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박근혜가 대통령 되길 원해
김설송 스토리의 백미는 그녀와 박근혜 대통령과의 인연이다. 돌이켜보면 2002년부터 2007년까지 북한 권력 내 김설송의 위상은 박근혜 의원의 운명과 연동되어 있었다. 김정일 위원장 처지에서 볼 때, 설송이 '여성'이라는 핸디캡을 극복하고 후계자가 되려면 남쪽에서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는 게 유리하다고 여긴 것이다.
그래서일까. 박근혜와 설송의 인연은 2002년 5월 박근혜 의원(당시 한국미래연합 창당준비위원장)의 방북 때부터 보이지 않게 이어져 왔다. 당시 박 의원에 대한 초청은 그를 만나보고 싶다는 김정일 위원장의 개인적 소망에 더해, 내심 후계자감으로 키우고 있던 설송에게 박 의원을 보여주고 싶은 목적에서 추진한 것이기도 했다. 실제로 김설송은 두 사람이 만난 2002년 5월13일 저녁 7시 백화원 초대소의 면담장 한쪽에 원피스를 입고 배석해 있었다고 한다.
박근혜 초청과 후계 구도 정리
북의 후계자 결정 과정에서 2002년은 매우 중요한 해였다. 2001년에 있었던 김정남과 김설송 사이의 트러블이 원인 중 하나였다. 김정남 처지에서 설송은 아버지의 사랑을 빼앗아간 존재였다. 둘의 사이가 좋을 리 없었다. 김 위원장은 또한 김정남과 장성택이 손을 잡을 가능성을 늘 걱정해왔다. 그래서 차제에 설송을 후계자로 세우면서 정남으로 인한 번잡한 후계 구도를 정리하고자 했다. 박근혜 의원 초청이 사실상 그 신호탄이었다. 동시에 정남을 곁에서 멀리 떼어놓기 시작했고, 그 연장선상에서 2004년 장성택마저 지방의 사슴농장으로 쫓아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의 계산은 그 뒤 계속 어긋났다. 김 위원장은 2002년 한국 대선에서 이회창 대표가 당선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그렇게 되면 2005년쯤, 박근혜 의원이 한나라당의 유력한 대선 후보가 되리라고 내다봤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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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의원실 제공 2002년 5월 박근혜 당시 의원(왼쪽)이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사진을 찍었다. |
2004년 말쯤 북한 내부에서도 변수가 생겼다. 자신의 두 아들 중 장남인 정철을 후계자로 밀기 위한 고영희의 작업에 당 중앙위 이제강 부부장 등 세력이 힘을 합한 것이다. 이제강은 설송 대신 정철을 후계자로 삼을 것을 주장했다. 이때부터 정철이 서기실과 당 중앙위에서 직책을 갖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직 남쪽에서 박근혜 카드가 상수로 등장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김 위원장으로서도 이를 막을 도리가 없었다. 2005년에 이르러 후계 논의를 중단하라고 지시하는 데 그칠 뿐이었다.
2007년 들어 사달이 벌어졌다. 정철과 설송이 충돌한 것이다. 이번에도 김정일 위원장은 설송 편이었다. 정철을 내심 미덥지 않게 여겨온 터에 자신이 권력의 축으로 세우려는 설송과 맞지 않는 것을 보고, 그를 후계 구도에서 탈락시켜 버렸다. 그런데 이때 김 위원장에게는 뼈아픈 일이 일어났다. 박근혜가 2007년 한나라당 경선에서 이명박에게 패한 것이다. 이로써 설송도 후계 구도에서 탈락하지 않을 수 없었고, 남은 것은 막내 김정은뿐이었다.
2007년 말부터 김정은이라는 이름이 서서히 등장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김정은은 설송과 사이가 좋았다. 형제 중에도 첫째와 둘째는 껄끄럽고, 첫째와 셋째가 사이 좋은 경우가 많은데 둘의 경우가 딱 그랬다고 한다. 이에 따라 김정은을 후계자로 내세우되 설송을 배후의 권력 중추로 삼는 독특한 후계 구도가 완성된 셈이다.
남문희 대기자 /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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