 평범한 사람이라면, 왜 이처럼 비상식적이고 자극적인 게시물을 올리는 것일까. 전화를 준 이씨, 그리고 일베 이용자라고 밝힌 주변 지인에게 직접 그 이유를 물어봤다.

"일베 가면 180도 변해... '막말'하는 재미있다"

다음 날, 회사로 연락했던 이아무개씨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 일베는 언제부터 시작했나요?

"지난해 가을부터요. 대선 기간 때 일베가 주목을 받기에 한번 들어가 봤어요. 올라온 글들이 제 정치성향과 맞아서 시작하게 됐고요."

이씨는 원래는 정치적 무관심층이었다고 한다. 그러던 2003년 어느 날 노무현 당시 대통령의 연설을 우연히 봤다. "연설 내용에 감동을 받아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그때부터 이씨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정치 관련 글도 읽기 시작했다. 노무현 대통령을 응원하는 글을 쓰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로 정권이 바뀌고 나서도 그랬다. 보수 성향의 네티즌들이 노무현 대통령을 욕하면 "싸워서 지켜줘야겠다는 생각까지 했을 정도"였다.

정치성향이 바뀐 건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동 때부터다. 이씨는 "소위 진보라는 사람들이 광우병 관련해서 주장하는 게 과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을 포털 사이트 다음 '아고라' 게시판에 올렸다.

"사람들이 엄청나게 저를 욕하더라고요. 기분이 나빴죠. 나중에는 노무현 대통령마저 좋게 보이지 않더라고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보수 성향으로 변했어요."

일베를 시작한 지 9개월 정도 된 이씨는 하루 평균 30분~1시간 정도 일베에 들어가고, 게시물은 일주일에 10~15건 정도 작성한다. "'일간베스트'에도 20번 정도 올랐다"고 한다. 정치, 스포츠 등 분야별 게시판에서 추천을 많이 받은 글은 '일간베스트' 게시판에 올라간다.

그가 생각하는 일베의 매력은 '배설'과 '해소감'이다. "사람들이 해우소(화장실)을 이용하듯 아무 이야기나 배설할 수 있는 곳"이라고 이씨는 설명했다.

"일상에서는 막말 같은 건 못 하는 분위기잖아요. 특히 친구나 업무 관계자들이랑 만나면 정치 이야기를 속 시원하게 못해요. 주변에는 진보 성향인 사람들이 많거든요. 다툼이 안 생기려면 저는 그냥 그 사람들 이야기만 가만히 듣고 있을 수밖에 없어요. 그 답답함을 일베에서 푸는 거죠. 게시판에서는 180도 달라져요. 야권이나 진보 진영을 막 비판해요."

- 해소도 좋지만 그 내용이 너무 지나치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어요.

"그러라고 커뮤니티가 있는 거예요. 그리고 점잖게 쓰면 일간베스트까지 못 올라가요. 튀고 자극적이어야 사람들이 많이 읽고 베스트까지 올라갈 수 있는 거죠. 극단적이라서 재밌는 점도 있어요. 물론 5.18을 폭동이라고 싸잡아서 매도하는 건 너무했다고 보지만요."

이씨는 일베와 가수 싸이가 비슷하다고 봤다. 둘 다 "저질스러우면서 변태적"이라는 해석이다. 더불어 그는 "일베가 단순히 저질스러운 것만은 아니다, '된장녀' '김치녀' 같은 표현에는 세태 풍자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래도 '된장녀' '김치녀'처럼 여성을 비하하는 표현은 과도한 풍자 아닐까. 이씨는 " < 나는 꼼수다 > 에 출연한 김용민 (교수)도 예전에 콘돌리자 라이스 전 미국 국무장관한테 여성비하 발언을 한 적이 있는데, 그런데도 김용민은 진보 쪽 사람들에게 우상이 됐다"며 "왜 같은 저질 문화도 진보는 되고 보수는 안 되는 건지 모르겠다"고 반박했다.

"민주·진보 세력 향한 반감이 극우로 표출돼"

일베에 올라온 노무현 전 대통령과 '또래오래' 치킨을 합성한 '노래오래' 합성사진

ⓒ 일베저장소

또 다른 일베 이용자 김아무개(30·학생)씨를 소개받았다. '일베의 원조'라 불리는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디시)' 회원인 김씨는 일베가 생기면서 두 커뮤니티 다 이용하게 된 경우다. 일베는 일부 디시 회원이 선정적인 내용의 게시물 차단 방침에 반발해 2010년 새로 만든 커뮤니티다.

22일 김씨와 전화 통화로 대화를 나눴다.

- "일베 이용자들은 평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어요. 동의하나요.

"그럼요. 실제로 일베에 본인 인증 게시물이 많이 올라오는데, 보면 '회사원'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라는 내용이에요. 알고 보면 멀쩡한 소시민인 거죠. 일베는 아니지만, 디시 정모에 나가보면 다들 멀쩡해요. 게시판에서는 이상한 사진 합성해놓고 낄낄거리면서, 현실 세계에서는 친구들과 이야기하듯 평범하게 말하더라고요."

김씨는 "오프라인에서는 가식의 가면을 쓰고 격식을 차리다가 일베 같은 커뮤니티에서 푸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실세계와 일베에서의 모습이 각각 다를 수 있다는 해석이다.

그는 또 "보수적인 정치성향을 커뮤니티에서 표출하는 목적도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이씨가 주장한 내용과 비슷하다.

"젊은층 사이에서는 노무현 (대통령) 욕을 못 해요. 가령 '박정희 (대통령) 최고'라고 하면 '저 자식 뭐야'라는 식으로 쳐다봐요. 그런데 '노무현 너무 그리워'하면 '나도'라는 분위기예요. 보수 성향인 사람들은 분출구가 없으니 일베에 가서 배출하는 거죠."

- 일베에서 노 전 대통령을 혐오하는 이유는 뭘까요.

"좌파 아이들은 이명박을 '2메가바이트(MB)' '쥐박이'라고 조롱하면서 '노알라' '노운지'는 쓰면 나쁘다고 해요. 솔직히 제3자 입장에서 보면 둘 다 똑같아요. '쥐박이'는 써도 되고 '노알라'는 쓰면 안 되나요? 결국 좌파를 향한 반감이 쌓여서 극우로 표출되는 거라고 봐요."

-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폭동'이라고 폄훼하는 것도 반감 때문일까요?

"그렇죠. 최근 광주 팀인 KIA와 서울 팀인 LG의 프로야구 경기가 있었어요. 그때 일베에 'LG가 KIA 광주 폭동을 제압해야 한다'는 글들이 많았어요. LG 타자가 KIA 투수를 상대로 홈런을 치면 '폭동진압'이라고 올라왔어요."

다수의 언론은 최근 '법적·역사적 평가가 확립된 사건을 왜곡하는 것은 지나치다'며 일베의 5.18 왜곡을 경고하고 있다. 김씨는 "5.18이 민주화운동이라고 생각하지만 배후세력은 어느 정도 있었을 거라 본다"며 "5.18 북한군 개입설도 들어보면 아주 말이 안 되는 소리는 아니다, 10~20% 정도의 신뢰도는 있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폐지? 누군가 비슷한 사이트 만들 것"

그러면서도 김씨는 최근 일베가 언론의 질타를 받을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비난의 도가 지나치다는 것이다.

"요즘 일베에 10대 유입이 늘어나면서 사이트가 변질됐어요. 그러다 보니 도가 지나친 말들이 많이 올라와요. 오늘(22일)을 일베에서 뭐라고 부르는지 아세요? '운지절 이브'라고 불러요. 노무현 서거 3주기 전날을 비꼬는 표현이에요.

사실 중·고등학생들 중 보수라는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오는 아이들은 별로 없어요. 연예, 게임 게시판에 놀러왔다가 우연히 '5.18 폭동' 주장 보고는 '진짜야?'하고 세뇌당하는 거죠. 사람들이 한 의견이나 주장에 우르르 몰리면 믿게 되는 원리 같아요."

그렇다면 일각의 주장대로 일베 사이트 자체를 폐지하면 문제가 해결될까. 그는 "일베를 해체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을 것"이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일베도 다른 온라인 커뮤니티에 불만을 가진 사람이 만든 사이트잖아요. 없어지면 누군가 또 비슷한 사이트를 만들겠죠."

'일베'는 어떤 곳?

온라인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의 원조는 '디시인사이드(디시)'다. 디지털카메라 정보뿐만 아니라 스포츠·방송 등 다양한 분야의 게시물을 공유하는 사이트인 디시는 분야별로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글을 '베스트게시물'로 올린다. 다만 관리자는 이 가운데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인 내용의 글은 삭제한다. 이에 반발한 일부 회원들이 2010년 새로 만든 사이트가 일베다.

일베의 핵심은 '베스트' 체제다. 고민상담, 정치, 스포츠 등 분야별 게시판에서 중 가장 추천을 많이 받은 글은 '일간베스트'로 올라간다. 정치·사회 게시판에서 추천을 많이 받은 게시물은 '정치 일간베스트' 게시판으로 이동된다. 디시와 다르게 운영자가 게시물 관리에 개입하지 않는다.

일베 회원들은 게시물이 마음에 들 경우 '일베로(공감의 의미)'를 클릭해 추천한다. 그렇지 않으면 '민주화'(반대의 의미)를 누른다. 일베 회원들이 자극적인 게시물에 집착하는 이유는 이러한 체제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한 회원은 "베스트 글로 올리기 위해서는 더 선정적인 게시물들을 올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베의 특징으로는 노무현 전 대통령 조롱, 특정 지역 비하, 여성 혐오, 인종차별 등이 꼽힌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폭동'으로 왜곡하거나 노 전 대통령의 사진에 동물을 합성하는 등 최근 논란이 된 게시물들이 그 예다.

웹데이터 분석 평가기관인 랭키닷컴의 집계에 따르면, 지난 4월 일베 하루 평균 시간당 방문자 수는 37만5068명이다. 회원은 100만 명 정도 되며 동시 접속자 수는 2만 명을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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