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알싸한 착한 냉면에 중독된들 어떠리
트랙 #47 John Lennon & Plastic Ono Band 'Cold Turkey' (1969년)
[동아일보]
결론부터 말하자면 냉면은 랩보다 세다.
지난 주말, 별 생각 없이 e메일함을 열어봤다가 깜짝 놀랐다. 졌다. 냉면한테. E도 알아야 한다. 이런 굴욕. 지난해 여름, 미국의 유명 래퍼 E의 내한공연 뒤 노트에 랩 몇 자 끼적였을 때보다도 많은 독자 e메일이 답지한 것이다.
주인공은 냉면이고 얘기는 이렇다. 지난 주말, 난 한 종합편성채널에서 방영 중인 인기 교양프로그램의 취재 뒷이야기를 기사로 다뤘다. 제작팀의 G PD는 원래 냉면을 안 좋아했는데 대부분의 냉면 육수 맛을 조미료만으로 낸다는 사실을 파헤치다 진정한 육수가 담긴 냉면을 들이켜게 됐고 비로소 입맛이 트였다는 내용이었다. 기사를 본 냉면 마니아들이 내 메일함으로 '제작진도 반한 그 냉면집이 어디냐'는 문의를 쏟아낸 거다. 냉면은 제작팀의 G PD가 드셨고 난 그 얘기를 전한 것뿐인데 '임 기자가 먹은 그 냉면집을 당장 알려 달라'는 독자도 있었다.
그들 중 돋보인 건 지방의 절에 계시다는 스님의 e메일이었다. "냉면 마니아인데 아직 제대로 된 냉면 맛을 못 봤다"는 그는 서울에 올라가면 꼭 방문하고 싶으니 그 냉면집이 어딘지 알려 달라고, 부드럽지만 간곡하게 요청하셨다. 근데 나도 그 냉면집이 어딘지 모른다.
냉면 육수나 조미료 음료를 마시던 여름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겨울이 간다. 계절의 시소는 다시 여름 쪽으로 기울고 시간은 초록을 향해 전력질주할 것이다. 올여름엔 진정성 있는 냉면을 더 많은 곳에서 팔았으면 좋겠다. 조미료가 아니라 고기 국물을 제대로 우려낸 그 육수를, 나도 스님께 맛보여드리고 싶다.
비틀스 해체 뒤 존 레넌(사진)은 1969년 '콜드 터키'란 곡을 발표했다. '식은 칠면조'라…. 콜드 터키는, 갑작스럽게 약물을 끊게 해 신체적 불쾌감을 줘서 마약에서 영영 손을 떼게 하는 갱생 치료법을 말한다.
'기온은 오르고/열은 높아져/미래가 보이지 않아./하늘도 보이지 않아./발이 무겁고/손도 그렇지./아기가 됐으면 해./(차라리) 죽었으면 해.'
금단현상의 괴로움에 대한 묘사가 노랫말의 전부다. 사실, 냉면에 관한 곡을 팝에서 찾을 수 없었다. '차가운 고기' 정도로 생각을 돌리니 알 재로가 부른 것으로 유명한 재즈 스탠더드 곡 '콜드 덕'도 생각났다. '콜드 덕'은 스파클링 와인 이름이기도 하다.
하긴 맛있는 냉면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은 금단현상을 부를 정도로 강하다는 걸 이번에 확인했다. 그 국물은 스파클링 와인처럼 시원하고 알싸하다.
그래도 역시 냉면 부르는 노래는 명카드라이브(멤버 박명수, 제시카, 이트라이브)의 '냉면'인가. 나도 냉면이 좋다. 딸기도.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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