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베' 중독 회원 만나보니 "'김치X'라고 쓰면 기분이 풀린다"

2013. 5. 22.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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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일간베스트' 회원들 인터뷰

"욕하고 노는게 재밌어요" "게재등급 올리려 과격한 글 쓰죠""다들 '병신드립' 하면서 놀아요""상위 1% 사람들과도 평등댓글""일베 비판보도 나오면 기뻐요"가식없는 비난·모욕, 맘에 들어자주 드나들며 정치성향 바뀌어일탈적 문화 즐기며 카타르시스

김아무개(22)씨는 고등학교를 중퇴했다. 뚜렷한 직장은 아직 없다. 어머니는 집을 나갔고 아버지는 실업자다. 김씨는 사회에 불만이 많다. 머리는 두피가 보일 정도로 짧게 잘랐고, 어두운 낯빛에 표정도 없었다. 그는 "잘난 여자, 돈 많은 사람, 똑똑한 사람, 공부 잘하는 사람, 권력을 갖고 다른 사람 무시하는 사람이 싫다"고 했다.

지난해 말 김씨는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누리집에 드나들기 시작했다. 그는 "일베에서 '김치×'(여성비하적 표현)이라고 욕하는 글을 쓰면 기분이 풀린다"고 무뚝뚝하게 말했다. 일베는 친구가 "욕하고 이상한 글 쓰면서 재밌게 노는 곳"이라며 소개해줬다.

그렇게 놀다가 정치인 비방글들도 만나게 됐다. 정치 성향이란 게 딱히 없던 김씨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민주화가 뭔진 잘 몰라요. 일베에서 처음 들었고, 전두환·박정희도 일베에서 처음 알았어요." 최근 문제가 된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 묻자, 그는 "광주 폭동이요?"라고 되물었다. "전두환이 탱크로 밀어버린 거라고 일베에서 봤어요."

"다들 '병신드립' 하면서 놀아요""상위 1% 사람들과도 평등댓글""일베 비판보도 나오면 기뻐요"가식없는 비난·모욕, 맘에 들어자주 드나들며 정치성향 바뀌어일탈적 문화 즐기며 카타르시스

또다른 일베 회원 조아무개(23·여)씨는 김씨와는 다소 다르다. 스스로를 '좌좀'(좌파를 비하하는 말)이었다고 소개했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에도 나갔다고 한다. 2011년 8월 유머글을 찾아보다가 우연히 일베를 알게 됐다. "가식 없이 서로를 비난하고 욕하고 노는 게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자주 드나들면서 정치적 성향은 서서히 바뀌었다. "반값등록금 안 해준다고 이명박 대통령 욕했는데 알고 보니 김대중 대통령 때 등록금이 더 올랐더라고요. 미국 쇠고기 계속 먹어도 광우병 안 걸리고 있고."

일베에 3년 전부터 드나든 김아무개(31)씨는 일베에 게시되는 탈북자들의 증언과 종합편성채널 방송 내용에 관심을 많이 보였다. "광주에 북한군이 침투했다는 거예요. 북한에서 온 사람들이 하는 얘기인데 설마 거짓말은 아니겠지요. 우리가 알던 광주사태의 진실이 다를 수도 있겠다 생각하게 됐어요."

정치 이슈에 관심을 기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일탈적 하위문화를 즐기는 데 더 빠져 있어 보였다. "여기선 다들 '병신드립'(스스로 못난 것을 증명하는 놀이) 하면서 놀아요. 서로 얼마나 병신인지 얘기하지요. 그게 재밌어요." 김씨가 말했다.

인터넷의 일반적 속성이라 할 '평등'을 일베에서 경험하게 되는 것도 매력적이라고 한다. 김씨는 "의사·판사·교수·기자들도 같이 와서 논다. 상위 1% 사람들이 우리랑 이러고 노는 건 여기밖에 없다"고 자랑했다.

김동근(24)씨는 '일베충'(일베 이용자를 비하해 일컫는 말) 인형을 판매하는 사업을 할 정도로 일베에 푹 빠져 있다. 그는 일베의 사회일탈적 소란의 근원으로 '레벨시스템'을 들었다. 레벨을 올리기 위해 더욱 과격한 글과 사진을 올리게 된다는 것이다. 일베에는 레벨이 25까지 있고 수십만개의 추천을 받아야 레벨 최고등급까지 갈 수 있다. 주목도를 높이기 위해 누리집 해킹, 전직 대통령 패러디, 광주 출신 연예인 비하 행위 등을 한 뒤 증명글을 올리는 경우가 많다. "일베 이용하는 사람들 중 10% 정도는 '일간베스트글'로 올라가는 것에 연연하며 글을 써요. 삶의 목표죠."

이들은 자신들에게 비난이 쏟아지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딱히 억울해하지도 않았다. "저를 일베충이라고 해도 좋아요. 어차피 저는 '또라이'니까요. 괜찮아요." 언론에 일베를 비판하는 보도가 나오면, 일베 회원들은 "방송에 일베 나왔다"며 기뻐하는 글을 올린다.

웹데이터 분석기관인 랭키닷컴의 자료를 보면, 일베는 올 1~4월 순수 방문자수(피시 이용자 기준)가 월평균 198만명에 달했다. 전체 인터넷 이용자 100명 중 5명꼴로 한달에 한 번 이상 일베를 방문하는 셈이다.

글·사진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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