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멸·격려·무시.. 동성애를 보는 시선들.. 이성애자 곽희양 기자 '동성애 1인 시위' 체험기

곽희양 기자 입력 2013. 5. 16. 01:53 수정 2013. 5. 16.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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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앞에선 '밀쳐내고' 일부 시민은 '격려하고'.. 극과 극 반응

경향신문 곽희양 기자입니다. 서울시내 3곳에서 최근 손팻말을 들고 2~3시간씩 1인 시위를 벌였습니다. 손팻말에는 '저는 동성애자입니다. 동성애자도 여러분과 똑같이 살아갈 권리가 있습니다. 차별금지법 제정'이라는 문구를 넣었습니다. 성소수자에 대한 한국 국민들의 다양한 시선을 알아보기 위해서였습니다. 경향신문은 이성애자인 경향신문 기자가 동성애자로 자처하면서 시위를 하는 것이 문제는 없는지 성소수자 단체 4곳에 의견을 물었습니다. 이들은 "몇 시간 동안의 시위로 실제 성소수자가 느끼는 차별을 경험했다고 착각해선 안된다"고 당부했습니다. 17일은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입니다. 동성애자 차별금지 등의 항목을 담은 차별금지법은 국회에서 입법이 철회됐습니다.

■"우리 교회 앞에서 하지 마라"(5일 중구 한 대형 교회 앞)

일요일. 손팻말을 들자 한 60대 남성이 다가왔다. 그는 "뭐라고 썼어. 뭐라고 썼느냐고. 경찰에 신고할 거야"라고 윽박질렀다. 몇몇 교인은 "동성애? 쳇"이라며 비웃음을 남겼다. 교회 관계자가 나를 정문 밖으로 밀어냈다. 정문에서 7~8m 떨어진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예배를 마치고 나온 교인 수백명의 시선이 나에게 모였다. 7~8명의 교인이 "왜 우리 교회 앞이냐. 다른 곳에서 하라"고 쏘아붙였다. '자원봉사부'라고 쓰인 조끼를 입은 교인은 내가 들으라는 듯 큰소리로 말했다. "어느 누가 동성연애를 좋아해. 지 어미도 아들 낳았다고 미역국 먹었겠지. 부모님 가슴에 못박는 일이라고." 그러자 다른 교인이 "부모 생각하겠어요. 내비둬요, 어휴"라고 했다.

'이성애자' 경향신문 곽희양 기자가 지난 5일 서울 중구 한 대형 교회 앞에서 동성애자 차별에 반대하는 1인 시위 체험을 하다가 교회 관계자의 제지를 받고 있다(왼쪽 사진). 9일 서울 마포구청 앞에서는 한 여성의 격려를 받았다. | 서성일·김기남 기자 centing@kyunghyang.com

부드러운 말로 나를 설득하려는 이들도 있었다. 50대 여성은 "예수 믿으세요. 그러면 왜 (동성애를) 반대하는 줄 알 테니까"라고 말했다. 50대 남성은 "사랑하는 차원에서 모두 귀한 자녀지만, 우리는 성경의 음과 양의 창조원리를 근거로 하는 모임이다. 다른 곳으로 가달라"고 말했다.

교인들은 서로 안부를 건네고 웃음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그 웃음소리는 나와는 전혀 다른 세상의 '행복'으로 들렸다. 성소수자들이 평생 이와 같은 느낌으로 살아가고 있으리라 어렴풋이 추측했다.

■"저 진짜 이해하거든요"(7일 합정역 사거리)

합정역 사거리는 '마포구레인보우주민연대'라는 성소수자 단체가 '지금 이곳을 지나는 사람 열 명 중 한 명은 성소수자입니다'라고 쓰인 현수막을 내걸려다 마포구청의 불허로 좌절된 곳이다. 많은 시민들이 빠른 걸음으로 횡단보도를 건너며 피켓을 쳐다보다 나와 거리가 가까워지자 애써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나에게 위협적인 말을 건네는 사람은 없었다. 한 30대 여성이 나를 보며 "파이팅" 하고 주먹을 움켜쥐었다. 나도 웃음으로 답했다. 처음으로 느낀 환대다. 1시간쯤 지나자 20대 여성이 길을 가다 돌아섰다. 그는 "제 친구도 동성애자거든요. 저 진짜 이해하거든요"라고 어렵게 말을 건넸다. 코끝이 찡해졌다. 또 다른 20대 여성은 "고생이 많으세요. 힘내세요"라며 비닐봉지를 건넸다. 안에는 음료와 빵이 들어 있었다. '그래도 내 편은 있구나'라는 위로감에 눈물이 핑 돌았다. 이날 피켓을 보고 지나간 200~300명 중 나에게 반응을 보인 이는 딱 3명이었다.

대부분 무관심한 듯 고개를 돌렸다. 구청 측이 나에게 제재를 가하진 않았다. 20여분이 지나자 20대 여성이 다가왔다. 그는 "드실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이라며 호두만주와 따뜻한 커피를 건넸다. 커피를 건네받은 손보다 가슴이 더 따뜻해졌다. 고맙다는 말에 "힘내시라"는 응원이 돌아왔다. 30대 여성도 우산을 접으며 "파이팅" 하며 웃어보였다. 전화통화를 하며 지나던 남성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기도 했다.

양복 차림에 모자를 쓴 60대로 보이는 남성이 피켓을 한참 바라봤다. 그는 "프랑스는 그거(동성결혼) 허용했잖아. 근데 꼭 그렇게까지 (동성애를) 하려고 해"라고 물었다. 그는 '동성애를 나쁘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에이, 아니야"라고 답하고 지나갔다. 50대로 보이는 남성도 "외국에서는 허용했잖아"라고 말했다. 전동 휠체어를 타고 지나가던 장애인 남성이 손팻말을 바라보며 "그거 안 좋아요. 안 좋아요"라고 했다. 하지만 나와 눈이 마주치자 활짝 웃으며 인사를 했다. 1인 시위 3일간 많은 사람들이 보인 태도는 대부분 무관심이다. 일부는 경멸하거나 비난하기도 했다. 하지만 성소수자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몇몇 시민들의 마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 자신이 남성, 여성 또는 그 밖의 성별이라는 개인의 내면적인 인식. 구체적으로 각 개인이 깊이 느끼고 있는 내적인 성별(Gender)의 경험으로, 이 경험은 태어날 때 부여된 성과 일치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 남성, 여성 또는 양성에 대한 지속적인 감정적, 애정적, 성적 끌림 또는 이를 기반한 개인의 정체성.

< 곽희양 기자 huiyang@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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