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경향〉[내가 주연이다]아침극·수목극·주말극 '종횡무진' 송옥숙

2012. 12. 13.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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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역따라 '팔색조' 몸짓은 익었지만 연기는 더 두렵죠"

연기자를 '팔색조'라고 한다. 자신이 맡은 배역에 따라 전혀 다른 인물을 창조해 매 번 변신하기 때문이다. 비구니 역을 맡아 강수연은 머리를 밀었고, 김명민은 죽음을 앞둔 루게릭 병 환자 모습을 실감나게 보이려고 몸무게를 20㎏ 이상 감량했다. 최민식은 능글능글한 범죄자 역할을 위해 살을 찌워 천연덕스러운 연기로 대중들을 사로 잡는다. 이렇게 혼신을 다한 연기자들은 한 작품이 끝나면 그 역할을 떠나보내는 후유증에 시달리기도 한다고 고백한다.

송옥숙이 대단한 연기자란 것은 이런 연유에서다. 그는 12월 현재 3개 프로그램, 그것도 아침드라마와 주말극, 수목드라마에 출연하며 각각 다른 캐릭터의 연기를 보여준다. MBC 수목드라마 < 보고싶다 > 에서는 남편을 잃고 딸마저 성폭행을 당한 후에 외국으로 떠나보내고 다른 소년소녀와 가족을 이뤄 사는 윤은혜의 엄마 역할을 맡았다. 현재 최고 시청률을 기록 중인 KBS 2TV 주말극 < 내 딸 서영이 > 에서는 재테크에 능하고, 딸을 좋은데 시집 보내려는 세속적인 사모님, 여고 동창인 사장 사모님에게 은근히 열등감과 스트레스를 받는 엄마로 등장한다. SBS TV 아침 연속극 < 너라서 좋아 > 에서는 야심만만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기업 회장님이다.

매일 아침엔 여성 CEO답게 화려한 옷차림과 굵은 목소리 톤으로 업무 지시를 하고, 수·목요일에는 친딸을 만나고도 딸을 위해 제대로 나서지도 못하며 눈물을 삼키는 촌스럽고 억척스러운 엄마가 되고, 주말엔 적당히 속물적이면서도 관계가 서먹서먹한 남편의 전처 아들을 위해 밑반찬을 만드는 졸부 사모님으로 변신한다. 겉옷만 바꿔 입기에도 정신 없을 텐데 송옥숙은 역할마다 자기만의 빛깔을 만든다. 아주 극과 극이 아니라 동년대의 아줌마인데도 미묘하면서도 섬세한 연기를 필요로 하는 역할이어서 더욱 그의 연기에 감탄하게 된다.

특히 < 보고싶다 > 에는 주인공 박유천·윤은혜보다 송옥숙에 대한 찬사가 쏟아진다. 극중 살해된 딸 수연(윤은혜)을 가슴에 묻은 엄마 명희 역으로 등장하는 그는 매회마다 절제와 폭발을 오고가며 그가 울 때마다 시청자들을 울게 만들어 눈물제조기란 별명도 얻었다. 극 초반, 그는 매일 폭행을 일삼는 데다 살인범으로 누명을 쓴 남편과 함께 사는 가난한 삶에 찌든 거친 아내였다. 자신을 찾아온 피해자 가족들에게 딸 수연을 내세우며 "데려가서 키우라"고 소리치기도 하고, 멍한 눈으로 수연을 바라보며 "같이 죽자"고 말하기도 한다. 이처럼 무심한 엄마인 듯 보였던 명희는 하나뿐인 딸 수연을 잃고 이성을 잃는다. 수연을 살해했다고 주장하는 강상득이 수연을 댐에 버린 범행을 재현하는 장면에서 송옥숙은 "수연이 살아있지"를 반복하며 진짜 넋 잃은 모습을 보였다. 겉으론 퉁명스럽고, 살갑지 않아도 결국 그는 하나뿐인 딸을 삶의 전부로 여긴 엄마였다. 떠나보낸 딸 대신 마음으로 품은 두 자식을 살갑게 대하며 수연을 잊은 듯 살아가지만, 딸의 살인범 강상득이 살해됐다는 소식을 듣고는 "내가 죽였어. 눈 감고도 죽이고, 눈 뜨고도 죽이고, 밥 먹으면서도 죽이고, 내가 천번 만번 죽였다"라며 그간의 아픈 세월을 표현해냈다. 그는 그리움과 한탄에 흐르는 눈물을 애써 감췄다. 딸을 잃어버린 어머니가 슬픔을 드러내기보다 감추고 외면하는 모습은 안방극장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네티즌들은 "드라마를 보면서 나도 같이 울었다" "맛깔 나는 연기와 모정 연기 모두 일품" "송옥숙, '보고싶다'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9회에서 결국 프랑스 교포 조이로 변한 윤은혜와 맞닥뜨린 명희는 조이가 수연이라는 사실을 단번에 알아챘다. 아무리 얼굴이 바뀌고, 주변 환경이 바뀌어도 엄마는 딸을 알아봤고, 딸도 엄마를 외면하지 못했다. 눈빛 하나 표정 하나로 그간의 모든 세월을 표현해낸 송옥숙과 윤은혜는, 드라마의 제목처럼 '보고싶다'란 말을 속으로만 절절이 나누는 모습으로 시청자들을 더 많이 울게 했다. "우리는 못 본 거야"라고 딸을 위해 돌아서는 송옥숙의 휘어진 등 모습만으로도 시청자들은 "폭풍 오열, 송옥숙은 역시 최고" 등의 찬사를 쏟아냈다.

MBC 수목드라마 '보고싶다'"전 이런 역을 맡으면 얼굴이 어떻게 나오든 상관없이 미친듯이 달려들어서 해요. 그래도 여배우인데 얼굴 좀 신경 써라'는 분들도 있지만 밑바닥 인생이면 외모 포기하고 강하게 나가죠. 그래서인지 시장 아줌마에서부터 재벌 회장님까지 폭 넓은 역할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간 강한 역을 많이 해왔는데 실제 제 성격이 그렇기도 하고 감정을 진하게 표현하는 역을 좋아합니다. '보고싶다'의 엄마도 감정적으로 아주 센 역이라 저한테 어울리는 것 같아요. 뭐든 그저 최선을 다하는 거죠."

초년생 시절부터 인정받았다. 1984년 < 낙지 같은 여자 > 로 처음 주연을 맡으면서 그는 산낙지를 직접 먹는, 낙지처럼 집요하고 동물적 감각을 지닌 여성을 연기했다. 관능적인 연기자로 인정받은 그는 결혼해 미국으로 떠났다가 다시 귀국한 후 수많은 드라마에 출연하며 흥행 보증수표로 자리잡았다.

SBS 아침드라마 '너라서 좋아' < 패션 70s > < 그대, 웃어요 > < 가시나무새 > < 브레인 > < 옥탑방 왕세자 > < 베토벤 바이러스 > < 뿌리깊은 나무 > 와 < 너라서 좋아 > 까지 그가 출연한 작품들은 그의 자기 자랑이 아니라 대부분 시청률이 높았다. 뿐인가, 극중에서 박유천을 비롯 숱한 꽃미남을 아들로 둔 덕분에 수시로 그들과 사심 없는 스킨십을 나누는 행운을 누린다. < 베토벤 바이러스 > 에서 비중은 적었지만 강마에로부터 '똥·떵·어·리!'라고 구박을 받는 아줌마, 마흔 넘어 첼로를 다시 들고 자아 실현을 하는 아줌마 역할로 중년 주부들에게 대리 만족을 선물했다. 작품마다 신들린 연기를 한다는 칭찬을 받고 동아방송예술대학 교수로도 재직 중이면서도, 송옥숙은 그러나 점점 연기가 두렵다고 한다.

"물론 세월따라, 연륜따라 연기는 익숙해졌죠. 하지만 바로 그렇기에 내가 기술적으로, 기계적으로 타성에 젖어서 할까 봐 늘 걱정이에요. 초심을 잃지 말자고 다짐하고 늘 조심스러워하니 연기가 시간이 갈수록 더 두려워요. 전 데뷔작부터 칭찬을 많이 받아서 제가 연기 천재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한 7년 정도 지나고 나서 데뷔작을 보니 닭살이 확 돋을 만큼 제 연기가 너무 창피한 거에요. 지금요? 연기가 늘 모자란 것 같아 매 순간 불안해요."

경향신문DB53세의 송옥숙은 앞으로 액션물에 출연해 와이어 연기도 해보고, 할리우드에도 진출하고 싶다고 한다. 어쩌면 1, 2년 후에 우리는 안방극장이 아닌 할리우드 액션극에서 송옥숙의 명품 연기를 확인할지도 모른다. 65세에 칸의 레드카펫을 밟은 윤여정처럼 그가 섹시한 드레스 차림으로 칸이나 베니스에서 손을 흔드는 장면을 볼 수도 있지 않을까.

< 유인경 선임기자 >모바일 경향 [ 경향신문| 경향뉴스진] | 공식 SNS 계정 [트위터][미투데이][페이스북]- ⓒ 스포츠경향 & 경향닷컴(http://sports.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경향닷컴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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