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 성폭행 피해 여성에 "가해자 성기가 몇cm냐" 캐물은 경찰

이성택기자 입력 2013. 2. 23. 02:41 수정 2013. 2. 24.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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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 성폭행 사건에 대한 조사 과정에서 경찰이 피해 여성에게 가해자의 성기 크기를 집요하게 물어본 사실이 재판 과정에서 드러났다. '피해자에게 상처를 주는 부적절하고 불필요한 조사 방식'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여성 A(당시 19세)씨는 2011년 4월 어느 날 새벽 서울 상계동 한 나이트클럽 방에서 7급 공무원 류모(33)씨 등 3명으로부터 강제로 집단 성폭행을 당했다. 범행 발생 4시간 뒤인 오전 8시쯤 A씨는 인근의 성폭력 원스톱지원센터를 찾아가 여성 경찰의 조사를 받았다. 조사 과정에서 경찰은 A씨에게 "가해자들의 성기 크기가 얼마나 되냐"고 물었다. A씨가 "작았다"고 대답했으나, 경찰은 "가해자들의 성기 크기가 각각 몇cm인지 말해달라"며 재차 요구했다. A씨는 당황한 나머지 한동안 진술을 하지 못하다 마지못해 '한 뼘 정도'라고 말했다. 조사과정은 A씨 동의 하에 전부 녹화돼 재판에서 증거로 쓰였다.

여경이 민감한 질문을 계속한 것은 A씨를 도우려는 의도였지만, 결과적으로는 가해자 측 변호인들에게 공격의 빌미만 제공한 셈이 됐다. 변호인 측은 영상녹화 기록을 근거로 법정에서 "피해자가 가해자들의 성기 크기나 굵기에 대해 정확히 말하지 못하는 걸로 봐서 진술의 신빙성이 떨어지며 피해자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취지로 변론했다.

다행히 담당 재판부인 서울고법 형사8부(부장 이규진)는 "성폭력 범죄를 당하고 있는 피해자에게 가해자의 성기를 주의 깊게 보고 그 특징을 기억해 진술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변호인 주장을 기각하고, 류씨 일당에게 원심과 같이 징역 8월~3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수사기관이 성폭력 피해자에게 가해자의 성기 크기까지 물어야 했느냐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화영 한국여성의전화 성폭력상담소장은 "경찰이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질문을 자세히 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도, 가해자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기도 힘든 피해자에게 성기 크기를 구체적으로 캐묻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검찰 관계자도 "가해자가 범죄 사실을 강력히 부인하는 상황에서 경찰이 답답한 마음에 그런 질문을 한 것 같다"면서도 "피해자가 가해자 성기 크기를 정확히 기억하는 것은 어차피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 질문 자체가 불필요했다"고 말했다.

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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