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경향〉'6시 내고향' 국민안내양 김정연 "장바구니 대충만 봐도 어르신 일정 훤히 보이죠"

2013. 2. 7.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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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월요일 저녁, 시청자들에게 고향의 정취를 알려주는 프로그램 KBS1 < 6시 내고향 > 에는 유난히 높은 톤의 목소리를 한 리포터가 있다. 그의 손에서 시골 버스를 타는 모든 촌로들의 장바구니가 공개되고 가정사가 알려지지만 전혀 심각한 분위기가 아니다. 오히려 촌로들은 기꺼이 자신의 마음을 터놓고 안내양 복장을 한 그에게 울고 웃으며 수다를 건넨다. 벌써 시골 버스 안내양 3년을 채운 가수 출신 방송인 김정연(44)이다. 다른 이들에게 고향의 소식을 전해주느라 그는 정작 설이 다가오는 요즘에도 고향에 갈 엄두를 못 내고 있다. 명절을 앞둔 그의 마음은 전국에서 자녀들의 귀성을 기다릴 부모들의 그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는 인터뷰가 시작되자마자 첫회부터 빼곡히 적어온 이른바 '시골 버스 노트'를 보여줬다. 노트에는 촬영날짜와 장소뿐 아니라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캐릭터도 정리돼 있다. 지난 2010년 1월19일 경북 성주군 군내버스 0번을 타면서 시작된 여정은 지난 4일까지 총 145회가 방송됐다. 지금까지 85개군을 모두 한 번씩 방문했다. 이미 지난 2011년 11월 '대한민국 최단기간 최다 지역 시·군내버스 탑승' 기록으로 기네스북에도 등재됐다. 당시 탑승 거리가 2만6000㎞였고 지금은 4만㎞를 훌쩍 넘어섰다.

"파일럿(시험) 프로그램으로 시작했는데 벌써 3년이 넘었네요. 저도 서울에 살고 있던 터라 처음에는 시골버스에 적응하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처음에는 제 질문에 대답도 안 해주시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이제는 서로 먼저 다가오세요. 입술에 뽀뽀를 받는 일도 다반사죠. 장바구니도 많이 들여다보니 이제 대충만 봐도 어떤 일로 읍에 나오셨는지 다 알 수 있어요. 덕분에 시골의 1년이 어찌 돌아가는지 잘 알 수 있게 됐죠."

매일 수요일 오전 4시 그는 어둠을 깨고 전국 방방곡곡을 누빈다. 아침부터 시작되는 촬영을 따라잡기 위해서다. 김정연은 사전 회의로 결정된 군의 읍 버스터미널에 대기하고 있다가 마을로 가는 차에 오른다. 하루에 많으면 20번 버스를 탄다. 좋은 이야기를 끄집어내면 버스 타는 횟수가 줄지만 승객이 없거나 활기가 떨어지는 촬영 후에는 절로 어깨에 힘이 빠진다. 식사도 빵 종류를 챙겨놨다 얼른 먹거나 촬영 시간이 불규칙해 못 먹기 일쑤다.

'파일럿 프로'로 시작한 게이젠 3년 넘어 어엿한 장수프로시골버스 주행거리 4만㎞ '훌쩍'정 넘치는 분위기 너무 좋아어르신들과 끝까지 오라~이

"전국을 다니다 보니 지역별로 어르신들의 분위기도 달라요. 전라도 어르신들은 할머니, 할아버지 다를 것 없이 화끈하고요. 충청도분들은 꼭 이야기할 것처럼 하다가 '몰라도 돼~'라고 말을 뭉뚱그리셔서 애를 태워요. 경상도분들은 할머니들은 화끈하신데 할아버지들은 과묵하신 분들도 있죠. 강원도 어르신들은 순수하고요."

촌로들의 마음을 얻는 데는 무조건 눈을 바라보고 이야기를 잘 들어드리는 것이 최선이다. 적절한 반응은 꼭 필요하다. 사람과의 소통, 며느리 뻘되는 리포터의 재롱에 어르신들의 말문은 절로 열린다. 그런 와중에 다양한 사연을 접하기도 한다.

"시집간 지 2년 만에 남편분이 일본에 징용으로 끌려가신 92세 할머니가 계셨어요. 결국 남편은 일본에서 가정을 꾸렸는데 몇십년 만에 한국에서 상봉을 한 거죠. 그후 남편분이 일본에 가셨는데 쓰나미가 휩쓸고 가는 바람에 생사를 모르게 됐어요. 욕설을 섞긴 하셨지만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할 땐 눈시울이 뜨거워졌죠. 한 번 갔던 곳을 다시 찾아 갔을 때, 이미 돌아가신 분들의 소식을 들으면 마음이 아파요."

이번 주말은 민족의 최대 명절인 설이다. 도시에서는 귀성 준비에 바쁘고, 시골에서는 자녀들을 맞이할 준비에 한창이다. 그가 말한 고향 부모님들의 마음은 오로지 하나다. 자녀와 손자, 손녀들의 얼굴을 보기 위해 명절이 아닌 1년의 나머지 기간을 지낸다는 것이다. 하지만 도시의 자녀들에게 귀성과 명절은 어느새 번거로운 일정이 됐다.

"저도 막상 부모님을 못 뵙는 불효녀로 살고 있어요. 명절 스트레스 때문에 '명절 증후군'이 있다고 하잖아요. 1년 중 명절만 바라보며, 자녀의 귀성만을 기다리는 부모님들의 마음을 조금만 더 이해해주셨으면 좋겠어요. 1년에 설, 추석 합쳐도 1주일 남짓이잖아요."

그는 2011년 < 6시 내고향-시골 길 따라 인생 길 따라 > 의 테마송으로 불린 '고향버스'를 발매한 후 올해 오롯이 가수로 다시 설 수 있는 노래를 준비 하고 있디. 또한 안내양으로 산 3년을 정리하는 책도 준비 중이다. 사진과 글을 요즘 틈틈이 모으고 있다. 이 값진 경험의 시간을 꼭 남겨보고 싶단다.

"이제는 도시에서 버스를 타면 너무 어색해요. 모두 표정없이 각자의 일만 하고 있잖아요. 따뜻한 정이 흐르는 시골 버스가 너무 좋아요. 어르신들이 '재미없다'고 내쫓을 때까지 계속 안내양으로 남고 싶어요."

< 글 하경헌·사진 홍도은 기자 azimae@kyunghyang.com >모바일 경향 [종이신문 그대로 안드로이드폰에서 보자!]| 공식 SNS 계정 [트위터][미투데이][페이스북]- ⓒ 스포츠경향 & 경향닷컴(http://sports.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경향닷컴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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