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윤창중은 없었다" 방미 동행 취재기!

정준형 기자 2013. 5. 21.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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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부 정준형 반장입니다.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 성추행 의혹 사건에 대한 기사들이 좀 뜸해진 것 같습니다. 청와대를 출입하는 기자들도 더 이상 기사로 쓸게 없다고 말 할 정도입니다. 앞으로의 관심은 미국 경찰이 윤 전 대변인 수사를 얼마나 빨리 진행하느냐, 언제 윤 전 대변인이 미국에 가서 조사를 받느냐, 피해를 당한 여성인턴의 진술 내용은 정확히 뭐냐, 문제의 8일 아침 윤 전 대변인의 방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냐, 윤 전 대변인은 어떤 처벌을 받게 되느냐, 청와대는 후속 정리를 어떻게 하느냐 등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번 성추행 의혹 사건을 취재하고 기사를 쓰는 동안 제 개인적으로도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첫 해외 순방을 동행 취재하기위해 출국할 때만해도 청와대 출입기자로서 나름 '자부심'을 갖고 전용기에 올랐습니다만, 돌아오는 길엔 마치 함께 '죄인'이 된 듯한 기분으로 비행기에서 내려야 했습니다. 그리곤 시차적응할 틈도 없이 일주일 가까이 쉼없이 일을 해야했습니다.

역대 정부 대통령의 첫 해외 순방인 미국 출장의 경우, 청와대 출입기자들 사이에서는 노동 강도가 어느 취재보다 높기로 악명이 높습니다. 12-13시간에 달하는 정반대의 시차, 하지만 시차에 적응할 틈도 없이 쏟아지는 업무량 때문에 하루 2-3시간 밖에 잠을 못자면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방송사 취재기자들의 경우 아침-낮-오후-저녁-심야 마감뉴스에 맞춰 방송 리포트를 제작하다 보면 하루 1-2시간도 눈을 붙이기 어렵습니다. 대통령의 첫 해외순방을 취재하고 국민들에게 알린다는 '보람'과 '자부심'으로 버틸 수 밖에 없는 강행군 출장인 것입니다. 이번 박 대통령의 미국 방문 동행취재 역시 그런 고생스러운 출장이었습니다.

아..그런데 그때 무슨 일이 벌어진걸까? 돌아보면 찰나의 시간들이었는데, 왜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 자부심과 보람이 한 순간에 '악몽'으로 추락해버린 그 일은 어떻게 일어난 것일까? 한국 시간 5월 5일부터 10일까지 4박 6일동안 대통령의 미국방문 동행 출장기를 간략하게 올려보면서 윤 전 대변인과 관련된 일을 정리해봤습니다.

<5월 5일 출국>

평소 조용하기만 하던 청와대 춘추관 앞마당은 이날 오전 대통령의 첫 해외순방을 동행 취재할 청와대 기자들의 왁자지껄한 소리로 시끄러웠습니다. 취재기자와 카메라 기자, 사진기자 등 모두 78명의 기자들이 대통령의 미국 방문을 동행 취재했는데, 대부분 기자들이 대통령의 해외 순방을 처음으로 동행 취재하다보니 무척이나 들뜬 기분이었습니다. 기자들을 행정 지원할 청와대 직원 13명까지 합하면 모두 91명에 달했는데, 청와대 직원들 역시 대부분 첫 해외순방 수행이어서 설레임과 자부심이 가득한 모습이었습니다.

오전 11시반 동행취재 기자단과 수행원들을 실은 버스는 청와대를 떠나 대통령 전용기가 있는 성남공항으로 이동했습니다. 이어 오후 2시 전용기는 성남공항을 이륙해 첫 기착지인 미국 뉴욕으로 향했습니다. 전용기가 이륙하기 전 기자단보다 늦게 비행기에 오른 윤창중 전 대변인을 잠깐 봤습니다. 활짝 웃는 모습이었습니다.

<5월 5-6일 전용기안>

전용기가 이륙하고 뉴욕까지 12시간이 넘게 걸렸습니다. 그 사이 지루함을 견디지 못한 일부 기자들은 중간 중간 전용기 뒤편에 마련된 조그만 테이블에 모여 대통령의 미국 방문 일정을 주제로 이야기 꽃을 피웠고,청와대 기자실을 관리하는 춘추관장과 이남기 홍보수석 등이 테이블로 찾아와 미국 방문 일정과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에 답을 해주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때 윤창중 전 대변인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누구보다 기자들과 호흡을 같이 해야할 대변인이 보이지 않는다?

나중에 비행기에서 내릴 때 보니 윤 전 대변인은 자기 자리에서 푹 자고 일어난 모습으로 나타나더군요. 그래서 제가 "잘 주무셨느냐"고 물었더니 윤 전 대변인이 "잘 잤다"고 대답하던 모습이 또렷이 기억납니다. 그때만 해도 위에서 말한대로 미국 방문 일정이 워낙 힘드니까 대변인이 시차에 적응하려고 미리 잠을 푹 자뒀나보다하고 생각했습니다.

<5월 5일 뉴욕 (*이하 미국 현지시간)>

미국 현지 시간으로 5일 오후 3시쯤 뉴욕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대통령과 기자들의 숙소가 달랐기 때문에 박 대통령과 수행단이 먼저 숙소로 향하고, 기자단은 나중에 숙소인 호텔로 이동했습니다. 호텔에 도착해서는 방으로도 가지 못하고 곧바로 호텔 1층에 마련된 프레스센터로 향했습니다. 그 때 시간이 현지시간 오후 4시, 한국시간 6일 새벽 5시쯤이었습니다. 방송사 기자들의 경우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이 한국시간 새벽 6시부터 방송될 아침 뉴스용 리포트를 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어떻게 시간이 가는지도 모르게 일했습니다.

정신없이 아침 뉴스용 리포트를 제작하고 잠시 한숨을 돌릴 때 윤창중 전 대변인이 프레스센터를 찾아 기자들과 향후 브리핑 일정 등을 놓고 간단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어 두시간쯤 지난 저녁 7시쯤에 주철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박 대통령의 미국 방문일정과 관련해 전반적인 브리핑을 했습니다. 이때 윤 전 대변인이 옆에 배석했습니다. 주철기 수석의 브리핑이 끝나고, 윤 전 대변인은 다음날 오전 9시 30분으로 예정돼있던 박 대통령과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면담 내용을 다음날 오전 7시 30분에 미리 사전 브리핑하겠다고 예고했습니다. 다음날 오전 11시에 워싱턴으로 이동하기위해 기자들 숙소를 떠나야하는 만큼 기사작성을 위한 편의를 제공하기위해 중요 내용을 사전에 브리핑하겠다고 한 것입니다

이후 5일 밤에 윤 전 대변인을 보지 못했습니다. 방송사 기자들은 한국 시간 낮 뉴스용 방송리포트와 저녁 뉴스용 방송리포트를 만드느라, 신문기자들은 한국 마감시간에 맞춰 기사를 작성하느라 6일 새벽 3-4시까지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역대 정부 대변인들에 대한 말을 들어보면, 대통령의 해외 순방 때마다 대변인은 프레스센터에서 새벽까지 머물면서 기자들의 기사작성을 돕기위해 질문도 받고 설명도 해주고, 일이 끝난 기자들과 맥주도 한잔 한다고 들었습니다만, 윤 전 대변인은 첫날부터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첫날부터 기자들이 워낙 정신없이 바빴던 탓에 아무도 윤 전 대변인의 부재(不在)에 대해 신경을 쓸 수도, 관심을 가질 여유도 없었던 상황이었습니다.

첫날부터 대변인으로서 직무를 소홀히한 윤 전 대변인은 그날 밤 무엇을 했을까요? 아직 사실 확인은 되지 않았습니다만, 이날 밤 윤 전 대변인은 자신을 수행하던 현지 여성 인턴을 호텔방으로 불러 술을 주문해달라고 요구하고, "같이 술을 한잔 하자"고 제안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상탭니다.

<5월 6일 워싱턴 첫째날>

다음날 윤 전 대변인을 처음 본 것은 아침 7시 30분입니다. 윤 전 대변인은 전날 저녁 미리 예고했던 대

로 당일 오전 9시 30분부터 예정돼있던 박 대통령과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면담 일정에 대해 기자들에게 사전 브리핑을 했습니다. 이와함께 박 대통령에 대한 뉴욕 경찰의 전례없는 특별 경호에 대해서도 브리핑을 해줬습니다. 이 때까지만해도 아무런 문제도 없었고, 다음날 밤부터 벌어질 일에 대해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습니다.

박 대통령의 뉴욕 일정이 끝나고, 전용기가 워싱턴으로 향한 시간은 오후 2시. 1시간 뒤인 오후 3시쯤 워싱턴에 도착했습니다. 한국 시간 7일 새벽 4시였습니다. 이날도 뉴욕에 도착했을 때와 상황이 비슷했습니다. 공항에서 이동해 숙소였던 워싱턴의 페어팩스 호텔에 마련된 프레스센터에 도착한 직후부터 아침 방송용 리포트를 제작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일해야 했습니다.

이날 대통령은 알링턴 국립묘지 헌화와 한국전참전 기념비 헌화에 이어 저녁 7시에 동포간담회에 참석

하는 일정을 소화했습니다. 윤 전 대변인도 대통령의 일정을 따라 쭉 수행한 뒤 기자들에게 서면브리핑을 통해 행사 내용을 알려줬습니다. 또 동포간담회가 끝난 뒤인 밤 8시에서 9시 사이에 프레스센터를 찾아와 다음날 아침 7시에 한미 정상회담과 관련한 사전 브리핑을 하겠다고 예고했습니다.

그리고 이후 프레스센터에서 윤 전 대변인의 모습은 볼 수가 없었습니다. 이 역시 전날 밤 뉴욕에서 상황과 비슷했습니다. 기자들은 어땠을까요? 이 날도 역시 대부분 기자들은 다음날 새벽 늦게까지 잠을 자지 못하고 일을 해야했습니다. 이때도 아무도 윤창중 전 대변인에게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었던 날이었습니다.

<5월 7일 워싱턴 둘째날>

다음날 윤 전 대변인은 예고했던 대로 아침 7시에 정상회담 내용을 사전 브리핑했습니다. 미국 시간으로 7일은 박 대통령 미국 방문일정 가운데 가장 중요한 날이었습니다. 낮 11시 30분 한미 정상회담에 이어 오후 1시 30분 오바마 대통령과 공동기자회견이 예정돼 있었고, 이어 워싱턴포스트와의 기자회견, 저녁 7시부터 8시 30분까지는 한미동맹 60주년 만찬 행사 등이 잡혀있었기 때문입니다.

기자들은 이날도 숨가쁘게 기사를 전송하고 방송 리포트를 제작해야했습니다. 방송 기자들의 경우엔 백악관 공동 기자회견이 한국 시간으로 8일 새벽 3시에 열렸던데다, 한국 시간으로 8일 밤 11시 30분에 박 대통령의 미국 의회 연설이 예정돼있어, 다음날인 현지시간 8일 새벽 까지 내내 방송 뉴스 준비를 하며 보내야했습니다.

윤 전 대변인의 경우도 7일 저녁까지 박 대통령의 일정을 수행하느라 바쁘게 보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오후 5시쯤엔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함께 프레스센터를 찾아와 윤 장관이 공동기자회견에 대한 백 브리핑을 할 때 배석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윤 전 대변인이 공식 업무를 위해 바쁘게 보낸 것은 한미 동맹 60주년 만찬행사가 끝난 저녁 8시반까지였습니다.

이후 정상적 대변인의 직무대로라면 곧바로 프레스센터로 돌아와 기자들에게 만찬회동에 대해 브리핑하고, 가장 중요했던 정상회담에 대한 뒷이야기를 해주든지, 아니면 기자들에게 수고한다고 인사라도 건넸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날 밤 윤 전 대변인은 기자들이 있는 프레스센터를 찾지 않았습니다. 만찬회동에 대한 내용도 부하직원들을 통해 서면브리핑하는 것으로 그쳤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한미동맹 만찬 60주년 행사가 끝난 뒤 무엇을 했을까요? 이후부터는 그동안 언론에 보도돼온 내용대로입니다. 자신을 수행하던 인턴여성, 그리고 자신의 차를 운전했던 수행 운전기사와 함께 기자들이 머물고 있는 숙소가 아닌 다른 호텔의 바에 가서 자정이 넘어서까지 술을 마셨습니다. 이 때 이른바 '엉덩이를 움켜쥐었다"는 1차 성추행 의혹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5월 8일 새벽>

그 시간, 기자들은 기사를 작성하느라 다른 것에 한눈 팔 틈도 없이 업무를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기자들 대부분 새벽까지 정상회담과 관련한 기사를 송고하느라 프레스센터를 떠나지 못하고 정신없이 보냈습니다. 대통령 방미 일정의 하이라이트인 '한미 정상회담 결과'에 대한 기사가 그만큼 중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기사 송고를 마친 기자들은 새벽 4-5시쯤이 돼서야 각자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아침까지 잠시 눈을 붙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시간 윤 전 대변인은 무엇을 했을까요?

(*여기서부터 윤 전 대변인의 행적은 저를 포함한 기자들도 나중에 알게된 내용입니다)

7일 밤 여성 인턴과 함께 호텔바에서 술을 마신 윤 전 대변인은 자정이 지나 기자들과 자신의 숙소인 호텔로 돌아와 부하직원들과 고생했다며 잠시 시간을 보낸 뒤 다시 호텔을 나갔고, 새벽 4시30분에서 5시사이에서야 호텔로 다시 돌아오는 모습이 일부 기자들에게 목격됐습니다. 윤 전 대변인이 호텔을 다시 나갔다가 돌아온 그 시간은 무엇을 했는지는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고 있는 이른바 '미스터리 시간'입니다. 이어 1시간쯤 뒤인 새벽 6시 윤 전 대변인의 방에서 이른바 2차 성추행 의혹 사건이 발생합니다. 여성 인턴이 윤 전 대변인의 방에 왔다가 거의 알몸이다시피한 그의 모습을 보고 놀라서 자신의 방으로 달아났다는 것입니다.

이후 피해 여성은 자신의 방에서 방을 함께쓰던 주미 한국문화원 여직원과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보고를 했고, 이 소식을 들은 청와대 직원과 주미 한국문화원 직원이 아침 7시쯤 피해 여성의 방을 찾아가 달래면서 신고를 만류했습니다. 하지만 피해 여성은 "필요없다"며 아침 8시 12분에 윤 전 대변인을 성추행 혐의로 경찰에 신고했고,경찰이 8시 30분쯤 호텔로 찾아와 피해여성으로부터 진술을 받았습니다.

문제의 성추행이 발생하고 신고를 받은 경찰이 출동하기까지 새벽 6시부터 아침 8시반까지2시간 30분 동안, 현장에 있던 기자들 어느 누구도 그런 움직임에 대해 알아챌 수가 없었습니다.위에서 말했지만, 그 시간 대부분의 기자들이 새벽까지 일하고 잠시 눈을 붙이던 시간이었던데다,방송사 기자들도 저녁 뉴스용 방송 리포트를 제작하느라 다른데 신경쓸 여유가 없었던 시간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사각지대였던 셈인데, 당시 현장에 있던 청와대 직원들이나 주미대사관 관계자들이 '쉬쉬'하면서 누구도 낌새를 알아챌 수가 없었던 상황이었습니다.

<5월 8일 사건 이후>

이후 시간은 아무런 문제없이 흘러갔습니다. 특히나 현지 시간으로 오전 10시 30분, 한국 시간으로 8일 밤 11시 30분부터 30분동안 박 대통령의 상하원 합동연설이 진행된데다, 워싱턴에서 LA로 이동을 하기위해 호텔에서 낮 12시쯤에 나와야했기 때문에 대부분 기자들이 오전 내내, 호텔을 떠나기 직전까지 기사를 송고하느라 잠시의 여유도 없이 보내야 했습니다. 이 때문에 이 때까지도 아무도 윤 전 대변인의 성추행 의혹 사건이 일어나고, 신고를 받고 경찰이 출동했다는 것을 알 지 못했습니다. 거듭 이야기하지만, 워낙 일이 빡빡하다보니 다른데 눈 돌리고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었던 상황이었습니다.

역시 나중에 알려진 일이지만, 이 사이 윤 전 대변인은 오후 1시 35분에 출발하는 한국행 대한항공기에 탑승하고 먼저 귀국했습니다.

오후 3시에 대통령과 수행단, 기자단을 태운 전용기는 워싱턴 공항을 떠나 LA로 향했습니다. LA 공항에는 현지 시간 오후 5시 40분쯤 도착했고, 곧바로 숙소와 프레스센터가 마련된 호텔로 이동해 저녁 6시 30분쯤 호텔에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이때까지 기자들 가운데 누구도 윤창중 전 대변인이 LA행 비행기에 탑승하지 않아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호텔에 도착한 뒤엔 역시 이전 날들과 사정은 비슷했습니다. 호텔에 도착한 직후부터 새벽까지 저녁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 대부분 기자들 모두 한국 시간에 맞춰 기사작성에 매달려야 했습니다. 일부 기자들이 윤창중 대변인이 보이지 않는다며 "이상하다"는 말을 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기자들은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기자들에게 윤 전 대변인의 존재감이 약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때 청와대 수행단은 이미 LA행 전용기안에서 대책회의를 갖고, 서울에 남아있는 청와대 수뇌부와 연락할 정도로 상황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고, 대통령에게 보고만 남겨둔 상황이었습니다. 기자들만 돌아가는 사정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박 대통령은 저녁 7시 20분부터 8시 30분까지 LA지역 동포들과 간담회를 갖는 것으로 8일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5월 9일 악몽의 시작>

제 경우 저는 5월 9일 새벽 4시까지 일을 해야했습니다. 호텔방에 돌아가 샤워하고 억지로 눈을 붙인게 새벽 4시반에서 5시쯤, 1시간 정도 자고 난 뒤인 새벽 6시쯤 서울에서 급하게 찾는 전화가 왔습니다. 정치부장이었습니다. 아직 잠에서 깨지 못하고 몽롱한 상태인 제게 부장은 대뜸 이렇게 묻더군요. "윤창중 대변인이 LA에 함께 안왔나?" 으잉, 이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람! 부장의 다소 황당한 질문을 계속 이어졌습니다. "윤창중 대변인이 여성 인턴을 성추행했다는데 알고 있나?" 엥, 이건 또 무슨 엉뚱한 말이람! 부장의 연이은 질문에 "확인해보고 전화드리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부장이 심각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더군요. "미국 워싱턴에서 교포들 사이에 인터넷을 통해 윤창중 대변인이 여성 인턴을 성추행했다는 말이 빠르게 돌고 있고, 이미 서울 기자들한테 제보까지 왔다"는 겁니다. 잠이 일순간에 확 깨더군요. 악몽이 시작되던 순간이었습니다. 확인해보고 연락하겠다고 전화를 끊고 곧바로 여기저기 전화를 돌려봤습니다. "가장 먼저 윤창중 전 대변인이 어디 있느냐?"고 몇사람한테 물었더니 "개인적 집안 사정 때문에 8일날 오후에 LA로 오지않고 먼저 한국으로 귀국했다"고 확인을 해줬습니다. 하지만 성추행 부분에 대해서는 다들 모르는 이야기라고 말하더군요.

그래서 1차로 윤창중 전 대변인이 이미 서울로 갔다는 내용을 곧바로 부장께 보고한 뒤, 프레스센터로 나와 본격 취재에 들어갔고, 비슷한 시간에 일부 경쟁사 기자들이 나와 취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기자들이 속속 프레스센터로 모이면서 윤창중 전 대변인의 중도 귀국과 성추행 의혹에 대한 본격 취재 경쟁이 시작됐습니다. 현지 시간으로 오전 10시가 넘어 윤 전 대변인이 여성 인턴을 성추행한게 거의 맞다는 쪽으로 사실 확인이 됐고, 오전 11시 이남기 홍보수석이 기자회견을 갖고 "박 대통령이 윤 전 대변인을 경질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후 현지 프레스센터 상황을 머리로 상상해보시기 바랍니다. 특히 LA에서 전용기가 한국으로 출발할 시간이 오후 2시 20분이었고, 호텔에서 기자단이 낮 12시에 공항으로 출발해야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낮 12시가 한국시간으로는 새벽 4시였기 때문에 방송사 기자들은 호텔을 떠나기에 앞서 아침용 뉴스 리포트를 급하게 제작하느라 또 한바탕 난리를 쳐야했습니다.

<5월 10일 귀국(*이하 한국 시간)>

그렇게 난리를 치고 전용기를 타고나니 모두가 하나같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들이었습니다.어떻게 대통령의 방미 기간 동안에 대변인이라는 사람이 그럴 수가 있을까, 도저히 상상이 안된다는 표정들이었습니다. 다들 한국에 돌아갔을 때 상황이 끔찍하다고 말을 하면서 삼삼오오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대부분은 "잠도 못자고 정말 힘들게 일했는데, 아무런 보람이 없게 됐다"며 혀를 차더군요.

서울 시간으로 10일 저녁 6시 40분쯤 성남공항에 도착해 회사로 전화해보니 예상했던대로 난리가 났더군요. 그날 SBS 8시 뉴스에 톱으로 5꼭지가 보도됐는데, 경쟁 방송사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려 짐을 찾고 청와대로 돌아가니 저녁 8시. 평상시 순방때 같았으면 서로 고생했다는 격려의 인사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 편히 쉬어야할 때 대부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밤 12시가 넘어서까지 청와대에서 또 일을 해야 했습니다. 아, 그 난감함이란 어떻게 말로 표현해야할까요. 동료 기자 한 사람이 이런 말을 하더군요. "4박 6일 출장이었는데 4박 7일 출장이 됐다"

이후 전개될 이야기는 여러분들도 뻔히 짐작이 가실 것으로 생각돼 여기서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끝으로 다시 시간을 거꾸로 되돌려 한가지만 말씀드리자면, 다른 것들은 논외로 하더라도, 도대체 대변인이란 사람이 LA행 전용기를 탔는지 안탔는지 조차 기자들은 왜 모르고 있었던 것일까요? 그렇습니다. 이미 청와대 출입기자들에게 윤창중 전 대변인의 존재감은 없었던 것입니다. 그가 브리핑을 한다고 하면 하는 것이고, 아니면 말고 식이었던 것입니다. 당시 정신없이 일이 쏟아지기도 했지만, 대부분 그에게 관심을 두고 있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 말은 대부분 그를 먼저 찾지 않았고, 그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는 말이고, 윤 전 대변인은 이미 기자들로부터 청와대 대변인으로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박 대통령의 미국 방문을 동행취재한 기자들에게 윤 전 대변인은 사실상 별다른 존재감이 없었던 사람이나 마찬가지였던 셈입니다. 윤창중 전 대변인은 자신이 기자들에게 그런 평가를 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또 그 이유는 무엇이었는지를 알고 있을까요? 아마도 모르고 있을 것이고, 앞으로도 모를 가능성이 클 것입니다.정준형 기자 goodju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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