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이제, 마음의 총을 내려놓죠
[동아일보]
존 레넌과 오노 요코는 1969년 캐나다 몬트리올의 퀸 엘리자베스 호텔 1742호실에 8일 동안 누워 평화시위를 했다. 이런 시위라면 자신 있다. '평생 휴가!' 동아일보DB |
어디 보자. 지구 멸망도 없었고. 나는 무사히 한 살을 더 먹겠구나. 이런.
내가 어른이 된 날은 언제였을까. 혼자서 머리를 감을 수 있게 된 날? 커피우유보다 카페라테가 더 좋아진 날? 산타클로스가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그 싱숭생숭했던 날?
지난주, 뉴욕의 허름한 호텔방에서 파키스탄계 영국 싱어송라이터 루머의 2010년 앨범 '시즌스 오브 마이 솔'을 줄곧 들었다. '사람들은 말하지/천천히/속도 좀 낮춰/다 태워버리지 마/다 보여주지 마/천천히…'라고 노래하는 '슬로'란 곡을 특히 반복해서 들었다. 다른 건 몰라도 날 죽음 앞에 한 발짝 더 데려다줄 이 시간만은 천천히 흘렀으면 좋겠건만, 또 한 해가 간다.
내 꿈은 어른이 되지 않는 거였다. 맨해튼에는 산타 복장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넘쳐났다. 수백 명의 산타가 날 지나쳐갔다. 남녀노소 몰려다니는 그들은 빨간 좀비 떼 같았다. 뭐가 그리 신나는지 고래고래 소리도 지르고 노래도 불렀다. 거리는 거의 산타 반, 인간 반이었다. 산타가 더이상 찾아오지 않는다면 내가 산타가 되는 것도 방법이겠구나.
매년 이맘때면 어떤 영화 한 편이 결말을 짓고 끝나는 듯한 기분이 든다. '12월 31일, 일시정지, 1월 1일' 하는 식으로. 다음 시리즈는 좀 쉬었다 시작될 것 같은 느낌 말이다.
1969년 12월. 뉴욕, 로스앤젤레스, 토론토, 로마, 베를린, 파리, 런던, 도쿄…. 세계 12개 도시 심장부에 흰색 바탕에 검은 글씨가 쓰인 커다란 광고판이 나타났다. '전쟁은 끝났다! 당신이 원한다면-해피 크리스마스. 존과 요코로부터.'
우리나라에서도 얼마 전 전쟁이 끝났다. 아니, 끝나지 않았지만 끝났으면 한다. 그 전쟁을 보고 있으면 가끔 어렸을 적 읽었던 반공 만화가 떠오른다. 서로가 서로를 태어날 때부터 자신과 다른, 뿔 달린 괴물쯤으로 보고 욕하며 지구상에서 몰아내려 한다. 모두들, 해피 크리스마스. 전쟁의 끝에서.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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