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촌 사는 30대男, 주말만 되면 공포에 그만
"관광객이 많이 오는 건 반가운 일이긴한데... 이런 분위기에 행여 찬물을 끼얹는 건 아닐까 불편을 감수하고 살아요. 하지만, 불만이 쌓이고 쌓이면 결국 터지지 않겠어요" 전통 살아있는 북촌, 넘쳐나는 방문객으로 '시름시름' 앓고 있다.
주말이면 내·외국인으로 북적이는 거리 곳곳은 담배꽁초나 쓰레기가 널브러져 있고, 외지인들의 무분별한 불법주차로 인해 가회동, 계동, 삼청동 등 북촌일대 주민들은 남모를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것.
주중에 회사업무에 시달린 김모씨(39세, 회사원)는 주말에는 조용하게 쉬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집이 북촌 한가운데에 있기 때문에 토요일은 물론 일요일에도 창문 너머로 관광가이드의 외침이 끊이질 않는다. 주말이면 관광객인데 한옥 내부를 보고싶다며 별 생각 없이 초인종을 눌러대는 사람들도 있다.
김씨는 "평일엔 집에 있는 시간이 적어 상관없지만, 사람들이 넘쳐나는 주말에는 도를 넘을 때가 많아 아예 초인종을 없앨까 고민 중"이라고 토로했다.
안국역 2번 출구를 나와 헌법재판소 방향으로 1㎞정도 걷다보면 좌측으로 북촌, 우측으로 계동 한옥마을을 만날 수 있다. 순간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로 돌아간 듯 착각이들 정도로 고풍스런 한옥들이 멋진 자태를 뽐낸다.
지난 1960년대는 북촌 일대가 모두 한옥이었지만 1990년대 이후에는 다세대가구 주택이 급속하게 들어섰다. 현재 한옥은 사라졌지만 일부지역은 양호한 한옥들이 많이 남아 있어 내·외국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그 중에서도 가회동 31번지와, 33번지 일대 그리고 가회동 11번지 일대는 관광객들이 꼭 들려야하는 대표적인 한옥밀집지역으로 유명하다.
북촌한옥마을을 찾은 관광객은 2006년 1만3000여 명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에는 59만여 명에 달했다. 지난해 집계는 관광안내소에 들려 안내책자나 관광 상담을 받은 관광객수로 실제 북촌한옥마을을 다녀간 관광객은 70만 명이 훌쩍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북촌한옥마을의 관광객수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문제는 몰려드는 관광객들로 인해 북촌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불편도 늘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지난 2011년부터 북촌일대를 찾는 관광객의 반 가까이가 외국인 단체 관광객인 점을 감안해 가회동 31번지와 33번지 등 주거지역을 돌아볼 때는 가이드가 확성기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관광객들에게는 이곳이 유적지가 아니라 주민의 실제 생활공간임을 알려주고 큰 소리로 떠들거나 열린 문틈 사이로 사진 촬영을 자제해 줄 것을 안내하고 있다. 또 서울시와 종로구는 가회동과 삼청동 일대 15곳에 침묵관광을 안내하는 표지판을 설치하고 북촌 내 관광안내요원들에게는 '소음 자제' 홍보문구가 적힌 어깨띠를 두르고 다니도록 했다.
하지만 주민들의 불만은 오히려 늘어나는 모양새다. 예전에 활짝 열어 놓던 대문도 이젠 굳게 잠그기 시작했고, 방범보안 업체 경비시스템을 설치하는 집까지 늘고 있다.
거기에 관광객의 불법주차로 주민과 관광객간의 실랑이가 끊이질 않는다.
북촌은 경복궁과 창덕궁의 율곡로와 삼청공원으로 둘러싸인 가회동, 계동, 삼청동, 원서동, 재동, 팔판동 일대(1,076,302㎡)로 역사문화미관지구다. 현재 제1종 일반주거지역 도시계획구역이기 때문에 개발도 쉽지 않다.
문제는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 있다 보니 공용주차장 같은 필요시설이 제한때문에 확충을 못한다는 것이다.
현재 종로구시설관리공단에서 운영하는 공용주차장은 직영 11곳, 위탁 3곳 총 14곳이다. 북촌에 있는 공용주차장은 삼청공원 앞 단 1곳이고 이마저도 대기인원이 백여 명으로 신청 후 몇 년은 기다려야 자리가 날까 말까다.
결국 거주지까지는 1㎞이상을 걸어야 하는 탑골공원이나 인사동 인근으로 눈을 돌리지만 여기도 포화상태이긴 마찬가지. 길가나 주택가에 있는 거주자 우선주차구역 또한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아토피를 앓고 있는 아들때문에 10여 년간 살던 아파트생활을 접고 북촌에 둥지를 튼 함성재씨(46세, 회사원)는 최근 몇 년간 늘어난 관광객들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주차문제로 차 빼달란 전화로 하루에 몇 번씩 얼굴을 붉히기 때문이다.
거주자우선주차구역을 이용하는 함씨는 "퇴근 후 무거운 몸을 이끌고 주차장에 오면 일주일에 4일 이상은 외지인차가 주차되어 있다"며 "어떤 사람은 지금 관광중이니 나중에 빼준다며 전화를 끊는 경우도 있다. 매월 5만원을 내고 주차하는 건데 늘 빼달라는 부탁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실제 종로구시설관리공단과 중구청주차관리과 게시판을 살펴보면 주차문제해결을 재촉하는 주민들의 글도 쉽게 볼 수 있다.
거주자우선주차를 이용하고 있는 시민이라고 밝힌 김모씨는 게시판을 통해 "연락처없이 주차해놓는 불법차량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며, "단속과에 전화해도 안 받을 때도 많고 24시간 거주자우선주차제라면 24시간 단속을 해야하는 것 아니냐"며 시정을 요구했다.
또 최모씨는 덕성여고 앞 일방통행 도로 주정차 위반 단속을 요청했다. 일방통행길은 늘 관광객들로 북적거리는데 양쪽에 일렬로 주차한 차량들 때문에 걷기가 불편하고 주차하는 차들 때문에 위험해 보인다는 것이다.
불법주차 신고란을 만들어달라는 요청도 있었다. 거주자우선주차장에 불법 주차하는 차들과 장애인구역 위반 차량을 신고하는 방법을 알고 싶다며 없다면 신문고 기능을 만들어달라는 요구도 눈에 띄었다. 관광버스의 경우는 더하다. 현재 경복궁의 관광버스 수용 공간은 동문 주차장이 유일하다. 이 주차장이 수용할 수 있는 45인승 버스는 최대 60~70여대. 주말이나 휴일에 관광객 방문이 집중되면 일대는 금세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종로구청은 문제해결을 위해 헌법재판소에 주차 공간 개방을 요청했으나 헌법재판소 측은 보안상의 이유로 개방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개방이 이뤄지게 되면 청사 내부를 들락날락하는 관광객들과 민간인들의 통제가 어려워져 보안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것.
종로구는 문제해결을 위한 헌재의 업무협조가 절실한 상황이지만 헌법재판소측 반대가 심해 이도 여의치 않은 실정이다.
종로구시설관리공단도 구체적인 문제해결 방안이 없는 상황이다. 불법주차에 대한 단속권이 없다보니 단속에 대해 주관과와 단속반에 요청하는 게 최선이다.
종로구 주차단속과는 홈페이지를 통해 공공용지내 지하주차장 건설에는 막대한 예산소요와 토지소유기관의 동의가 필수적이며 부지 소유주체와 의견조율 등 협의해야 할 사항이 많아 추진이 지연되고 있다며 지역민의 이해를 바란다는 내용의 답변이 주를 이룬다. 또 도시계획시설로 결정해 추진해오던 정동도서관 지하주차장 건립에 관련해 서울시나 종로구청은 개보수비용 150억원의 재정마련이 힘들어 현재 답보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재동초등학교 지하주차장 건립도 학교 측에서 학생들의 안전문제로 난색을 표하고 있어 단기간내 해결되긴 어려워 보인다.
종로구청 주차관리팀 담당자는 "지역내 주차난 해소를 위해 정독도서관, 재동초등학교지하에 주차장을 건설코자 도시계획시설로 결정했지만 추진하려면 넘어야할 산이 많다"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부설주차장 일부에 대해 지역주민들을 위해 개방해 줄 것을 문화체육관광부에 건의했지만 건물 구조상 주차장 개방에 난항이 있다. 하지만 아직 협의 중인 사항이라 진행여부에 대해서 아직 뭐라고 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북촌 일대지역 주민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선 공공기관의 노력이 절실하다. 하지만 해결해야할 문제가 산적해있고 교육부나 관광부의 협조를 얻어야하는 사안이라 하루아침에 개선되긴 힘들다.
지금 북촌엔 성숙한 시민의식이 절실해 보인다. 북촌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달라져야 한다. 북촌은 어떤 고립된 특별한 장소, 더욱이 우리가 독점하는 장소가 아니라는 인식을 갖고 내 시선이 아닌 우리의 시선으로 볼 필요가 있다.
한옥 건축가 황두진씨는 기고를 통해 "북촌의 아름다움은 골목길의 아기자기한 패턴, 파도처럼 연속되는 기와지붕의 유장한 흐름,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둘러싸고 있는 웅대한 자연환경 등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북촌은 그 바로 앞에 서울의 도심지가 자리 잡고 있기에 더 큰 가치가 있다"며 "가회동 31번지 골목길을 올라 뒤를 돌아보면 서울 시내가 손에 잡힐 듯이 한 눈에 들어온다. 넘실거리는 기와지붕 위로 현대 도시가 전개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경험"이라고 말할 정도로 북촌의 아름다운과 정겨움을 말했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자가용보다는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건 어떨까. 불편을 조금 감수하면 북촌의 한옥 사이사이로 실핏줄처럼 얽혀 있는 골목길의 운치와 한옥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일상성'이 담긴 생활공간을 접할 수 있는 행운도 얻을 수 있다.
또 쓰레기와 담배꽁초는 미리 준비한 봉지에 버리는 배려와 무엇보다 거주민들을 위해 조용히 한옥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여유도 필요하다.
그럼 꽁꽁 걸어 잠근 대문이 언젠가는 활짝 열리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매경닷컴 조성신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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