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화학적 거세' 첫 선고..실효성·인권침해 우려 여전

2013. 1. 3.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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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10대 성폭행한 혐의 피고인에

"성욕과잉…스스로 통제 못해"

검찰의 약물치료 청구 첫 수용

유럽과 달리 본인 동의 없이 집행

"연구결과, 자발적 투여해야 효과"일시적 효과·투약 부작용 논란도

법원이 성범죄자에 대한 성충동 억제 약물치료인 이른바 '화학적 거세'를 명령하는 첫 판결이 나왔다.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1부(재판장 김기영)는 3일, 10대 청소년을 협박해 성폭행한 혐의(성폭력범죄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로 기소된 표아무개(31)씨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하고 신상정보 공개 10년, 전자발찌 부착 20년과 함께 성충동 억제 약물치료 3년과 치료 프로그램 200시간 이수를 명령했다.

■ 법원의 첫 판결

재판부는 "표씨가 성범죄로 인한 누범기간(형 집행 종료 뒤 3년)에 여러 피해자를 상대로 장기간에 걸쳐 범행을 저질렀다. 미성년자를 범행 대상으로 삼았으며 흥미를 위해 동영상을 촬영하는 등 죄질이 매우 나쁘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어 "표씨가 성욕 과잉이자 왜곡된 성의식을 갖고 있어 스스로 통제가 불가능한 상태다. 약물치료가 표씨의 과다한 성적 충동을 감소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고 약물치료 명령 이유를 밝혔다.

표씨는 2011년 11월부터 7개월 동안 스마트폰 채팅으로 만난 10대 청소년 5명과 성관계를 한 뒤, 이를 촬영한 동영상을 인터넷에 퍼뜨리겠다고 협박해 성폭행을 저지른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검찰은 지난해 8월 "극심한 성충동을 스스로 조절할 수가 없다"는 표씨의 진술 등을 바탕으로 법원에 약물치료 명령을 청구했다.

이번 판결은 '화학적 거세법'으로 불리는 '성폭력범죄자의 성충동 약물치료에 관한 법률'이 2011년 7월 시행된 이후 검찰이 청구한 약물치료 명령이 인정된 첫 사례다. 검찰은 표씨 외에도 6명에 대해 약물치료 명령을 청구해 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 약물치료 어떻게 하나?

성충동 억제 약물치료는 16살 미만 아동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른 19살 이상의 성도착증 환자로서 재범 위험성이 있는 피고인을 대상으로 한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진단 및 감정을 받은 검찰이 법원에 최장 15년까지 치료명령을 청구할 수 있다. 오는 3월부터 시행되는 개정 법률엔 범죄 피해자의 나이 제한이 삭제돼, 19살 이상 성인이 저지른 모든 성범죄 사건으로 청구 대상이 확대된다.

형 선고에 치료명령이 포함되지 않았다 해도 '화학적 거세법'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치료명령을 선고받지 않은 성폭력 수감자들 가운데 재발 위험이 인정되고 당사자가 동의하면 법원의 결정에 따라 약물치료를 할 수 있다. 또한 치료감호나 보호감호 도중 가출소한 경우엔 법무부 치료감호심의위원회가 보호관찰 기간(3년) 이내에 한해 치료명령을 내릴 수 있다. 법무부는 지난해 5월 상습적으로 어린이를 강제추행한 박아무개(45)씨에게 국내 처음으로 성충동 억제 약물치료 명령을 내린 바 있다.

성충동 약물치료 대상자로 결정되면, 형 집행이 종료되거나 가석방되기 전 2개월 안에 성호르몬 분비를 억제하는 약물 투여를 시작하고, 석방 뒤에도 법원이 선고한 치료기간 동안 석달에 한번씩 약물치료를 받아야 한다. 성샘자극호르몬 길항제(GnRH)라는 치료약물을 쓰는데,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생성을 억제하여 성적 충동이나 환상을 줄이고 발기력을 일시적으로 떨어뜨린다. 법무부는 이들 약물이 전립샘암 등의 치료제로 병원에서 오래 사용되고 있고, 부작용도 검증됐다는 입장이다.

■ 실효성·인권침해 논란

그러나 치료 효과의 실효성이 의심되고 인권침해 소지가 많다는 지적이 거듭 나오고 있다. 윤영철 한남대 교수(법학과)는 "관련 법을 먼저 시행한 유럽의 연구 결과를 보면 범죄자의 동의에 의한 자발적인 투여를 해야 효과가 있다. 당사자 동의 없이 강제로 투여한다면 치료 효과는 보지 못하고 인권침해만 부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독일이나 스웨덴 등 유럽 국가들과 달리 범죄자 동의 없이 강제로 약물 투여를 한다는 점에서 '치료'라기보다 강압조처에 가깝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장희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엄격한 처벌은 필요하지만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만 보는 우리 사회의 왜곡된 문화 등 성범죄가 발생하는 근본적 이유를 살펴봐야 한다. 치료라는 명목으로 약물 투여를 강제한다는 점에서 헌법이 최고 가치로 두고 있는 인간의 존엄성 보장에 어긋나는 형벌"이라고 말했다.

약물 투여 기간에만 성욕이 줄어들기 때문에 궁극적 치료라고 보기 어렵고 장기 투여로 인한 부작용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도 법에 규정되지 않아, 이와 관련한 법적 논란도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조애진 기자 ji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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