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고향 가는 기차서 과거의 나를 만나다

2013. 2. 12. 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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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11일 월요일 맑음. 향수(鄕愁)의 고장에서. 트랙 #45 Death Cab for Cutie 'Different Names for the Same Thing'(2005년)

[동아일보]

미국 4인조 록 밴드 데스 캐브 포 큐티의 앨범 '플랜스'(2005년) 표지.

명절이면 유별난 향수의 고장으로 내려간다. 유명한 시 '향수'가 탄생한 곳이다. 원래 고향은 대전이지만 스무 살 무렵 가족이 여기에 둥지를 틀면서 제2의 고향이 됐다. 올해는 귀성한 김에 그 시인의 생가도 10년 만에 가 봤다. 시 속에서처럼 휘돌아 나가던 실개천은 현대식 난간과 교량 시설이 생기며 회색으로 변했다. 그래도 그 앞에 서니, 전설 바다에서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나한테는 없는 어린 누이까지 보고 싶어졌다. 고향집에 다녀오면 아무리 배 터지게 먹고, 그것도 모자라 바리바리 싸 들고 돌아와도 허전하다. 젊음의 거리 서울 서교동엔 없는 것도 많다.

하나뿐인 조카 K의 폭풍 같은 성장은 1년에 딱 두 번 귀성하는 불효자인 내게 늘 충격을 준다. 그는 어느새 이마에 여드름이 나고 변성기가 온 사춘기 남자가 돼 있었다. 머리에는 왁스가, 어리광 위에는 반항기가 얹혀 있었다. 스스로는 볼 수 없었던 그 나이 때 내 모습을 유체이탈해 보는듯 묘한 느낌이었다. 귀여운 내 조카에게 쥐여 준 두둑한 세뱃돈은 어디로 갈까.

고향 가는 열차에 오를 때마다 왠지 미국 록 밴드 데스 캐브 포 큐티의 '디퍼런트 네임스 포 더 세임 싱'을 흥얼거리게 된다. '기차에 혼자 올라'라는 첫 구절 때문인가. 탑승 구간은 늘 똑같지만 왠지 이 열차가 아예 다른 곳으로 날 데려갈지 모른다는 초현실적 기대감 때문일지도 모른다. '쓸모없어진 옛 지도를 구겨 넣고 낯선 해안에서 해 지는 광경을 바라본다'라는 가사 내용. 나른한 전반부와 대비되는 후반부는 단속적인 전자음과 베이스, '이름은 다르지만 사실은 같은 거야'라며 반복되는 노래 탓에 5분이 훨씬 넘는 듯 길게 느껴진다. 드럼의 찰랑대는 라이드 심벌 음향은, 열차 마지막 칸에서 바람을 맞으면서 발밑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침목을 내려다보는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고향에는 현재의 조카와 과거의 나, 현재의 나와 현재의 어머니, 과거의 형과 현재의 형이 모두 있다. 기억 속 사과와 입속 빵이 혼재한다. 모두 같을지도 모른다. 이름만 다를 뿐.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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