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불법 앞에서 한없이 움츠러드는 대한민국 공권력

2013. 4. 5.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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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청이 4일 새벽 5시 50분쯤 서울 덕수궁 정문 옆 담벼락에 쳐놓은 불법 농성촌 천막을 철거했다. 작년 4월 5일 민주노총 금속노조 쌍용차 지부가 분향소를 차린 지 1년 만이다. 천막은 작년 11월 제주 해군기지 반대, 용산 참사 진상 규명, 원자력발전 폐기 촉구를 주장하는 단체들이 저마다 텐트를 설치해 3개로 늘었다. 농성자들은 여기서 라면을 먹기도 하고 앞이 열린 텐트 속에서 잠을 자기도 했다. 이 바람에 외국의 관광객들이 빠짐없이 찾는 서울의 얼굴 시청앞광장과 하루 세 번 수문장(守門將) 교대식이 열리는 덕수궁 앞은 난장터를 방불케 했다. 천막은 지난달 화재로 2개가 불타고 하나가 남아 있었다. 당시 화재로 국가 문화재인 사적(史蹟) 124호 덕수궁의 돌담 서까래가 그을렸다. 중구청은 10분 만에 철거를 마치고 그 자리에 가로 20m 세로 5m 화단을 만들었다.

철거 소식을 듣고 시위대 300여명이 몰려왔다. 시위대는 화단 묘목을 뽑아 내던지고 경찰에 흙·돌멩이·물병을 던졌다. 일부는 밤늦게까지 천막을 다시 치려고 시도하며 천막 자재를 실은 차량을 인도(人道) 위로 돌진시키기도 했다. 5일에도 일부 시위대는 종일 화단 앞 인도에 돗자리를 깔고 경찰을 마주 보며 확성기를 틀고 구호를 외쳤다.

요즘 제주도 강정마을 해군기지 공사 현장 입구에선 또 다른 시위꾼들이 의자와 통나무로 바리케이드를 쌓아놓고 공사를 방해하며 천막 농성을 벌이고 있다. 공사 차량들은 경찰 도움을 받아 낮에는 한 시간, 밤엔 두 시간에 한 차례씩 겨우 통행하고 있다. 숫자는 50명도 안 되지만 공권력은 여전히 이들의 눈치를 살피며 움츠러져 있다.

불법 천막 농성장이 전국에 35곳 있다. 100일 넘게 농성하는 데가 19곳, 가스통 같은 인화 물질을 놔둔 데도 16곳이나 된다. 공권력과 마찰이 있는 곳엔 거의 예외 없이 직업 시위꾼들이 나타난다. 그러나 이 중 21곳에 대해 관할 경찰이나 지자체가 자진 철거를 요구하는 형식적 공문만 보냈을 뿐 실제 법 집행에 나선 곳은 거의 없다. 시위를 하는 소수 때문에 다수 시민이 피해를 보아야 한다면 공권력이 누구를 보호해야 할지는 분명하다.

서울 중구청은 이번에 구청 직원 대부분에게 철거 계획을 비밀로 했다고 한다. 철거 계획이 새 나가면 농성자들이 더 난폭해질 것을 염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대한민국 공권력의 현주소가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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