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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훈의 창과 방패] 유니폼 벗는 그날까지 박지성 스타일로 승부하라

조회수 2012. 12. 9. 13:5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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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 입지가 약해졌다. QPR로 옮긴 뒤 초반 10경기는 선발로 나선 게 과거가 됐다. 부상 등으로 5경기 연속 결장한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부상 회복 후 2경기 동안 조커로 출전한 것도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박지성의 이번 결장은 다르다. 그라운드를 밟지 못한 걸 넘어 엔트리에서까지 빠졌다.  이전보다 상황이 좋지 않은 건 분명해 보인다. 레드냅 감독이 경기 전 밝힌 부상자에는 박지성은 없었다. 또 박지성이 부상으로 빠진 공백을 메운 선수 중 몇몇은 부상 중이었다. 게다가 상대는 해볼 만한 위건. 그러나 박지성은 엔트리에서조차 빠졌다. 레드냅 감독의 머리 속에 박지성은 없었던 셈이다.

  박지성은 위기다. 위기설이 불거질 때마다 박지성은 잘 극복해온 게 사실이다. 그 때마다 팬들은 위기설을 운운한 언론을 나무랬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있는 위기가 없어진 것은 아니다. 위기가 있는 게 사실이었고 그걸 박지성이 잘 극복한 것 또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번은 맨유에서와는 많은 게 다르다. 맨유에서 박지성은 조력형 공격수였다. 훌륭한 공격수들이 워낙 많아 박지성은 수비와 궂은일을 하다가 가끔씩 한골을 터뜨려주면 그걸로 족했다. 그러나 QPR에 온 박지성은 해결사 역할을 담당해야했다. 그리고 해결사 역할을 하고 싶은 게 박지성의 마음이다. 그러나 그게 마음 먹은 대로, 버튼만 누르면 모든 게 180도 변하는 식으로 순식간에 달라질 수 있는 게 결코 아니다. 선수 생활을 해온 오랜 기간 동안 굳어졌고 익숙해진 역할. 그게 짧은 시간에 바뀔 수 있다고,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시간과 경험을 무시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박지성 해결사로 변해야 산다" "박지성 공격 본능을 보여줘야 한다"는 식의 접근은 말도 안 된다. 서른한 살이 되도록, 맨유에서 7시즌 동안 뛰면서 해온 게 어떻게 하루아침에, 불과 며칠 동안, 아니 몇 달이 주어진다고 해서 바뀔 수 있겠나. 그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데이비드 베컴보고 수비를 하라면 잘 할까, 리오넬 메시에게 풀백으로 뛰라고 한다면 그게 과연 바람직한 요구일까. 이에 대해 팬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공격적인 재능이 대단한 선수를 왜 수비수로 쓰느냐, 자기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걸 하도록 해주는 게 최선"이라고 말이다. 그건 수비수에게도 마찬가지다. 칸나바로에게 공격수를 시킬 수 없고 곽태휘에게 최전방 공격수로 활약하라고 지시해서는 안 된다. 그건 그들이 수비수로서 최고 활약을 보여줄 수 있고 그렇게 뛸 수 있도록 해주는 게 팀을 위해서나 개인을 위해서나 최선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다시 박지성으로 돌아와 보자. 박지성은 어쨌든 수비형 윙어로 보는 게 옳다. 맨유 같이 화려한 공격진과 스쿼드를 가진 팀에서는 박지성 같은 존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박지성은 왕성한 활동량, 성실한 자세, 포기하지 않은 근성, 팀을 위한 희생정신으로 맨유에서 7시즌을 보냈다. 그렇게 지낸 7시즌이 지금 박지성 모습을 만들어냈다. 물론 대표팀에서 박지성은 해결사 노릇을 했다. 맨유에서나, 대표팀에서나 박지성은 그대로 박지성이었다. 다른 게 있다면 그건 자신이 처한 환경이었고 극복해야할 상대였다. 맨유에서는 자신 말고도 공수에서 훌륭한 선수들이 많았고 상대하는 팀들은 대부분 맨유보다 약한 팀들이었다. 그 속에서 박지성이 해야 할 역할은 해결사가 아니라 조력형 공격수이며 공격보다는 수비였다. 그런데 대표팀에서 박지성은 모든 동료들로부터, 심지어 감독으로부터 절대적인 신뢰를 받고 있는 팀의 중심이었고 동료들은 모두 박지성을 따랐다. 상대하는 팀은 한국보다 대부분 약했다. 맨유에서 오랫 동안 굵직한 경험을 많이 쌓은 박지성에게 아시아 무대는 좁았고 그렇게 박지성은 아시아 무대를 호령했다.

 그런 박지성이 지금 처한 상황. 그걸 "위기다" "아니다"라는 식으로 논쟁할 필요는 전혀 없다. 그냥 시간이 흘러가면서, 팀을 옮기면서, 팀에서 요구하는 박지성에 대한 기대가 달라지면서 불가피하게, 그리고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일 뿐이다. 박지성은 나이가 들었고 그동안 맨유에서 보여준 활약상을 재현하는 것은 점점 힘들어질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속한 팀이 더 이상 세계적인 명문, 프리미어리그 우승후보가 아니다. 그리고 자신이 싸워야할 팀도 소속팀보다 강한 팀이 대부분이다. 그렇게 환경이 달라졌고 그 속에서 박지성이 해야 할 일은 생존을 위해 사력을 하는 것뿐이다. 누구나 시간이 지나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마련이다. 사람이라면 모두 그렇다. 그게 축구든 아니든 상관없다. 시간이 흐르면서 환경은 바뀌고 자신도 힘을 잃게 마련이다. 그게 자연의 이치이고 우주의 섭리다. 그건 인간이 거스를 수 없고 거스른다는 것은 신의 영역에 무모하게 도전하는 바보 같은 일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딱 한가지다. 점차 영향력을 잃어가는 자기 자신이 자연의 섭리에 따라 달라지고 있는 환경 속에 어떻게 적응하면서 어떻게 삶을 마무리하느냐만 남는다. 그렇다면 박지성은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이미 나왔다. 그건 '박지성 스타일'이다. 그동안 축구를 해오면서 자신이 가장 잘 했던 플레이로 마지막 승부를 거는 것이다. 흰색 페인트를 발에 묻혔다면 녹색 그라운드를 온통 하얗게 물들일 수 있는 왕성한 활동량, 어떤 상황 속에서도 포기를 모르고 최선을 다하는 불굴의 투쟁심, 어느 한 순간도 게으름을 모르고 항상 최선을 다하는 성실한 자세, 어떤 상황 속에서도 오직 팀을 위해서 모든 걸 바치는 희생정신, 그게 바로 박지성이 앞으로 보여줘야 할 모습이며 그게 박지성이 과거 가장 잘 했던 플레이다. 노련미와 경험은 여전하다. 그러나 활동량은 과거에 미치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맨유에서 90분 동안 쉼 없이 뛸 수 있었던 것은 과거 박지성의 모습이다. 지금은 그렇게 뛸 수 있는 시간은 90분을 밑돌게 마련이다. 시간이 갈수록 순발력, 민첩성이 떨어질 것도 분명하다. 그런 박지성을 바라보는 우리가 꼭 기억해야할 것은 출전시간, 공격포인트수, 출전경기수가 아니다. 왜냐하면 지금 박지성에게 중요한 것은 숫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중요한 것은 출전시간이 몇 분이든, 선발이든 아니든 등을 떠나 자신이 최고 기량을 보여줄 수 있는 시간 동안 박지성 스타일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그게 가장 박지성 답고 그게 바로 '박지성 스타일'이다. 박지성이 소나기골을 몰아치기는 어렵다. 현란한 패스워크로 어시스트를 계속 쌓아갈 리도 만무하다. 지금 그에게 필요한 것은 가장 박지성 다운 모습이다. "최선을 다 해서 열심히 뛰었다" "공수 연결 고리 역할을 잘 했다" "궂은일을 열심히 했다"는 평가. 이런 평가가 다시 박지성에게 내려질 때 그게 가장 아름답고 박지성에 걸맞는 평가이며 그게 박지성이 유니폼을 벗는 그 마지막 날까지 추구해야할 모습이다. 우리가 마지막 그날까지 박지성에 기대하는 모습, 그리고 지켜보고 싶은 모습, 그건 메시도, 루니도, 호날두도 아니라 바로 박지성 스타일이다. 출전시간, 골 수, 어시스트 수, 출전경기 수, 선발? 후보? 그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건 우리가 아는 박지성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데 하등 중요한 요소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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