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헤어 메탈' 휘날리는 맨해튼의 밤

입력 2012. 12. 18. 03:15 수정 2012. 12. 18.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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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17일 월요일 비. 헬렌 헤이스의 유령.
트랙 #37 Whitesnake 'Here I Go Again'(1982년)

[동아일보]

뉴욕에 도착한 첫날(15일) 밤, 호텔 침대의 유혹을 가운뎃손가락으로 날리고 맨해튼 서쪽 44번가의 헬렌 헤이스 시어터(사진)로 향했다. 앤드루 로이드 웨버, 엘턴 존, 조지 거슈윈 같은 거장을 꺾고 내 맘을 차지한 건 '헤어 메탈'(hair metal·긴 머리에 과장된 의상과 무대 매너를 앞세운 1980년대 인기 헤비메탈)을 소재로 한 주크박스 뮤지컬 '록 오브 에이지스'였다.

극장 안은 록 공연장 같았다. 로비에서 술을 팔았다. 극장 안쪽 벽에는 트위스티드 시스터, 리타 포드의 공연 포스터와 위스키 광고가 덕지덕지 붙어 있다. 육중하게 귀를 파고드는 라이브 밴드의 굉음으로 막이 올랐다. 이야기는 꿈을 찾아 로스앤젤레스 선셋 스트립에 닿은 여주인공 셰리가 보수주의자들에 의해 폐쇄 위기에 처한 라이브 바 '더 버번 룸'의 종업원 드루를 만나면서 시작됐다.

2시간 동안 트위스티드 시스터, 나이트 레인저, 본 조비, 콰이어트 라이엇, 저니, 포이즌 등 '그 시절' 록 명곡 20여 곡이 쏟아졌다.

관객들은 좌시하지 않았다. 맘에 드는 대사, 재밌는 연기,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면 검지와 새끼손가락을 치켜들며 괴성을 질러댔다. 덩달아 나도 흥분하며 캔 맥주 큰 모금을 꿀꺽 삼키는 순간 '아차', 화장실 가고 싶으면 어쩔…. 1막과 2막 마지막 곡인 '히어 아이 고 어게인'과 '돈트 스톱 빌리빈'의 감동은 객석의 '떼창'이 있어 남달랐다.

밴드의 연주도 훌륭했는데 외모와 실력 모두 출중한 두 기타리스트는 알고 보니 1980년대 인기 그룹 나이트 레인저와 블론디의 실제 멤버였다.

그런데 뮤지컬이 공연된 극장의 안타까운 최근 사연이 극중 록 클럽 '더 버번 룸'과 묘하게 겹친다는 걸 안 건 숙소로 돌아온 뒤였다. 1912년 '리틀 시어터'란 이름으로 개관한 이 극장은 1983년 전설적인 여배우 헬렌 헤이스(1900∼1993)의 이름을 따 개명됐다. 극장은 최근 큰 공연 기업에 매각돼 내년부터는 간판을 바꿔 달 거란다. 헬렌 헤이스의 유령도, 나와 함께 로큰롤을 듣고 있었을까.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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