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태양보다 멀리 날게 해주렴.. 그대 곁에 갈수있게

입력 2013. 1. 8. 03:17 수정 2013. 1. 8. 0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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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 7일 월요일. 오리 깃털 이불과 태양풍. 트랙 #39 Queensryche 'Silent Lucidity'(1990년)+Beach House 'New Year'(2012년)

[동아일보]

미국의 드림 팝 밴드 비치하우스. 파스텔뮤직 제공

I 선배네 집 보일러는 얼마 전 동파됐다. 기분 좋게 회식을 마치고 돌아온 그 선배는 그날 밤 패딩 점퍼를 입은 채 잠자리에 들었다. 형수와 아기는 마침 처가댁에 내려가 있었다고. 거나하게 취한 선배가 혼자 웅크리고 누운 그날 밤 침대가 떠오르자 내 마음이 다 짠해졌다.

나야 워낙에 혼자 춥게 자는 데 익숙하다. 다행히 보일러는 아직 멀쩡하다. 얼마 전 들여놓은 오리털 이불이 밤새 내 체온을 지켜준다. 근데 그 오리털 이불이란 게, 오리 솜털이 아닌 깃털로 된 거다. 이불을 만지면 어딘가 죽어 있을 오리가 남긴 여전히 뻣뻣하게 곧은 깃대가 사각댄다. 손끝의 감촉에 잠시 몸서리치다 잠이 든다.

오리 깃털을 덮고 잔 이후 뭔가 붕 뜬 느낌이다. 매일 밤 깃털 이불이 부풀어 올라 양탄자처럼 날 싣고 날아다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1995년 겨울, 신촌의 지하 음악감상실은 백일몽의 스튜디오였다. 매캐한 담배 연기 속에 버드와이저 맥주를 들이켜며 커다란 스크린에 투사된 해외 록 뮤직비디오를 한나절 내내 보곤 했다. 미국 프로그레시브 메탈 밴드 퀸스라이크의 발라드 '사일런트 루시더티'를 봤던 것도 그 무렵이다. '아∼ 아∼' 하고 터져 나오는 아련한 후렴구와 함께 영상 속 아이의 침대는 태양풍을 받아 푸른 밤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날개는 하얀 침대 시트였다. 그날 이후로 난 몇 번이고 태양풍을 받아 날아오르는 꿈을 꿨다.

새해가 밝았구나. 나도 이제 ○○세. 17년 전 태양풍을 타고 떠난 광석이 형보다 내가 더 형이 돼 있다. 23일 첫 내한 공연을 여는 미국의 드림 팝(몽환적인 팝) 밴드 비치하우스의 노래 '뉴 이어'를 재생한다. 앨범('블룸'·2012년) 표지의 오돌토돌한 요철의 감촉이 오리 깃대를 떠올리게 한다. 여성 보컬 빅토리아 르그랑이 노래한다. "네가 늘 원했던 게 멀어지고 있니? …넌 지금 더 열려 있어/(차라리) 이 편이 나아." 그는 '쉘부르의 우산'을 만든 음악가 미셸 르그랑의 조카다. 우산을 펼치듯 이불을 두 손으로 털어 펼친다.

'날게 해주렴, 오늘밤. 태양보다 멀리. 그대에게 가깝게.'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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