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갑' 어린이집.. 굽실대는 직장엄마

송윤경·이성희 기자 2013. 4. 30.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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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늦게 데려간다' 인식.. 전업주부와 차별, 안 받아줘맞벌이 가정 우선 입소 말뿐

직장생활 13년차인 '직장맘' ㄱ씨(36)는 딸을 보낼 어린이집을 구하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다. 딸이 백일을 맞을 때부터 수난은 시작됐다. '서울시 보육포털서비스' 사이트를 통해 집 주변 6~7곳의 어린이집에 대기자 등록을 했다. 그러나 딸이 돌을 넘긴 지금까지 단 한군데서도 전화는 오지 않았다. 6개월을 쉰 뒤 직장에 복귀해야했던 그는 조바심이 났다.

그러다 전업주부 친구인 ㄴ씨의 얘기를 듣게 됐다. ㄴ씨는 한달 만에 어린이집을 구했다고 했다. ㄴ씨가 보육포털서비스 사이트에 대기자 등록을 할 때만 해도 순번은 "너무나 오래 기댜려야 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ㄴ씨는 직접 어린이집을 방문해서 "전업주부이고, 오후 4시 정도면 아이를 데려갈 수 있다"고 말했더니 즉답이 없던 어린이집마다 1주일 안에 모두 연락을 해왔다는 것이다. ㄱ씨는 한 친구로부터 "하루 휴가를 내서 전업주부인척하면서 아이를 일찍 데려갈 수 있다고 해야 어린이집을 '따낼' 수 있다"는 경험담도 들었다. 결국 ㄱ씨는 친정어머니에게 부탁해 오후 네시에 딸아이를 어린이집에서 데려오겠다고 밝히고 어린이집의 답을 기다리고 있다.

어린이집을 구하지 못해 고액의 사교육시설인 '놀이학교'에 아이를 맡긴 직장맘도 있었다. 10년 넘게 직장생활을 해온 ㄷ씨(36)는 "물정 모르고" 어린이집에 갔다가 기분이 상했다고 말했다. 어린이집 원장은 위아래를 훑어보더니 ㄷ씨가 '직장맘'인 것을 알자 다른 선생님에게 "이분 구경시켜드려"하고는 자리를 떴다. 다른 어린이집에도 신청했지만 대기순서는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그는 29개월된 딸을 집 주변에 있는 월 90만원짜리 놀이학교에 보내고 있다.

맞벌이 부부의 입소 차별은 피해자들의 '느낌'이나 '설'로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어린이집에서 일하는 교사와 원장들도 "직장맘을 꺼리는 경향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 "그래도 다수의 어린이집에서는 직장맘을 받긴 하지만 일부에선 아예 실제로도 기피하기도 한다"고 털어놓았다. 이런 현상은 통상 아파트 1층의 집 한채를 빌려 소규모로 운영하는 '가정 어린이집'에서 더 두드러진다.

올초까지 가정어린이집을 운영했던 한 원장(36)은 "가정어린이집은 수기로 등록을 받기 때문에 순번이 돌아와도 직장맘은 '연락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는 식으로 핑계대면서 기피하는 방법이 있다"고 말했다. 현재 어린이집을 운영 중인 또다른 원장(41)도 "아이가 있는 주부 교사들은 8시간 이상 근무하기 힘들다. 맞벌이부부 아이들을 오후 4시 이후에도 돌보려면 추가로 교사가 더 필요한 상황이고 저는 그렇게 했다"며 "하지만 원생 한명당 받는 정부 지원금이 같으니 전업주부 아이를 선호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은 맞다"라고 말했다.맞벌이 가정의 영·유아를 모든 어린이집의 우선 입소대상으로 선정해놓은 정부 방침과 현실은 완전히 거꾸로인 셈이다.사태가 이렇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일차적으로는 정부의 감독 소홀에 있다. '우선 입소' 규정을 어겼을 경우 시정명령 후 운영정지까지 가능하지만 정부와 지자체의 감시 역량은 미치지 못하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시군구별로 감독인력이 4~8명이고 복지부의 감독인력은 4명 정도"라면서 "안타깝지만 사각지대가 많은 일이어서 보건복지콜센터(129) 등으로 직접 신고해주기 전까지는 일일이 파악하기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보육교사들은 현장의 '구조적인 문제'도 봐야 한다고 말한다. '직장맘'의 아이들을 모두 받고 있는 어린이집에서 일하는 15년차 보육교사 김모씨(42)는 "오후 4시30분이 넘으면 (다른 교사들은 서류정리 등 업무에 매달리고) 당직교사 1명이 20명 정도를 봐야하니 사실상 방치에 가깝다. 그렇게 방치되는 아이들도 '나는 나머지다'라는 생각에 상처받는다"면서 "보육당국이 어린이집 운영시간(12시간 규정)은 그대로 두고 보육교사 근로환경은 개선하지 않아 기피 경향이 생기는 것"라고 말했다.

공공운수노조 보육협의회 의장 심선혜씨는 "어린이집 원장들이 아예 보육교사를 정규직이 아닌 (오후 4시정도까지만 쓸 수 있는) 파트타임으로 고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결국 보육교사의 살인적 업무환경을 개선해 늦은 오후까지 아이들을 충분히 돌봐줄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해법"이라며 "오전반-오후반 교사' 식으로 2교대제를 실시하고 최저임금 수준인 인건비도 상향돼야 한다"고 말했다.

<송윤경·이성희 기자 ky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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