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서버에 나를 맡기는 순간 나의 뇌는 텅 비지 않을까

입력 2013. 3. 5. 03:18 수정 2013. 3. 5. 03:1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013년 3월 4일 월요일 맑음. 잘못된 백업. #48 Taylor Swift featuring The Civil Wars 'Safe & Sound'(2012년)

[동아일보]

영화 '헝거게임: 판엠의 불꽃'의 캣니스. 최근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탄제니퍼로런스가연기했다.잘했다. 동아일보DB

지난주, 스마트폰의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하다 원인 미상의 에러가 발생했다.

어찌된 건지 컴퓨터에 저장해둔 사진까지 다 날아갔다. 그 회사의 한국지사 서비스 콜센터는 "이런 경우는 처음 본다. 에러 이전 백업 파일이 없으면 도와줄 수 없다. 안타깝다"고 했다. 클라우드에 백업해 둘 것을.

사람들은 적고 기억하고 확인한다. 계약서를 쓰고 결혼을 하고 보험을 든다. 백업 파일이 날아가 '0'이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 탓일까. 가끔 내 삶이 사회의 속 빈 폴더와 동기화돼 버릴까 두렵다.

거대한 클라우드 서버에 국민들의 뇌가 전부 백업되는 세상은 올 것이다. (이런 내용을 영화화하고 싶다면 내게 허락을….)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하다 에러가 나면 국가는 대답하겠지. "파일이 날아갔으니 우리도 어찌할 도리가 없어. 안타깝네." 친절한 상담을 들은 뒤 텅 빈 뇌로 살아가야 할 거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헝거게임: 판엠의 불꽃'도 무서운 미래를 다뤘다. 거대 국가 판엠에서 열리는 도륙의 올림픽 얘기다. 12개 구역에서 무작위 추첨된 12∼18세 청소년 24명은 한 명의 생존자만 남을 때까지 서로 죽여야 한다. 그 과정은 오디션 프로그램처럼 전국에 생중계된다.

이 영화의 주제곡 '세이프 앤드 사운드'가 지난달 그래미 어워즈에서 '영상매체를 위해 쓰인 최고의 노래'상을 받았다. '21세기 팝 요정' 테일러 스위프트가 부른 곡 중 단연 최고다. 함께 곡을 만들고 노래한 포크 듀오 '시빌 워스'의 남녀 멤버는 우연히 작곡 캠프에서 만나 의기투합해 결성됐다. '12구역' 대표로 헝거게임에 참여한 캣니스와 피타를 은유하는 듯하다. 팀명이 '내전'을 뜻한다는 점에서도 시빌 워스는 영화와 묘하게 겹친다. 그들과 스위프트의 3화음이 얽혀들며 고조되는 후반부는 이 노래의 백미다.

우리도 가끔 헝거게임 비슷한 것의 시청자가 된다. 우리 자식을 전쟁터에 내놓고. 그건 TV 속에도, TV 밖에도 있다. '그저 눈을 감아./넌 괜찮을 거야./아침이 밝으면/너와 나는 안전하고 온전할 거야.'('세이프 앤드 사운드' 중)

세상 모든 발라드는 살벌한 세계를 위한 자장가일지도 모른다. 서버에 뇌를 맡기는 순간, '0'의 동기화를 감수해야 한다. 아버지. 활을 드세요. 서버를 향해.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오늘의 동아일보][☞동아닷컴 Top기사]

ⓒ 동아일보 & dong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