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과 사람 사이]공갈빵이 아니라 공간빵이다
이일훈 | 건축가 2013. 4. 5. 22:05
빵이나 떡은 만드는 재료가 이름이 되는 경우가 많다. 보리빵·옥수수빵은 주재료가 이름이 되고 쑥떡·콩떡·팥빵은 부재료가 이름이 된다. 술빵이나 꿀떡은 특징적인 맛이 이름이 된 경우다. 생긴 꼴로 불리기도 하는데 붕어빵·곰보빵이나 꽈배기과자가 그런 경우다.
부산에 사는 제자가 날 보러 오면서 오래되고 소문난 중국집 빵을 사왔다. 둥근 모양에 속이 텅 비었다. 겉만 보고는 밀가루 구워진 맛을 짐작했는데 속에 발린 설탕 맛이 달고 씹히는 참깨 맛이 고소했다. 빵보다는 과자에 가까운데 이름은 엉뚱하게 공갈빵이더라.
공갈은 거짓말을 속되게 이르는 말, 빵에 무슨 거짓이 있을까. 둥근 빵이나 바람 빵 아니면 속 빈 빵으로 부르지 않고 공갈빵이라 하는 것을 보면 속이 꽉 찼을 것이라는 기대가 무너지는 재미가 공갈로 여겨졌던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빵(음식)과 집(건축)이 닮았다. 초가집·기와집·너와집·흙집·벽돌집·돌집은 재료를 칭하는 것인데 집이란 집은 모두 속이 비었으니 공갈집이 아닌가. 건축(집)이란 빈속(공간)이 본질이니 번드레한 겉만 보고 만지는 이는 하수요, 속을 잘 비운 유용함에 주목하는 이는 상수다. 겉치장보다 속을 잘 비운 그 빵이야말로 공갈빵이 아니라 공간빵으로 불려야 마땅한 일이더라.
< 이일훈 | 건축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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