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아보자" 직장 내 갑의 성희롱.. "피해구제 안돼" 을의 한탄

남보라기자 정승임기자 입력 2013. 5. 14. 21:13 수정 2013. 5. 15.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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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세할수록 문제 심각 4인 이하 사업장 성희롱 10건 중 7건 가해자가 사장고용청·인권위 등 징계 권고해도 사업주 자율 무용지물 실제 징계 3.7% 그쳐

농약도소매 업체 직원 A(28)씨는 지난해 퇴근길에 집 방향이 같은 사장의 차를 탔다. 그런데 사장은 갑자기 차 안에서 A씨의 가슴을 움켜쥐었다. 그 충격에 회사에 출근하지 않자 사장은 A씨에게 전화해 "부인이 해외에 나가서 없으니 함께 자자"고 말했다. 이 일을 알게 된 사장 부인은 되레 A씨를 찾아와 "고소할 테면 해라. 너만 망신이다"며 협박했다. A씨는 결국 4개월 만에 회사를 그만뒀다.

한 유통업체에 취업한 B(24)씨는 입사 일주일 후부터 차장이 어깨와 허리를 만지며 추행했고, 급기야 CCTV가 없는 곳으로 데려가 가슴과 엉덩이를 만지며 자신의 몸을 비벼 댔다. B씨는 이 사실을 사장에게 말해 차장은 결국 퇴사했다. 그러나 회사는 회의시간에 공개적으로 성추행 얘기를 하며 B씨를 곤란하게 했고, "차장이 사표를 썼는데 너는 어떻게 할 거냐?"며 사직을 종용했다. B씨는 1개월 만에 회사를 나와야 했다.

직장 내 성희롱은 상관과 부하직원이라는 '갑을 관계'에서 벌어지기 때문에 피해를 당한 후에도 제대로 구제받기가 어렵다. 민간 기업, 특히 영세한 기업은 더욱 문제가 심각하다. 공공부문이나 대기업과 달리 징계 체계가 갖춰지지 않기 일쑤고 접촉은 더 빈번하기 때문이다.

14일 한국여성노동자회 평등의 전화에 따르면 지난해 성희롱 상담 전체 354건을 분석한 결과 4인 이하 영세사업장에서 발생한 성희롱 10건 중 7건의 가해자가 사장이었다. 사장에 의한 성희롱은 4인 이하 사업장에서 66.7%, 5~9인 사업장은 42.9%, 10~20인 사업장은 41.9%로 규모가 작을수록 사장들의 위력에 의한 성희롱이 많았다. 실제로 전체 성희롱의 70.6%가 3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어났다.

성희롱 피해자는 주로 20대 사회초년생으로 약자 중 약자였다. 피해자의 40.1%가 30세 미만이었고 30~34세도 20.3%나 됐다. 또 근속 1년 미만자가 58.7%였고 근속년수가 길어질수록 피해자도 감소, 힘이 약하고 낮은 위치에 있는 여성들이 주로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이들이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다. 직장 내 성희롱 문제는 주로 회사의 인사담당자나 고충처리위원이 사건을 조사, 징계절차를 밟는다. 30인 미만 사업장은 고충처리위원이 의무화되어 있지 않다.

사내에서 해결하지 못할 경우 지방고용노동청이나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해 피해 구제를 요청할 수는 있다. 지방고용청은 사업장 내에서 발생한 성희롱에 대해 사업주가 책임져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사업주에게 과태료를 부과하고 가해자에게 불이익을 주라고 권고하지만, 실제 가해자를 징계할지 여부는 사업주 자율이다. 인권위의 결정 역시 강제성은 없다. 특히 영세사업장의 경우 징계권자인 사장이 가해자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런 구제절차로 사장을 처벌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실제로 지난 4월 취업포털 사람인이 여성 직장인 1,036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33.6%가 직장 내에서 성희롱을 당한 경험이 있었지만 가해자가 징계나 처벌을 받은 것은 3.7%에 불과했다.

또 10인 미만 영세 사업장은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이 의무 사항이 아니라 예방도 사각지대지만 여성 대다수는 이런 소규모의 영세업체의 비정규직으로, 완벽한 '을'로 일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노동자회 송은정 노동정책부장은 "성희롱은 주로 권력관계에서 발생하는데 대다수 여성노동자들이 비정규직으로 언제 잘릴지 모르는 상황에서 일하다 보니 피해를 겪게 된다"며 "여성 노동의 질을 개선하는 게 성희롱을 막기 위한 가장 근본적인 해결 방법"이라고 말했다.

남보라기자 rarara@hk.co.kr정승임기자 cho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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