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말라" 거절당하자..청와대, 윤창중과 함께 피해자 또 찾아가

2013. 5. 14.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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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청와대·문화원 커지는 은폐 의혹

전광삼 행정관 2차 방문땐피해자 문 잠근채 안열어줘최초 사건인지 더 빨랐을수도미국경찰 현장조사 나서자윤, 이남기 수석 방에 머물러공항 떠날땐 문화원 차 이용

청와대 방미 수행단과 현지 한국문화원이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을 무마·은폐하려 했다는 정황이 잇따라 드러나고 있다. 14일 호텔 와인바에서 '1차 성추행'을 당한 피해 여성이 한국문화원 쪽에 이런 사실을 알렸으나 문화원 쪽에서 묵살했다는 의혹이 새로 불거졌다. 또 청와대와 문화원 쪽이 피해자를 찾아가 성추행 상황을 설명 듣고 회유를 시도하다 실패로 돌아가자, 다시 '가해자'인 윤 전 대변인을 데리고 호텔방에 찾아가 무마하려 한 사실이 추가로 드러났다. 이들은 피해 여성이 방문을 걸어 잠근 채 경찰에 신고하자 황급히 자리를 뜬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8일 아침 7시30분 최아무개 워싱턴디시(DC) 한국문화원장과 전광삼 청와대 홍보수석실 선임행정관이 성추행을 당한 지원요원이 묵고 있는 페어팩스 호텔 방문을 두드렸다. 앞서 전 선임행정관은 다른 청와대 행정관한테서 '윤창중 대변인이 여성 지원요원을 성추행했다'는 사실을 보고받았다. 이 행정관 역시 워싱턴디시 한국문화원 직원에게서 '성추행당한 지원요원이 울고 있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대형 사고가 터졌다'는 판단에 따라 전 선임행정관에게 이런 사실을 알린 것으로 전해졌다. 방문이 열렸고, 피해 여성과 한방을 쓰는 한국문화원 소속 여직원이 성추행 사실을 전하며 "경찰에 신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당시 청와대 방미 수행단과 한국문화원 직원들은 피해 여성을 잘 아는 지인들에게 '제발 경찰 신고만은 하지 말아달라'고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 방미 성과를 한방에 날려 버릴 폭발력 있는 사안으로 판단한 것이다. 국제적 망신에 외교문제로 비화할 수 있는 사건이었다.

그러나 설득에 실패한 최 원장과 전 선임행정관은 2차로 가해자인 윤 전 대변인을 데리고 다시 피해 여성의 호텔방을 찾았다. 윤 전 대변인을 데려가 직접 사과하도록 하는 선에서 사건을 무마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번에는 방문이 열리지 않았다. 한국문화원 소속 직원은 "더 이상 (문화원에서) 일하지 않겠다"며 방문을 걸어 잠근 채 대화에 응하지 않았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청와대와 한국문화원은 '사태 수습' 차원의 행위였다고 해명하고 있다. 하지만 피해 여성과 한국문화원 직원에게는 청와대 선임행정관과 직속상관, '가해자'인 청와대 대변인까지 나서서 사건을 무마하려는 '압력'으로 비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더욱이 청와대는 이런 사실을 감춰오다 언론의 추적 보도가 계속되자 14일에야 이를 확인해 사실을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을 자초했다.

지원요원이 성추행 사실을 한국문화원 쪽에 최초로 보고한 시점이 애초 알려진 8일 아침이 아니라 1차 성추행 직후인 이날 자정 전후이며, 이를 한국문화원 쪽이 묵살했다는 말이 피해 여성 주변에서 나오고 있다. 피해 여성은 숙소인 페어팩스 호텔로 돌아와 윤창중 전 대변인에게 더블유(W)워싱턴 호텔 와인바에서 성추행당한 사실을 한국문화원 직원에게 알렸고, 이 직원이 곧바로 한국문화원 간부에게 이런 사실을 보고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간부는 "중차대한 시기에 일을 크게 만들지 말라"며 성추행 보고를 자기 선에서 덮으려 했다는 것이다.

이런 정황들을 고려하면, 결국 한국문화원은 1차 성추행을 대수롭지 않은 일로 간주해 은폐하려 했고, 다음날 아침 피해 여성을 호텔방으로 불러 2차 성추행을 시도한 사실이 알려진 뒤에도 청와대와 함께 무마·은폐를 시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결국 '경찰에 신고하겠다'는 말이 나온 뒤에야 한국문화원장과 청와대 선임행정관이 황급히 찾아가고, 급기야 가해자인 윤 전 대변인까지 내세웠지만, 오히려 피해 여성 쪽의 분노만 부채질하는 상황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한국문화원의 한 간부는 "나를 포함해 문화원 간부 가운데 누구도 그런 보고(1차 성추행)를 받은 적이 없다. 그런 일을 알았다면 절대 묵과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사건 은폐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윤 전 대변인이 피해 여성을 호텔방으로 불러 벌인 2차 성추행의 강도도 애초 알려진 것보다 훨씬 센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성추행을 당한 지원요원의 신고를 접수한 워싱턴디시 경찰의 사건신고서에는 피해자가 지목한 범행장소(designated areas)를 "HOTEL/MOTEL ROOM"(호텔/모텔 룸)으로 적고 있다. 보고서에 기재된 사건 발생지 주소는 윤 전 대변인이 지원요원과 술을 마신 더블유워싱턴 호텔이지만, 사건신고서가 1·2차 성추행을 구별하지 않은 점에 비춰볼 때 범행 장소로 지목된 '호텔룸'은 2차 성추행 의혹이 불거진 페어팩스 호텔의 윤 전 대변인 방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피해 여성과 경찰 모두 와인바에서 일어난 1차 성추행보다 호텔방에서 벌어진 2차 성추행을 더 심각하게 봤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조사 내용처럼 '알몸'을 보인 것 이상의 행위가 있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윤 전 대변인이 자신의 호텔방에서 알몸으로 피해 여성의 엉덩이를 움켜잡았다'는 언론보도와 관련 증언도 나오는 상황이다.

정치권에선 청와대 민정수석실 쪽이 "윤 전 대변인을 체포해 미국으로 보낼 수도 있다"며 '범죄인 인도'를 사실상 기정사실화하는 배경에도 사실상 강간죄에 준하는 범행을 확인했기 때문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윤 전 대변인의 도피성 귀국을 청와대가 지시한 정황도 속속 확인되고 있다. 윤 전 대변인이 8일 새벽 6시께 호텔방에서 2차 성추행을 한 사실이 보고된 직후, 방미 수행단 홍보팀 관계자들은 긴급대책회의를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회의에서는 윤 전 대변인에 대한 미국 경찰의 조사가 시작돼 사건이 공개될 경우 한-미 정상회담의 성과가 퇴색되는 등 큰 파장이 일 것으로 판단해, 윤 전 대변인을 조기에 귀국시키는 쪽으로 의견이 모인 것으로 전해졌다.

윤 전 대변인에 대한 귀국 지시는 이남기 청와대 홍보수석이 직접 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 수석은 8일 오전 9시~9시30분께 박 대통령의 숙소인 영빈관(블레어하우스) 앞으로 윤 전 대변인을 불러 만났다. 이 수석은 이에 대해 "나는 대통령의 미 의회 연설에 참여해야 했기 때문에, 전광삼 선임행정관과 상의해보라고 했다"고 말했지만, 정황상 이 자리에서 윤 전 대변인에게 귀국을 종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뿐 아니라 이 수석은 윤 전 대변인과 만나 자신이 묵고 있던 윌러드 인터콘티넨털 호텔의 방 열쇠도 건네줬다. 당시 윤 전 대변인의 숙소인 페어팩스 호텔에는 신고를 받은 경찰이 출동해 현장 조사를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이 수석이 윤 전 대변인에 대한 미국 경찰의 조사를 피하도록 하기 위해 자신의 호텔방을 '은신처'로 제공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 윤 전 대변인은 오후 1시35분에 출발하는 귀국 비행기를 타기 위해 덜레스공항으로 출발하기 전까지 이 수석의 호텔방에 머문 것으로 알려졌다.

윤 전 대변인이 덜레스공항으로 갈 때 한국문화원에서 제공한 차편을 이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점도 윤 전 대변인의 귀국에 청와대와 한국문화원 쪽이 조직적으로 개입했다고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청와대와 주미 한국대사관은 그동안 윤 전 대변인이 스스로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갔다고 말해왔지만, 실제로는 윤 전 대변인이 한국문화원 소속 운전기사가 운전하는 승용차를 타고 공항으로 간 것으로 전해졌다.

김남일 김수헌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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