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은 '동성애자'로 죽었다

이규대 2013. 2. 1.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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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7일, 충남 소재의 한 군부대에서 손 아무개 일병(24)이 숨진 채 발견되었다. 지하 보일러실에서 스스로 목을 맸던 것이다. 성 정체성에 대한 혼란 등을 토로한 A4 용지 16장 분량의 유서가 함께 발견되었다. 당초 이 사건은 군 내부의 '사고 사례'로 감춰진 채 외부에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 1월16일, 관련 제보를 접수한 시민단체 '군 인권센터'를 통해 세상에 처음 공개되었다. 이로써 '병영 내 인권'이라는 민감한 이슈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지난해 12월 말, 휴가를 떠났던 손일병은 귀대일인 12월26일까지 부대에 복귀하지 않았다. 다음 날인 27일, 손일병은 부모의 손에 이끌려 부대로 돌아왔다. 군 헌병대는 곧바로 군무 이탈 죄목으로 조사를 시작했다. 이때 손일병은 자신이 청소년 시절부터 성 정체성 때문에 고민해왔다고 말했다. 자신이 군무 이탈을 하게 된 원인을 설명하기 위해 용기를 내어 '커밍아웃'한 것이다. 이에 대해 손일병은 "(성 정체성을 둘러싼 혼란을 이기지 못해) 이미 17세 때 두 차례 자살 시도를 했다. 휴가 복귀일 직전에도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리려고 했다"라고 진술했다.

ⓒ 시사저널 임준선

이미 손일병은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는 진단을 받은 바 있었다. 입대 직후 훈련소에서 받은 인성 검사에서였다. 하지만 자대 전입 후 실시된 검사에서는 특별한 문제가 없는 것으로 진단되었다. 그가 '관심 병사'로 분류되지 않았던 이유이다. 헌병대는 조사가 끝난 직후, 손일병이 진술한 내용을 부대 지휘관에게 긴급 통보했다.

손일병의 심리적 스트레스가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보여주는 또 다른 정황이 있다. 그는 '국군 생명의 전화'에 다섯 차례 접촉해 상담을 받았다. 처음 네 번은 익명으로 스스로의 고충을 토로했으나, 지난해 12월30일 가진 마지막 전화 상담에서는 소속과 신원을 밝혔다. 자신의 성적 정체성이 드러나는 두려움을 감수하면서까지 군 당국에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손일병과 통화한 상담관은 그가 매우 위험한 상태에 있다고 판단했다. 통화를 마치고 난 후 바로 부대에 관련 사실을 통보했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뒤, 손일병은 스스로 세상을 버렸다. 그 일주일이라는 시간 동안, 부대에서 취한 조치가 과연 적절했는가가 논란의 대상이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부대 지휘관인 대대장이 지난해 12월31일 첫 면담을 실시했다. 이후 총 7회 면담했다. 지휘관이 직접 챙기면서 매일 상담과 관찰을 통해 특별 관리를 해오던 중에 갑자기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라고 밝혔다. 군에서는 최대한 적절히 조치하려 노력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군의 조치에 문제가 있다는 비판도 거세게 나온다. 임태훈 군 인권센터 소장은 "과거 수차례 자살 시도가 있었다는 사실을 접한 즉시 적극적인 조치를 취했어야 한다. 군의관을 통해 육군수도통합병원에 입원 조치를 하거나 외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았어야 했다. 무엇보다 훈련소와 자대의 인성 검사 결과가 서로 엇갈렸다면, 그 즉시 외부 전문가로부터 정밀 진단을 받았어야 했다. 부대 관리 소홀의 책임을 피할 수 없다"라고 비판했다.

"고립감 극도에 달했을 것"

< 시사저널 > 은 이런 논란의 이면에 주목했다. 군측의 후속 조치가 적절했는지 여부는 손일병의 죽음을 둘러싼 근본적인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손일병은 왜 수차례 자살 시도를 할 정도로 정체성에 대한 고민에 시달렸을까? 동성애 성향을 지닌 그가 군 생활에서 어려움을 겪은 이유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손일병이 겪었던 정신적 스트레스의 근원을 좀 더 심층적으로 살펴볼 필요성이 있다.

이에 대해 동성애자인권연대에서 활동하는 정욜씨에게 자문을 구했다. 정씨는 커밍아웃한 동성애자로, 군 생활 당시 자신의 성 정체성을 아웃팅(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성적 경향이 드러나게 되는 것)당하며 군 복무를 고통스럽게 수행한 바 있다. 최근까지 수많은 상담을 해온 그는 군 입대를 앞두거나 이미 군 생활을 마친 동성애자들의 고충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정씨는 "동성애자 군인들은 스스로를 이성애자인 것처럼 위장해야 하는 데서 심적인 스트레스를 안는다"라고 설명했다. 일반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군대와 같이 위계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조직에서는 이런 고충이 더욱 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하루하루가 긴장의 연속이다. 자신의 (동성애자로서의) 정체성이 주변에 드러날지 모른다는 공포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 긴장은 스스로를 위축시키고, 자꾸 침묵하도록 만든다. 특히 다른 병사들과 있을 때 자신의 모습을 (이성애자로) 가장하게 만든다. 선임병이 동성애를 혐오하는 발언을 할 때 맞장구를 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는다"라고 말했다.

손일병은 유서에 '(동성애가) 이렇게 부끄러운 죄인데 어떻게 고개를 떳떳이 들고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중략) 저 같은 죄인을 위해서는 장례식이건 뭐건 필요하지 않습니다'라고 적었다. 이 문구에 대해, 정씨는 "손일병이 동성애를 금기시하는 사회적 분위기 탓에 스스로의 성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한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정씨는 "자신을 향한 혐오감이 강했다는 점에서 더욱 큰 심리적 고통을 겪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스스로에 대한 방어가 강력하다는 것은 주변에 대한 신뢰도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을 반증한다. 고립감이 극도에 달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손일병은 고교 시절 친하게 지냈던 소수의 친구들에게만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손일병의 한 친구는 "(손일병의) 부모님도 최근까지 (손일병의 고민을) 몰랐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사회와의 끈이 단절된 병영 안에서 그 고립감이 더욱 심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손일병이 '국군 생명의 전화'에 수차례 전화를 걸며 소통의 창구를 찾았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성적 소수자들 "미쳐버릴 것처럼 힘들다"

대다수 동성애자는 청소년기부터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을 곳을 찾기는 어렵다. 중학생 때부터 자신의 성 정체성을 자각한 20대 후반의 한 남성 동성애자의 말이다. "나는 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솔직하게 인정하는 편이었다. 그럼에도 학생 시절 정말 미쳐버릴 것처럼 힘들었다. 내가 가진 고민들을 아무에게도 얘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부모님 귀에 들어가는 것, 그리고 학교에서 배척당하고 놀림거리가 되는 것이 두려웠다. 손일병처럼 자신을 부정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면 정말 괴로웠을 것이다."

손일병은 영국에서 대학을 다녔다. 군 복무를 수행하기 위해 유학을 중단했다. 국방부 발표에 따르면, 부대 지휘관과의 면담에서도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비밀로 한 채 성실히 군 복무를 수행하고 싶다는 의지를 밝혔다. 군의관 상담이나 정신과 진료를 받지 않겠다고 했다. 부모에게도 알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지휘관이 '현역 복무 부적합 심의'를 통해 전역하는 방법도 있다고 했지만, 군 생활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손일병은 끝까지 '대한민국 장병'으로 살고자 했다. 하지만 끝내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동성애자'로 죽었다. 이 비극의 근본적인 책임은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규대 / bluesy@sisa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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