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전> 김구라·강용석, 이 기막힌 조합이라니

김교석 2013. 2. 28.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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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썰전 > , 누가 뭐래도 이건 김구라를 위한 판이다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종편에서 강용석이라니. 무슨 말이 아니 무슨 관심이 필요할까 싶다. 그런데 < 썰전 > 은 이런 선입견과 못마땅한 시선을 유쾌하게 즐긴다. 게다가 서서히 턱에 독이 차오르고 있는 김구라가 메인이다. 이거 왠지 더티 섹시의 기미가 보인다. 하버드 출신 국회의원에서 여성비하 성희롱을 거쳐 고소왕으로 좌충우돌 광폭 주행을 이어오며 자유 낙하한 불세출의 비호감 강용석과 초지일관 예의 대신 유희만을 중시하다가 과거 행적에 그만 발목 잡혀 귀양 아닌 귀양을 떠나게 된 김구라의 조합.

이 상남2인조스러운 프로필의 두 남자는 리얼리티와 휴머니티가 판을 치며, 정답보다는 일종의 마취에 열광하는 이때 아무도 얘기하지 않으려고 하는 뉴스와 예능 이슈의 뒷이야기를 앞에서 시원하게 '털겠다'고 한다. 24시간 따라다니는 VJ는 필요 없다. 스튜디오에 의자와 테이블만 있으면 그만이다. 그럼에도 이 테이블 위에는 그 어떤 방송보다도 리얼하고 싱싱한 이야깃거리가 올라간다.

< 썰전 > 은 확실한 흡인 요인을 갖고 있다. TV와 일상의 거리를 바싹 좁힌 것이 그 첫 번째다. 이 프로그램에서 '일상'의 의미를 크게 바라보는 이유는 요즘 시대의 트렌드를 예능화하는 방식에 있어 휴머니즘과 따뜻함, 힐링과는 다른 차원의 접근을 했기 때문이다. < 썰전 > 은 1부에서는 정치 뉴스를, 2부에서는 미디어비평의 차원에서 예능 이슈를 다룬다. 정치 뉴스의 뒷면을 들여다보며 사족을 덧붙이는 것이나 민감한 예능 이슈를 예능 판의 선수를 포함한 방송인들이 직접 다루겠다는 건 누구나 하루에 몇 번씩 포털사이트를 뒤적거리고, 즐겨 찾는 게시판을 훑어보는 보통 사람들의 일과를 TV에서 쇼로 보여주겠다는 의미다.

대중들이 예능 뉴스에 보이는 관심은 뒤집어 말하면 대중문화에서 예능이 차지하는 비중을 알 수 있는 지표이기도 하다. 세상 사람들이 제일 관심 있는 예능 이슈를 방송 관련자들과 선수들이 방송에서 실명을 거론하며 말하겠다는 것은 수많은 연예매체가 해왔던 일을 마치 자웅동체가 되어 스스로 다 하겠다는 것이다. 이보다 시청자와 눈높이를 마주한 상호 인터렉티브한 플랫폼의 방송은 없었다.

요즘 토크쇼라면 누구나 시청자 참여형 방송임을 내세우지만 < 썰전 > 은 시청자를 이용하거나 장치로 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입장에 서서 펼치는 토크쇼이기에 실험적 시도다. 박지윤의 말대로 남편과 침대에서 이야기하고 친구들과 식사하면서 나눌 수 있는 이야기를 수면 위로 올린 셈이다. 모두 비슷한 정보를 쏟아내지만 정작 가치 판단을 미루는 기존 언론의 답답함을 좋다 나쁘다. 괜찮다, 후지다의 깃발을 들어주겠다는 것이다. 가치판단을 유독 회피하는 우리 사회, 우리 방송의 익숙한 모습을 탈피했으니 바라보는 사람 입장에서 어찌 호기심이 잃지 않고, 무슨 얘기를 할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는 이미 < 나는 꼼수다 > 를 통해서, 그리고 이번 대선을 치루면서 수많은 정치 토론 프로그램을 통해 수위 높은 토크와 뚜렷한 정치색과 가치판단을 바탕으로 한 토크가 얼마나 재밌을 수 있는지 학습한 바가 있다. 즉, < 썰전 > 은 대중(시청자)의 입장에서 궁금증을 바로 긁어주는 가장 편하고 익숙한 효자손인 셈이다.

따라서 하이퀄리티 미디어비평을 자임하지만 < 시청자 데스크 > 나 < 미디어비평 > 이 권위와 예절을 기반으로 기계적인 중립과 공정성을 내세우지 않는다. < 썰전 > 은 보통의 사람들이 출근하고, 등교해서 나누는 가십성 대화를 연예인들이 실명을 거론해 직접 논하는 것이 핵심 포인트다. 부담이 따르는 작업이긴 하지만 고무적인 것은 고소왕이 같은 편이니 크게 무서울 것도 없어 보인다.

두 번째 흡인 요인은 김구라의 부활이다. 이건 김구라를 위한 판이다. 강용석이 비호감을 조각해 인지도만 남기는 부활 의식을 치를 수 있다고 보는 것도 김구라가 적당히 눌러주기 때문이다. 정서적으로 동정심의 전파는 다른 감정보다 빠르다. 그렇다고 요즘 토크의 트렌드인 누군가가 자신을 먼저 드러내놓으면 거기서 감화를 받고 함께 마음을 여는 상투적인 의식은 하지 않는다. 그런 토크쇼가 범람할 때 김구라만이 할 수 있는 진짜 이야기를 한다.

예를 들면 김희선이 < 화신 > 에서 잘한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는 '이민호와 했던 드라마가 완전히 망가졌기 때문'이라고 밝힌다거나 '고현정이 기가 너무 세서 윤종신, 정형돈, 김영철로는 안 됐으니 SBS에서 컨트롤 가능한 여배우를 생각한 것 아닌가 생각 한다' 등의 자신의 생각을 가감 없이 말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염경환, 조세호 등을 살린 실명 토크를 할 때 김구라의 눈빛은 가장 빛난다. 몇 년 전 < 놀러와 > 의 한 특집에서 그는 향후 예능판세와 거물 MC들의 행보를 예측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같은 필드의 선수가 강호동의 현재에 대해 그렇게 직접적인 평가와 비평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김구라 빼고는 아무도 없다.

김구라의 더욱 더 큰 진가는 정치 뉴스를 털 때 나온다. < 썰전 > 은 < 최양락의 재밌는 라디오 > 와 'SNL코리아'에 이어 단순한 패러디나 풍자가 아니라 정치 뉴스를 예능 식으로 소화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김구라가 열쇠였다. 허태열 전 국회의원이 안경 낀 것 아는 사람은 연예인 중에 자신밖에 없을 것이란 건 허세가 아니다. 정치와는 최대한 거리를 두려는 예능 판에서 그만큼 정치에 관심이 많고 팔로우업 되는 예능인은 거의 없다. 그런 지식을 바탕으로 독설을 날릴 때가 널리고 널린 곳. 시청자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줄 김구라의 한마디 한마디가 꽂힐 수 있는 제대로 된 판을 만난 것이다.

이와 맞물려 출연진에 대한 호감도를 키울 여지가 많다는 점도 앞으로 < 썰전 > 이 기대되는 부분이다. 이윤석을 제외하면 모든 출연진이 대중의 호불호가 나뉘는 인물로 구성되어 있다. 김구라나 강용석은 언급할 것도 없고, 커밍아웃계의 인동초 홍석천이나 프리랜서 아나운서인 박지윤, 진보적 성향의 평론가로 종편 출연으로 홍역을 한 번 앓은 바 있으나 큰 뜻을 품고 종편에 재진출한 허지웅까지 그렇다. 하지만 이는 가능성이다. 다른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생생한 쇼가 갖는 에너지는 출연진들에 대한 호감과 인지도를 끌어올리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왜냐면 이들이 표방하는 하이퀄리티 미디어 비평은 꾸며낼 수 있는 진솔함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갖게 되는 진지함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같은 맥락에서 애매한 지점이 하나 남는다. 지금 이 시점에서 < 썰전 > 의 가장 큰 폐단은 강용석이 호감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한때 우리 지역구 국회의원이었던 관계로 갖는 감정임을 일부 부정할 수는 없지만 센놈만 붙잡는다면서 아직 < 해피투게더 > 의 사우나에도 발을 못 붙인 최효종을 고소하고, 박지윤 아나운서가 여전히 불쾌함을 표하는 게 당연할 만큼 사고를 제대로 쳤는데 되려 큰소리치고 뻔뻔하게 다시 출마했던 문제적 인물이 강용석이다. 그런데 그런 그가 코를 찔찔 흘리며 애쓰는 모습을 보니 괜히 괜찮아 보이는 거다.

거기다 막 사시는 분인 줄 알았다던 홍석천이나 다소 후지게 봤다는 이철희 소장이 입을 모아 사람을 다시 보게 됐다고 말한 것처럼 의외로 정갈한 언사와 논리력, 배려어린 매너와 톤은 괜찮은 사람의 그것으로 보이니 피아구분의 판단에 당혹감을 안겨준다.

물론, 경계를 늦추면 안 된다. 김구라가 강용석을 둘러싼 호감을 두고 이런 말을 남겼으니 우리는 새겨들어야 한다. '범법자도 만나보면 다 착한 구석이 있으니 너무 감동받지는 말지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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