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출소장 딸 성폭행·살인 사건, 붙잡힌 만화방 주인은..

입력 2013. 3. 16. 09:50 수정 2014. 3. 29.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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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표창원의 죄와벌/ ⑤7번방의 선물, 그리고 정원섭씨

"나는 파출소장 딸을 죽이지 않았다"

1972년 춘천에서의 강간살해사건동네 만화방 주인이 붙잡혔고15년을 감옥살다 나왔다그리고 명예찾기가 시작됐다법원에 재심 청구했지만 기각그는 결국 진실화해위에 호소했다고문과 거짓증언이 드러났고당시 현장조사에 따르면범인은 A형, 그는 B형이었다너무 놀랍고 어처구니없게도경찰과 검찰은 처음부터그가 범인이 아닌 줄 알았다

경찰청장의 어린 초등학생 딸이 숨진 채 발견되자 세상은 발칵 뒤집혔다. 불같은 상부의 지시에 경찰은 현장에서 잡혀온 지적 장애 남자를 서둘러 범인으로 발표하고 그는 구속, 기소된다. 폭력과 협박에 내몰린 남자는 자신의 딸을 보호하기 위해 법정에서 허위자백을 한 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최근 개봉해 단기간에 관객 1000만명을 돌파한 영화 <7번방의 선물> 줄거리다.

이 영화 내용과 거의 똑같은 사건이 실제 일어났다. 1970년대 서슬 퍼런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 얘기다. 1972년 9월27일 강원도 춘천시 우두동에서 춘천경찰서 역전파출소장의 초등학교 2학년 9살 딸이 실종됐다. 파출소장 가족과 경찰관들, 주민들은 수색에 나섰고, 이틀 뒤인 29일 마을에 있는 춘천 측후소 뒤편 농로에서 싸늘하게 식은 나체 상태의 주검으로 발견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부검 결과, 피해 어린이는 성폭행을 당한 뒤 살해됐다. 경찰 간부의 어린 딸이 성폭행 살해당한 뒤 나체 상태의 주검으로 발견된 충격적인 이 사건은 신문과 방송에서 연일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사건 해결의 실마리는 도무지 나타나지 않았다. 9월30일 치안을 책임진 김현옥 내무장관에게 보고를 받은 박정희 대통령은 크게 화를 내곤 '조속히 해결하라'고 지시했다. 대통령의 불호령에 놀란 내무장관은 치안본부장(지금의 경찰청장)을 불러 '열흘 안에 범인을 잡으라'고 명령했다. 10월10일 정확하게 열흘 만에 범인이 검거됐다. 피해 어린이가 자주 찾던 동네 만화가게의 주인 정원섭(당시 38살)씨였다.

종업원들의 진술, 아들의 연필 한자루

경찰의 수사결과 발표에 따르면, 피해 어린이는 사건 당일 학교에서 귀가하던 길에 '만화가게에 들러 텔레비전을 보고 가겠다'며 친구들과 헤어졌다. 이후 평소에 자주 가던 만화가게에 들른 피해 어린이는 "오늘 우리 집 텔레비전이 잘 안 나오니 다른 가게에 가서 함께 보자"는 정씨의 손에 이끌려 측후소 뒤 농로까지 가게 됐다는 것이다. 정씨는 그곳에서 피해자를 강간한 뒤 처벌이 두려워 목졸라 살해하고 옷을 다 벗긴 뒤 도주했다. 정씨의 만화가게에서 일하던 종업원들도 정씨가 평소 만화가게를 찾는 여자 어린이들에게 수시로 성추행을 했고, 사건 당일 피해 어린이를 데리고 나가는 것을 봤다고 진술했다. 게다가 경찰은 피의자 정씨의 아들을 범행 현장에 데려가 '연필' 하나를 찾아 제시한 뒤 "이게 네 연필이 아니냐?"고 물었다. 정씨의 아들은 "맞아요"라고 답했고, 이 '연필'은 유일하고 결정적인 '물증'이 되었다.

영화 <7번방의 선물>의 예승이는 무고한 아빠가 억울한 사법 피해자가 되는 걸 막지 못한 미안함이 커서 나중에 변호사가 되어 누명을 풀어주며 관객의 애잔한 슬픔과 연민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정원섭씨의 아들은 자기 연필을 내미는 경찰 앞에서 거짓말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자신의 아버지를 살인범으로 만들었다는 씻기 힘든 죄책감을 평생 안고 살아야 했다. 결국 여러 명의 목격자와 움직일 수 없는 물증 앞에서 정씨는 범행을 '자백'했고, 경찰에게서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 역시 경찰 수사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여 기소했다.

법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서슬 퍼런 유신독재 시대, 경찰 간부의 딸이 참혹하게 강간살해된 사건, 제왕 같은 대통령의 불호령이 내려진 사건이었다. 당시 법정에서는 몇몇 핵심 목격자들이 진술을 번복했다가 검사가 윽박지르자 다시 원래 진술로 돌아가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피고인 정씨가 경찰과 검찰의 고문에 의한 거짓자백임을 주장하기도 했다. 결국 법원은 유죄판결과 함께 '무기징역'형을 선고했다. 이 사건이 영화와 다른 점이라면 피고인 정씨에게 지적 장애가 없고, 사형이 아닌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으며, 피해자가 경찰청장의 딸이 아닌 파출소장의 딸이었다는 점 정도일 것이다.

정씨는 누구보다 성실하게 수감생활을 했다. 말도 별로 없었고, 모든 규정과 교도관들의 지시를 정확하게 준수했으며 기독교도로서 신앙생활도 열심히 했다. 정씨는 원래 신학교를 다니던 '예비 목사'였다. 극심한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신학교를 포기하고 만화방을 차린 것이다. '모범수'로 선정돼 대통령 특별사면 명단에 포함된 정씨의 형량은 유기징역의 상한인 15년으로 감형됐다. 1987년, 수감된 지 15년 만에 그는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그는 그동안 가족에게 "나는 범인이 아니야, 날 믿어줘"라고 진심을 담아 호소했고, 가족은 그를 끝까지 믿어주었다. 그의 아내는 사건 직후 교통사고를 당해 한쪽 다리가 불구인 장애인이 되어 있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남편과 아버지를 다시 만난 가족은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울지 않았다. "이제부터 내 명예를 되찾는 일을 시작해야 해"라는 결심을 다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에 정씨는 기독교 교화위원 목사들의 권고로 '모든 것을 잊고 다 용서하자'며 마음을 추스르려고 무진 애를 썼다. '너무나 억울해서' 그게 잘 안됐다. 15년 세월 동안 교도소 담장 밖으로 나가 '진실을 밝히고 명예를 되찾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출소 뒤에도 교화위원 목사의 권유로 신학교에 복학한 뒤 목사 자격을 획득하는 등 모두 다 잊고 용서해 보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39년만의 무죄확정…그래도 검찰은 항소·상고

1999년 11월, 정씨는 서울고등법원에 자신에게 내려진 유죄판결은 잘못되었다며 다시 재판을 열어 진실을 밝혀달라는 '재심 청구서'를 제출했다. 법원은 2년 동안의 검토와 심리 끝에 2001년 10월 '이유 없다'며 기각했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 대법원에 '서울고등법원의 재심청구 기각은 부당하다'며 재항고를 했지만 대법원 역시 재심청구를 기각했다. 2003년 12월이었다. 정씨는 허탈하고 억울했다. 크고 깊은 상실감이 몰려들었다.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을 때도 '다 포기하고 차라리 죽어버리자'는 심정이 차올라온 적이 많았지만 '자유를 얻은 뒤 재심을 청구해 진실을 밝히고야 말겠다'는 의지로 버텨왔다. 그 모든 희망이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 때에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있었다. '군사독재와 권위주의 정권 시대에 행해진 의문사와 사법조작 사건의 진실을 밝히고 가해자의 사죄 및 피해자의 용서를 통한 화해를 이끌어내 과거사를 극복하고 사회통합을 이뤄 미래로 나아가자'는 취지로 설립된 기구로 주로 정치적인 사건을 다뤘다. 정원섭씨는 2005년,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진실화해위의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가족과 일부 언론 이외에 자신의 주장을 귀담아들어주는 사람을 처음으로 만났다. 위원회는 이 사건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당시 경찰관들을 만나 정씨가 주장하는 '고문' 방식이 실제 수사 과정에 사용됐다는 진술도 확보했고, 당시 유죄판결의 결정적 근거였던 '목격자 진술'을 했던 만화가게 종업원들로부터 "경찰과 검찰의 압박과 위협, 회유, 감금과 폭행 때문에 거짓말을 했다"는 참회의 고백도 받아냈다. 무엇보다도 당시 피해 어린이의 주검과 사건 현장에서 범인의 정액이 발견됐고, 국과수의 분석 결과 범인의 혈액형이 에이(A)형으로 확인됐다는 기록을 찾아냈다. 너무나 놀랍고 어처구니없었다. 정씨의 혈액형은 비(B)형이었다. 처음부터 경찰과 국과수, 검찰은 정씨가 '범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진실화해위는 사법부에 조사결과 보고서와 함께 '재심 권고 의견서'를 제출했다.

2007년 11월, 사법부는 진실화해위의 재심 권고를 받아들였다. 35년 만에 다시 춘천지방법원에서, 정원섭씨의 강간치사 혐의사건 재심 제1심 재판이 열렸다. 재판부는 진실화해위의 조사 결과를 대부분 그대로 인용해 피고인 정원섭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대통령이 이명박으로 바뀐 2008년 11월, 그러니까 처음 유죄판결을 받은 지 36년 만이었다.

재판부(재판장 정성태 부장판사)는 판결을 내리면서 "신의 눈을 갖지 못한 재판부로서는 감히 이 사건의 진실에 도달했다고 자신할 수는 없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대한민국의 헌법과 법률이 규정한 적법절차의 원칙에 따르자면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은 증거로 사용될 수 없거나 믿을 수 없는 것이어서, 그것들만으로 피고인의 유죄를 인정할 수 없다. 이 사건 수사 과정에서 자신이 마땅히 누려야 할 최소한의 권리와 적법절차를 보장받지 못한 채 고통을 겪었던 피고인이 마지막 희망으로 기대었던 법원마저 적법절차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고민이 부족했고 그 결과 피고인의 호소를 충분히 경청할 수 없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어떠한 변명의 여지도 없다"는 매우 이례적인 자기반성을 했다.

검찰은 무죄판결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며 즉각 항소했다. 2009년 2월 서울고등법원(재판장 이기택 부장판사)에서의 판결도 '무죄'였다. 검찰은 다시 상고했다. 2011년 10월27일 대법원(주심 안대희 대법관) 역시 원심을 확정해 더이상 뒤집거나 이론을 제기할 수 없는 최종 확정 '무죄'판결을 내렸다. 그의 나이 77살, 파렴치한 어린이 강간살인범으로 낙인찍힌 지 39년 만이었다.

하늘은 옳지 못한 사람을 반드시 죽인다

정씨는 무죄 확정판결이 내려진 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성경 구절을 인용하며 자신을 고문해 거짓자백을 하게 만들고, 목격 진술과 증거를 조작해 엉터리 판결이 내려지도록 한 경찰관들과 검사를 '용서하겠다'고 밝혔다. 너무 늦기는 했지만 누명이 벗겨지고 명예가 회복된 것에 만족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가 지난 39년 동안 가슴에 품고 있었을 <명심보감> 속 한마디도 잊지 않았다. "하늘은 옳지 못한 사람을 반드시 죽인다."(若人 作不善 天必戮之·약인 작불선 천필륙지)

형사보상은 국가가 수사, 재판 등 형사사법권의 행사를 잘못해 부당하게 구금이나 징역 등 형벌의 집행을 받은 피해자에게 국가가 해당 손해를 배상하는 제도이다. 정씨 같은 경우가 여기에 해당하는데, 무죄판결을 받았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지급되는 것은 아니고, 무죄 확정판결로부터 5년 이내, 혹은 무죄판결이 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날로부터 3년 이내에 법원에 청구해 그 결정을 받아야 한다. 형사보상 액수는 구금된 일수 곱하기 구금 당시 최저임금의 5배 범위 내에서 정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과연 이런 금액으로 자유와 명예를 송두리째 박탈당한 피해가 회복될까? 국가는 '억울하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라고 한다. 2013년 3월 미국 클리블랜드에서 살인죄의 누명을 쓰고 11년6개월 동안 교도소에 수감됐다가 끈질긴 법정투쟁 끝에 무죄판결을 받은 데이비드 에이어스(56)가 클리블랜드시로부터 143억8000만원을 배상받았다.

우리는 종종 외신을 통해 유럽, 미국의 사법 피해자가 천문학적인 보상금을 받았다거나 지방자치단체가 사법 피해자에 대한 거액의 배상액 때문에 파산 위기에 몰렸다는 소식을 접한다. 실제 손해액뿐 아니라 고의나 악질적인 잘못에 대해 벌하는 의미로 엄청난 배상액을 부과하는 '징벌적 손해배상'(punitive damage) 제도 때문이다. 공정하고 신중한 수사와 기소, 재판을 통한 사법 피해 방지를 위해 참고할 부분이다. 국가가 배상하면 당연히 경찰관이나 검사 등 그 책임자에게 돈을 물어내라는 '구상권' 행사가 이뤄진다. 비록 직권남용이나 독직 폭행 등의 '사법 범죄'의 공소시효가 지나 그들을 처벌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국가는 구상권 행사를 통해 그 잘못을 응징해야 한다. 그것이 '죄에 부합하는 벌'이 내려지는 정의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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