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 여성 "업소, 한번 들어가면 죽어서 나오거나.."

박광일 2013. 4. 9.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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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뉴시스】박광일 기자 = "성매매 업소는 한 번 들어가면 죽어서 나오거나 살아도 사는 게 죽은거나 다름없는 곳이다"

6년가량 성매매 업소에서 일을 하다 나온 마루(가명·30대 중반·여)씨는 "자발과 비자발 따위는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9일 오후 대구 중구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에서 성매매 경험 당사자 집담회 '무한발설-당사자의 이름으로 성매매를 말하다' 행사가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성매매 경험 당사자네트워크 '뭉치' 회원 3명이 참석해 업소에서 일했던 경험들과 함께 성매매를 둘러싼 각종 논란에 대한 생각들을 가감 없이 털어놨다.

이들은 10대 중반에서 20대 초반에 성매매를 시작해 30대 중반 업소를 빠져나온 뒤 현재 성매매 문제 해결을 위한 단체에서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마루씨는 성매매 업소에 대해 "자발과 비자발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곳"며 "자발은 어느 업소를 갈 것인지, 선불금을 얼마나 빌릴 것인지 정할 수 있는 것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스스로 들어가는 것이 자발이라면 스스로 나올 수 있는 것도 자발"이라며 "그러나 자발적으로 들어가 자발적으로 나올 수 있는 곳이 절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성매매를 하다 보면 업소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며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이 사회에 나가서 무언가를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라고 설명했다.

성매매 경험 당사자들은 성매매와 성착취의 애매한 경계, 성매매 여성에 대한 사회적 낙인에 대한 의견도 밝혔다.

성매매 집결지에서 나와 가정을 꾸린 바다(가명·30대 중반·여)씨는 "외부와 단절된 채 생활하는 바람에 처음 사회에 나왔을 때 아무 것도 할 줄 아는 게 없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판매 시스템을 다루지 못해 쫒겨나기도 하고 심지어는 시내버스 조차 탈 줄 몰랐다"며 "사회적응력이 초등학생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성매매 업소에서의 단절된 시간들이 사회에 나와서도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많다"며 "결국 내 삶 자체가 착취를 당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신매매를 당해 15살 때부터 성매매를 했다는 심통(가명·30대 중반·여)씨는 "성매매 경험에 대한 고통은 머리보다 몸이 먼저 기억해 낸다"고 말했다.

이어 "성매매를 떠올릴 때마다 닭살이 돋고 심장이 뛰고 눈물이 흐른다"며 "이런 기분이 평생 갈 것 같다. 이게 가장 큰 착취라고 생각한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특히 "처음부터 '성매매 여성'이라는 낙인이 찍힌 채 태어나지 않았다"며 "사회 구조가 우리를 업소로 내몰았고 죄 없는 여성에서 죄 지은 여성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마루씨도 "우리 사회는 성을 구매한 남성들에게는 낙인을 찍지 않으면서 유독 성매매 여성들에게만 낙인을 찍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사람들은 대부분 성매매 여성들에 대해 '밝히거나, 더럽거나, 불쌍하거나' 이 3가지로 구분한다"며 "이렇게 해야 자신들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사회는 계속 자발과 비자발로 구분해 성매매 여성들에게 낙인을 찍고 있다"며 "이제는 성매매 여성들의 탈성매매를 말할 게 아니라 남성들에게 탈성구매를 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pgi0215@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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