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軍 성폭행 피해자 "그날 계속 맞다가 결국.."

성세희 기자 2013. 2. 13.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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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헌병대 신고 '감감무소식'..지난 5년 성폭행 미군 국내법원 재판 전무

[머니투데이 성세희기자][美헌병대 신고 '감감무소식'…지난 5년 성폭행 미군 국내법원 재판 전무]

ⓒ김현정

 "그는 집에 들어서자 창문에 달린 차양을 모두 내렸어요. 방 안부터 거실 창문까지 꼼꼼하게 가린 걸 확인하자 신문지를 돌돌 말기 시작했죠. 돌돌 만 신문지를 한손에 쥐고 내 머리와 배만 집중적으로 때렸어요. 머리에 주먹만 한 혹이 부어오를 때까지. 계속 맞다가 결국 기절했어요."

 키 156㎝인 이현지씨(34·가명) 몸무게는 평균 체중을 훨씬 밑도는 35~6㎏ 남짓이었다. 영상 4~5℃를 웃도는 날씨에 상의를 세 겹쯤 껴입고도 두꺼운 점퍼를 걸쳤다. 소매를 걷어 올리자 뼈가 도드라진 팔이 드러났다. 이씨는 "몇 달간 잠도 못자고 식사를 제대로 못해 몸무게가 10㎏ 가까이 빠졌다"며 "정신과에서 처방한 약을 먹지 않으면 1주일이 넘도록 잠들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날 이후' 삶이 무너졌다. 지난해 8월8일 새벽 1시쯤, 헤어진 남자친구는 집 앞으로 찾아와 몸이 성치 않았던 이씨를 성폭행했다. 이씨는 병원에서 '그날' 일어난 모든 증거를 채취하고 그를 고소했다. 고소한 지 반 년이 넘었지만 전 남자친구는 아직 법적 처벌을 받지 않았다. 주한미군이란 '특수한' 신분 탓이었다.

 이씨는 2010년 12월 주한 미공군 소령 J씨(39)와 교제를 시작했다. 연애 초기 J씨는 이씨에게 헌신적이었다. 외국에서 오래 살았던 이씨는 J씨와 서로 잘 맞는다고 느꼈다. 다섯 살 차이였던 둘은 결혼을 생각할 정도로 빠르게 가까워졌다.

달콤한 시간은 짧았다. 사귄지 얼마 안 돼 구타가 시작됐다. J씨는 혹이 가라앉을 때까지 이씨가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막았다. 이씨는 "경찰에 신고하려고 맞은 부위를 휴대전화로 찍었지만 어느새 그가 지워버렸다"며 "화가 나면 '창녀' 등 입에 담지도 못할 욕설을 퍼부었다"고 말했다.

 J씨는 이씨와 사귀면서 여러 여자를 함께 만났다. 그는 이씨에게 "한국은 여자 천국"이란 말을 스스럼없이 했다. 그러면서도 경제력 있는 이씨를 놓지 않았다. J씨는 때리거나 싸운 후 며칠이 지나면 이씨 앞에 무릎 꿇고 빌었다. 헤어지려던 이씨는 마음이 약해져 그를 용서하고 결혼도 약속했다.

 미국에서 진실과 맞닥뜨렸다. 2011년 5월 J씨와 함께 미국으로 출국한 이씨는 가족을 만났다. J씨는 이미 두 번 이혼했고 엄마가 다른 두 딸이 있었다. J씨의 두 번째 전처는 이씨에게 "뒤도 돌아보지 말고 당장 도망가라"고 충고했다. 견딜 수 없었던 이씨는 그해 6월쯤 J씨와 헤어졌다.

 방심한 순간 악몽이 찾아왔다. 2012년 8월 무렵 J씨는 다시 이씨에게 연락했다. 그는 이씨가 전화를 받지 않자 문자메시지와 이메일로 "집 앞에서 기다린다. 다시 만나자"고 애원했다. 이씨에게 응답이 없자 J씨는 문자메시지 등으로 욕설을 퍼부었다. 당시 다리부상을 입었던 이씨는 J씨에게 화가 치밀어 집 밖으로 나왔다. J씨는 이씨를 만나자 안색을 바꿔 "내일이라도 (혼인신고) 도장을 찍자"고 꼬드겼다. 이씨가 완강히 거부하자 J씨는 이씨를 성폭행했다.

 혼란스러웠던 이씨는 평소 친분이 있던 전 주한 미공군 A대위(29)에게 도움을 청했다. A씨는 "J씨는 미군이니까 차라리 미군 측 수사대에 신고하는 게 더 나을 것"이라고 권유했다. 이씨는 며칠 뒤 미 공군 특별수사대(OSI)에 J씨를 고소했다. 지난해 5월 소파협정(SOFA·한·미 행정협정)을 개정하기 전까지는 우리나라에서 미군 범죄가 발생하면 수사권을 모두 미군 측에 넘겨줬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한국 법정에서 미군범죄를 재판한 비율은 22.69%, 미군 성범죄 사범 재판비율은 16.32%이었다. 그나마 2008년 이후 성범죄를 저지른 미군은 단 한 번도 한국 법정에서 재판을 받지 않았다.

 시간이 흘렀지만 수사는 감감무소식. 미군 측은 J씨에게 접근금지 명령만 내렸을 뿐이었다. 사건 처리과정을 묻자 OSI 측은 "당신 말고도 미군 성폭행 사건이 매주 두세 건씩 들어와 빨리 처리하기 어렵다"며 "미국 워싱턴에 보낸 증거물이 언제 한국으로 돌아올지 장담할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참다못한 이씨는 한국 경찰에 신고했지만 경찰 측은 "시간이 많이 흘렀고 미군 범죄는 우리가 수사하기 어렵다"고 했다. 소파협정은 일부 개정됐지만 이씨는 경찰서에서 여러 차례 거절당했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 1월30일 서울 용산경찰서가 수사에 착수했다. 이씨는 "J씨는 오는 5월 본국으로 돌아간다"며 "그가 처벌받지 않고 한국을 떠나면 견딜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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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성세희기자 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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