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입맛대로 검열·수정 '국정교과서'로 돌아가나

송현숙 기자 2013. 1. 22.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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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 '교과서 수정 권한' 강화 법안 논란

교육과학기술부가 21일 장관의 교과서 수정권을 강화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해 사회적 파장이 커지고 있다. 당장 "법안 내용이 자의적으로 해석돼 장관의 재량권이 남용될 수 있다" "교과부가 검인정 체제를 폐지하고 국정교과서로 돌아가자는 것"이라는 비난이 일고 있다. 임기말에 다시 추진되는 법 개정에 의혹의 눈초리가 붙고, 역사인식 문제로 홍역을 치른 새 정부의 출범에도 정치적 부담을 줄 것으로 보인다.

▲ 수정 요청 요건 "모호하고 포괄적" 학계 비판자의적 해석·이중 검열… 검·인정 취소조항도

교과부는 지난해 8월 입법예고했다가 반발에 부딪혔던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다시 입법예고했다. 교과부 관계자는 "입법예고 기간에 교과부 장관의 교과서 수정요청권이 너무 포괄적으로 규정됐다는 의견이 많아 수정요청 조건을 구체적으로 규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5가지로 규정한 수정요청 요건 역시 너무 포괄적이고 모호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새 입법예고안에는 교과부 장관이 수정을 요청할 수 있는 경우로, '학계에서의 객관적인 학설상황이나 교육상황에 비추어 학문적인 정확성이나 교육적인 타당성을 결여한 경우'와 '검인정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내용을 발견한 경우' 등이 포함됐다.

2008년 시작된 금성교과서의 좌편향 교과서 논란으로 현재도 재판을 진행 중인 김한종 한국교원대 교수는 "자연계열이라면 비교적 객관적인 학설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인문·사회 계통에서는 객관적인 학설이 존재하지 않는다"며 "결국 수정권한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자의적으로 해석할 것이 불보듯 하다"고 지적했다.

대통령령, 검정기준 등에 있던 내용을 법령으로 격상시킨 입법예고안을 두고도 민감한 사항은 장관 뜻대로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1·2심 판결이 엇갈렸던 '금성교과서 소송'과 같은 일이 애초에 봉쇄될 것이란 지적이다.

지난해 8월 입법예고안에는 없었던 교과부 장관의 '감수' 조항이 들어간 것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이날 입법예고안에는 '교과용 도서의 편찬, 검인정 단계에서 필요한 경우 감수를 할 수 있다'는 조항이 새롭게 들어갔다. 이에 덧붙여 교과부 장관은 감수를 위해 감수기관을 지정할 수 있으며 감수의 대상, 범위, 절차 등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고 명시했다.

이성호 전국역사교사모임 회장은 "검인정교과서를 심사하는 과정과는 별개로 감수 조항을 두겠다는 것은 교과부가 이중검열을 하겠다는 것으로 교과서의 다양화·자율화를 취지로 하는 검인정교과서의 흐름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입법예고안에는 지난해 8월 문제점으로 지적됐던 검인정 합격 취소 조항도 들어 있다. '출판사가 장관의 수정요청에 따르지 않을 경우 검인정 합격의 효력을 정지시키거나 취소할 수 있다'는 조항이다. 전국역사교사모임은 지난해 9월 "장관의 수정명령 조항은 검정에 합격한 교과서에 대해서도 교과부 장관이 지속적으로 개입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독소조항이 될 우려가 크다"며 "절대 반대한다"는 의견을 교과부에 제출했다.

박경신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교과부 장관이 자의적으로 교과서 수정요청을 할 수 있도록 한 정부 입법예고안은 헌법에서 보장하는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을 정면으로 훼손하는 것"이라며 "결국 검인정교과서를 폐지하고 국정교과서 시대로 돌아가자는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새 정부 출범을 앞둔 시점에 장관의 교과서 수정권을 강화하려는 움직임도 뒷말을 낳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대선 때 역사인식 문제로 논란에 휩싸인 상황에서 또 하나의 시비를 불러올 수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교과부 관계자는 "지난해 8월 입법예고 주요 사항이 바뀌면서 예정대로 진행했을 뿐 정치적인 고려는 없다"며 "큰 반대의견이 없으면 3월10일까지 의견수렴을 거쳐 4~5월 중 정부 입법안이 국회에 제출될 것"이라고 말했다.

교과부는 2010년 18대 국회에서 비슷한 내용의 법안을 제출했지만, 당시에도 국가가 일방적으로 교과서 내용을 정하려 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시민사회단체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결국 18대 국회가 끝나면서 자동폐기됐다.

< 송현숙 기자 song@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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