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바람 故황수관박사 뒤에 이런 고난이..
[동아일보]
최근 페이스북, 인터넷에서 퍼지고 있는 '공부가 너무 하고 싶었던 소년'이란 제목의 그림 파일(사진)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주인공은 지난해 12월 30일 급성패혈증으로 세상을 떠난 '신바람 전도사' 황수관 연세대 외래교수(67). 그의 부고를 전한 뉴스 대부분이 생전 약력과 의대 교수로서의 활동, 신바람 전도사가 된 사연 등에 집중한 것과 달리 이 그림 파일은 어린 황수관이 의대 교수가 되기까지의 입지전적 삶의 이야기를 잔잔하게 담고 있다. 누가 왜 만들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단지 파일 아래 영어로 '판타(Fanta)'라고만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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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경북) 경주 근처 안강이라는 곳에서 태어난 한 소년이 있었다. 소년은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중학교에 다닐 돈이 없었다. 학비를 벌기 위해 1년 동안 산에서 나무를 해 적으나마 학비를 준비했다. 그러다 포항에 가면 공짜로 공부하는 곳이 있다는 말을 듣게 됐다. 소년은 세 시간이나 걸어서 학교에 갔다. 하지만 교장(선생님)은 "너무 머니 포기하라"고 했다. 소년은 끝까지 우기고 애원해 입학할 수 있었다. 그 후 매일 오전 4시에 책 보따리를 짊어지고 먼 길을 통학했다.
고등학교를 어렵게 졸업한 소년은 사범대학에 입학해 잠시 교사 생활을 하다 더 큰 꿈을 품고 (대구대) 사회복지학과에서 공부를 했다. 그러다 의학에 관심이 생겨 의대 청강생으로 들어갔다. 의대 교수들은 그에게 온갖 수모를 줬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중간고사 때 시험지를 주지 않자 "나도 한 장 달라"며 항의하는 뻔뻔함도 있었다. 그리고 의대생들보다 더 훌륭한 답을 써서 교수들을 놀라게 했다. 그렇게 고인은 10년 동안 의학 수업을 청강했다. 졸업장도 못 받는 수업을 10년이나 청강했던 것이다. 그리고 의대 졸업장도 없이 연세대 의대 교수 공개채용에 지원했다. 마침내 유학파 출신, 명문대 의대 졸업생 등 많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당당하게 실력으로 연세대 의대 교수가 됐다.
'우리는 그를 신바람 박사 황수관이라 부른다.'
거칠고 조잡한 그림과 수식어도 별로 없는 글이 담긴 이 파일은 최근 며칠 새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인터넷을 타고 빠르게 확산됐다. 누리꾼들은 항상 웃던 그의 모습 뒤에 이런 어려운 시절이 있었다는 것에 놀라는 반응이다.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아도 모욕을 참아 가면서 10년이나 자신의 꿈을 위해 노력했던 의지에 찬사를 보냈다. 더는 그를 볼 수 없다는 것을 아쉬워했다. 한 누리꾼은 "그에게 있어 웃음이란 건강뿐만 아니라 어려움을 이기는 동력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썼다.
고인의 별세 이후 누리꾼들은 이 그림 파일을 자신의 블로그, 페이스북 등에 퍼 나르며 애도를 표했다. 또 고인이 지난해 12월 12일 병원을 찾았을 때 그를 알아본 병원 측이 '급행' 진료를 제안했지만 이를 고사하고 일반 환자와 똑같이 순서를 기다렸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추모의 열기는 더 깊어졌다.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돌보다 사고로 숨진 '철가방' 김우수 씨, 경험이 부족한 후배들을 먼저 내보내고 화재를 진압하다 숨진 김형성 소방장, 그리고 황수관 교수…. 세상이 왜 이렇게 됐느냐고 비난과 푸념만 하기엔 아직도 세상은 너무도 아름답다.
▶ [채널A] "면박 주던 교수가 내 시험지 보더니…" 故황수관박사 생전 인터뷰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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