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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억 원짜리 예배당', '교인70만 명', '수십억 헌금 횡령'….

이런 소식을 접할 때마다 씁쓸하다. 2000억 원짜리 예배당을 짓는 교회는 서울시와 도로교통법 해석을 두고 다툼까지 벌이고 있다. 불법 여부를 떠나 특정 교회 예배당이 2000억 원짜리라는 것만으로도 부끄러운 일이다. 왜냐하면 2000억 원짜리 예배당이 들어서면 주위에 있는 교회 신자들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기 때문이다. 대형마트가 들어오면 전통시장과 작은 가게가 생존권을 위협받듯이 대형교회 앞에 작은 교회는 살아남기 힘들다.

문제는 이런 '블랙홀 교회'를 비판하기는커녕 "하나님 뜻", "하나님께 감사" 운운까지 한다는 점이다. 통곡할 일이다. 블랙홀 교회는 결국 한국교회가 서구교회처럼 '텅텅 빈 예배당'으로 가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한국교회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주위에 있는 교회를 빨아들이는 대형교회가 아니라 '나누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한국교회 중 독재권력에 저항한 교회로 잘 알려진 향린교회(조헌정 목사)가 설립 60주년을 맞아 그동안 함께한 목사와 교인 80명을 '분가'시켜 분립개척을 했다. 다른 교회 신자들을 끌어모으는 것에 익숙한 한국교회에 작은 파장이 불러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뉴스앤조이>에 따르면, 서울 중구 을지로2가에 자리한 향린교회는 지난 6일 임보라 목사와 시무 장로 3명을 포함해 교인 80여 명을 새로 여는 '섬돌향린교회'로 내보냈다. 향린교회가 이들을 분가시킨 것은 교회 공동창립자인 안병무(1922~1996) 박사의 분가 정신에 따라 홍근수 목사가 담임으로 재임할 때인 1993년 성인교인 500명이 넘으면 다른 교회로 내보내기로 한 '신앙고백 선언'에 근거한다.

교회의 크기를 성인 교인 500명을 최대 인원으로 하는 '교인 정원제'를 실시하고, 그 이상의 인원이 되면 분가선교를 실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개 교회가 지나치게 비대해져서 대형교회가 되는 것은 선교적, 목회적 차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대형교회는 교인 숫자가 늘어남에 따라 교회당을 증축하거나 멀쩡한 교회당을 헐고 신축함으로써 예산 낭비가 심할 뿐 아니라, 사회선교에 쓸 예산을 교회 자체를 유지하는 데 쓰게 되는 등 그 병폐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대형교회를 목회하는 목회자는 불가피하게 경영자로 전락하게 마련이다. - 1993년 '향린교회 신앙고백 선언과 교회갱신 선언'

그해 향린교회는 향린교회 창립 40주년을 기념해 서울 송파동(가락시장 사거리)에 '강남향린교회'를 분립개척했다. 강남향린교회는 또 2004년 강남구 천호동에 '들꽃향린교회'를 분립개척했다. 아비가 아들을 분가시키자 그 아들이 또 딸을 낳은 것이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번에 향린교회는 지난해 성인 교인 수가 400명에 이르자 분가소위원회를 구성해 '공동의회'를 열어 임보라 목사를 섬돌향린교회를 분립개척한 것이다. 

아래는 향린교회 누리집에 실려 있는 '향린-섬돌향린 공동신앙고백'이다. 읽으면 읽을수록 생명이 넘친다.

'향린-섬돌향린 공동신앙고백'
향린 : 저희는 나눔으로 예수의 사랑을 실천합니다.
                                                                                                                             
섬돌향린 : 개개인의 생각과 마음의 차이를 공동체 내의 소통과 나눔을 통해 아름다운 조화를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이렇게 이루어진 아름다운 공동체는 우리의 울타리 안에 가두고 쌓는 것이 아니라 이웃과 함께 하고, 이웃과 나눔으로 사랑을 실천해 나가겠습니다.

다함께 : 하느님의 선교를 위해서는 나눔과 섬김의 공동체로 나가야 한다는 믿음을 간직하게 해 주시고, 이를 분가선교의 꿈으로 소중히 간직하고 실천할 수 있게 이끌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섬돌향린 : 저희는 함께 함으로 예수의 고난에 동참합니다.

향린 : 이제 저희는 두 개의 교회로 나누어지지만, 함께 기도하며 하느님 선교에 동행할 것입니다. 저희의 나뉨은 크게 함께하기 위한 것이며, 가난하고 억압당하고 차별받는 이웃과 함께 하기 위한 것이며, 이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의 고난에 함께 하기 위함입니다.

섬돌향린 : 저희는 다시 일어섬으로 예수의 부활을 증거합니다.

향린 : 큰 좌절을 만나더라도 작은 진리를 보듬으며, 쓰라린 고통 중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이 땅에 하느님의 나라를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우리 가운데 증오와 불신을 끝없이 재생산하며 민족과 개인의 삶을 왜곡하는 분단의 장벽을 희생과 사랑으로 허물고 평화의 땅을 일구어 나가겠습니다.

다함께 : 한 없이 멀어보이던 분가선교의 꿈을 은혜의 선물로 안겨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저희의 기도, 저희의 발걸음 하나하나를 통해 하느님의 은혜에 응답해 나가겠습니다. 사랑과 정의와 평화와 생명이 저희 가운데 가득 차고, 나아가 이웃과 사회에 퍼져나가는 향기가 되겠습니다.

향린교회만 아니라 분가하는 교회들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 서울영동교회는 한영교회와 일원동교회, 서울남교회, 분당샘물교회 등으로 분가했다. 서울 잠실중앙교회는 용인향상교회, 동안교회는 숭의교회로 분가한 것이 그 예다.

이처럼 분가하는 교회가 조금씩 늘어나는 이유는 대형교회는 더 이상 생명력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몇 년 전부터 개신교 숫자는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일부 대형교회만 신자수가 늘어날 뿐, 예배당 없는 임대 교회는 임대료도 내기도 버겁다. 솔직히 대형교회 성장도 작은 교회 신자들을 흡수해 만들어낸 성장으로 '제 논에 물대기'다.

작은 것이 아름답고 했다. 예배당 건축을 한다고, 집 있는 사람은 집 팔고, 전세는 월세로 살더라도 헌금을 하면 나중에 월세는 다시 전세로, 집 한 채는 집 두 채가 될 것이라며 예배당 건축을 강행하는 것은 성경 가르침이 아니다. 신자들 피와 땀을 쥐어짜내 만든 예배당은 화려하지만 가난한 자들이 들어갈 수 없다. 가난한 자들이 들어갈 수 없으면 가난한 자를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 들어갈 수 없다.

교회와 교인들은 이제 '이 세상에서 작은 그리스도인'(a little christian in this world)으로 돌아가야 한다. 작은 자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큰 자를 쓰시는 것이 아니라 작은 자를 쓰신다. 권력과 돈을 추구하는 교회는 이미 교회가 아니다. 향린교회의 분가는 한국교회가 가야 할 길이다. 대형교회가 아니라 작은교회가 답이다.


태그:#향린교회, #한국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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