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다문화거리? '국경 없는' 성매매거리!

한세현 기자 2013. 1. 26.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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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이었습니다. 가깝게 지내던 지인으로부터 제보 전화를 받았습니다. "경기도 안산의 다문화거리에서 성매매가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다." '안산 다문화거리? 그곳이 어떤 곳인지 좀 더 정확히 알기 위해 인터넷으로 검색해봤습니다. '세계가 함께 어우러지는 문화특구', '다르지만, 우리를 느낄 수 있는 다문화거리', '전 세계의 맛을 한 번에 맛볼 수 있는 곳'. 이런 긍정적인 내용이 주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검색된 결과를 내려서 보다가, 우연히 어느 누리꾼이 올린 작은 글을 접했습니다. 그 글에는 성매매를 의미하는 '2차'라는 단어가 들어 있었습니다. 찜찜한 마음에 좀 더 자세히 검색을 해봤습니다. 그랬더니 성매매를 뜻하는 글들이 생각보다 많이 나왔습니다. '성매매'라는 주제가 워낙 민감한 데다, 자칫하면 선정적인 보도로 흐를 수 있다는 생각에 잠시 주저했지만, 일단 현장을 직접 확인해 보기로 했습니다.

다문화거리를 장악한 불법 다방과 노래방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린다는 토요일 오후, 안산의 다문화거리를 직접 가봤습니다. 길을 걷는 여러 국적의 시민, 다양한 종류의 음식점, 이국적인 글자. 그 가운데서도 유독 자주 눈에 띄는 게 있었습니다. '다방'과 '노래방' 간판이었습니다. 바로 성매매가 이뤄지는 곳으로 지목된 곳이었습니다. 밖에서 보기엔 여느 다방이나 노래방과 별 차이 없는 이런 곳에서 과연 성매매가 이뤄지고 있을까? 손님으로 가장해 직접 다방에 들어가 봤습니다. 저를 처음 맞이한 건 30대로 보이는 여성이었습니다. 매우 유창한 우리말로 자리를 안내했지만, 조금 다른 억양을 통해 우리나라 여성은 아니라는 점을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자신을 중국인이라고 소개한 여성은 제 옆에 앉아 몇 마디를 나누는가 싶더니, 판매가 금지된 맥주를 시키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몇 마디가 오고 가자, 잠시 뒤 매우 자연스러운 목소리로 성매매를 뜻하는 '2차'라는 단어를 꺼냈습니다. '2차'라는 단어가 나오는 데는 불과 5분이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은밀한 성매매가 이뤄지는 이른바 '티켓다방'이 안산 다문화거리에서만 70곳이 넘게 성업하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불법영업 노래방까지 합하면 이런 성매매 업소는 무려 150여 곳이나 됐습니다.

성매매 여성의 대부분은 불법체류 외국인 여성

그럼, 과연 어떤 여성들이 성매매에 나서는 것일까요? 저는 그곳에서 티켓다방을 운영하는 업주를 어렵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 업주는 제게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여기서 일하는 여성은 대부분 중국이나 베트남, 필리핀 등 외국에서 온 불법체류 여성이다. 간혹 우리나라 여성도 있지만, 매우 드물다. 아무래도 이곳에는 공업단지가 있어 외국인 근로자가 많이 거주하는데, 그 사람들을 접대할 목적으로 들어온 외국인 여성이 다수다. 그런데 최근에 돈을 벌기 위해 우리나라 사람과 위장 결혼해 들어오는 경우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성매매를 목적으로 이곳에서 일하는 여성만 대략 100명이 넘는다. 하지만, 대부분이 불법 체류자다 보니, 보건소 같은 데서 건강 진료도 제대로 못 받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찾아가 본 다방의 경우, 손님 대부분은 외국인인 아닌 우리나라 남성이었습니다. 다방에서 만난 여성들도 이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외국인 아가씨를 만날 수 있다는 입소문이 돌면서 성매매를 목적으로 이곳을 찾는 우리나라 남성이 점점 늘어난다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제가 다방에서 만난 외국인 여성들은 우리말을 매우 유창하게 구사하고 있었습니다. 이곳을 방문하는 우리나라 남성이 얼마나 많은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여성들은, 우리나라 남성들이 외국인 근로자보다 돈을 더 쉽게 써서 인기가 많다는 얘기를 빼먹지 않았습니다.

유명무실한 단속과 계도활동

이런 성매매 거리에 거주하는 주민은 불쾌하다 못해 불안해하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거리 곳곳에서 화려한 차림의 외국인 여성을 쉽게 볼 수 있었고, 중년 남성과 젊은 여성이 팔짱을 끼고 다니는 장면도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차마 방송으로는 전해 드리지 못했지만, 거리 곳곳에서 '외국인 여성을 찾는' 우리나라 남성들의 '화려한(?) 언변'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곳 주민이 가장 걱정하는 건 역시 아이들에게 끼칠 악영향이었습니다. 실제로 이 다문화 거리 주변에는 초·중·고등학교가 있었습니다. 또 거리 가운데 있는 어린이 놀이터는 티켓다방들로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주민은 이미 아이들도 이곳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해 다 알고 있다고 푸념했습니다. 이쯤 되면 당연히 단속이 부실하다는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동안 지자체와 경찰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이에 대해 안산시와 경찰은 "인력과 예산이 부족하다. 그럼에도,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직접 확인했던 또 만나고 들었던 주민의 얘기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안산시가 조성한 다문화거리는 단순한 어느 지방의 외국인 집단 거주지가 아닙니다. 지지체가 문화교류의 장을 마련하겠다며 국민 혈세 200억 원을 들여 야심 차게 조성한 문화?관광특구입니다. 하지만, 지자체장, 기관장들이 방문해 사진 찍고, 악수하고, 이를 언론에 알리게 바빴지 과연 그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제대로 신경이나 썼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재앙과 환난은 항상 하찮게 여겼던 것이 쌓여서 생긴다"

SBS 보도가 나가자, 안산시는 특별단속반을 만들어 뒤늦게 티켓다방과 노래방 등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에 나섰습니다. 불법 영업한 관련자들을 잡아들이고, 종사자들을 구청으로 불러 특별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어느 안산시민은 제게 이런 내용의 메일을 보내주셨습니다. "내가 피땀 흘려 번 돈을 저렇게 허투루 쓰다니, 착잡하고 서글픈 마음을 가눌 수 없다. 안산시민으로서 또 중학생 자녀를 둔 아버지로서 아이들 볼 면목이 없다."

송나라의 대유학자 구양수가 쓴 '영란전서'라는 책에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화환상적어홀미(禍患常積於忽微)-재앙과 환난은 항상 하찮게 여겼던 것이 쌓여서 생긴다.' 사람이 큰 돌에 걸려 넘어지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대부분은 하찮게 여겼던 작은 돌에 걸려 넘어집니다. 큰 돌은 눈에 잘 띄기 때문에 미리 조심해서 피해 가지만, 작은 돌은 눈에 잘 띄지 않기 때문에 살피지 않다가 그 돌이 걸려 넘어지게 된다는 뜻입니다. "성매매 그거 어디든지 다 있는 거 아니에요? 별거 아니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이렇게 얘기했던 담당 공무원들이 한번 쯤 새겨들으시면 합니다.

추신.

사회 현상을 취재하고 그걸 글과 영상으로 시청자들께 전달하는 직업으로 가진 사람이지만, 이번 기사는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사실 막막했습니다. 아무래도 주제가 민감한 '성매매'를 다뤄야 하다 보니, 행여 '영상이나 기사가 너무 선정적이거나 자극적이지 않을까?', 그런 고민과 걱정을 떨쳐버릴 수 없었습니다. 또, 어떤 면에서는 '성매매' 사건을 언론에서 너무 자주 다루다 보니, '이젠 식상해진 주제여서 기사로서 가치가 없는 게 아닐까?' 그런 고민도 적지 않게 했습니다. 하지만, 국가와 지자체가 혈세를 들여 조성한 '문화거리'가 '성매매 거리로 변질됐다'면 우리가 머리를 맞대고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판단했습니다. 부족하나마, 보도과정에서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내용과 영상은 줄이려고 노력했습니다. 시청자 여러분께서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한세현 기자 vetman@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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