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의 길 위에서 만나다

2013. 5. 4.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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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특집2] 차별금지법 철회시키는 데 하나된 보수 기독교와 '일베'… 상호 적대적이었던 그들, 동일한 '적' 두고 손잡은 모양새

'극단의 신념'과 '극단의 혐오'는 한통속이다. 신념이 '성'을 참칭하고 혐오가 '속'을 자칭해도 '성속'은 하나의 몸에서 자라난 두 개의 얼굴이다. 민주통합당 김한길·최원식 의원을 굴복시켜 차별금지법안을 철회시키는 데 기독교와 일베(인터넷 사이트 '일간베스트 저장소')는 하나였다.

'기독교 활용론'을 제기한 일베

보수 기독교와 일베의 '동지적 관계'는 예외적인 경우다. 둘은 평소 적대적이다. 일베 누리집에서 기독교는 '좌빨 좀비'만큼이나 조롱과 비난의 대상이다. 일베 이용자들은 보수 기독교의 노골적 선악 이분법과 막무가내 선교행위를 혐오한다. < 젠틀맨 > 뮤직비디오 속 싸이를 사탄에 비유한 기독교인의 글은 일베에서 난타당했다. 자신들을 원색적 언어로 멸시하는 일베를 기독교인들도 좋아할 리 없다. 일베는 보수 기독교계가 경계하는 '기독교 폄훼세력'의 주범 중 하나다.

활동 방식도 '양'과 '음'처럼 대비된다. '성스러운 믿음'에 기초한 보수 기독교인들의 투쟁은 공개적이다. 그들은 법안 철회를 위해 의원실로 직접 항의 전화를 걸었고, 맨얼굴을 드러내며 거리에서 구호를 외쳤다. "게이들의 평균수명이 일반인들보다 25~30년이 짧다"는 신문 광고를 냈고, 휴대전화로 문자메시지를 보내며 반대운동을 독려했다. '윤리를 위협하고, 전통을 해체하며, 사이비 종교를 조장하는 법안'이란 신념 앞에서 그들은 떳떳하다.

일베들은 인터넷에서 익명으로만 움직인다. '속스러운 혐오주의'에 기초한 그들은 자신이 일베 회원임을 숨긴다. 회원들 스스로도 일베의 행위가 자랑스럽지 못하다는 점을 인정하는 편이다. 대학병원 의사로 알려진 운영자조차 향후 교수 임용에서 '부정적 평판'을 걱정하며 사이트 매각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디시인사이드'에서 삭제된 '문제적 글들'을 복원해 독립 사이트로 만든 일베는 지난해 대선을 거치며 무섭게 성장했다. 반민주적·반여성적·인종주의적 언어와 테러에 가까운 공격성으로 '극우반동의 대표 해우소'로 커가는 중이다. 최근 어나니머스 코리아의 해킹과 맞물린 '우리민족끼리' 회원들 신상털기는 검·경·국정원과 결합해 국가권력의 하위 폭력으로 변질되는 양상을 연출했다. 일베의 성장에서 '한국판 네오나치'의 징후를 읽는 목소리까지 들린다. 그들에게 차별금지법 반대는 일베를 지키기 위한 '자위 수단'이 되기도 한다. 차별금지법이 성별, 장애, 피부색, 용모, 정치적 견해, 성적 지향 등에 따라 '무차별적 차별'을 가해온 그들 자신을 위협한다는 논리다. '차별금지법=일베폐쇄법'이란 구호가 누리집에서 떠도는 이유다.

그 일베가 '기독교 활용론'을 제기했다. '이이제이론'은 물론이다. 위기에 맞서 '기독교인들이라고 까지만 말고 반대세력끼리 연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동일한 '마녀'를 앞에 두고 반목하던 보수 기독교와 일베가 극우의 길 위에서 손을 맞잡은 모양새다. 유일 진리를 내세운 과격한 신념 체계와 타자를 향한 폭력적 욕망은 같은 양분을 빨아먹고 자란다. 과장된 공포와 공포가 만든 희생양.

자신을 향한 차별로 되돌아오는 역설

기독교와 일베는 각각 '개독'과 '벌레'로도 불린다. 누리꾼들의 조롱과 조소가 담긴 호칭이다. 일베 스스로도 자신을 '충'이라 일컫고 기독교를 개독이라 깎아내린다. 인터넷에서는 차별금지법안을 철회시킨 그들을 '이제 마음 놓고 개독과 벌레로 차별하자'는 비난까지 떠돈다. '차별을 전제로 한 차별금지법 반대'가 자신을 향한 차별로 되돌아오는 역설을 그들은 지금 마주하고 있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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