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키드 부부' 4년, 아이 갖자는 말에 남편이..

2012. 12. 1.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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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가족

출산, 그것이 문제로다

맞벌이를 하면서 애를 낳지 않고 사는 부부를 '딩크족', 애 대신 애완동물을 키우는 부부를 '딩펫족'이라고 부른다죠. 요즘은 먹고살기가 힘들어 애 만들(?) 시간도 없다는 '딘스족'이란 신조어까지 나왔더군요. '무자식이 상팔자'란 말을 하면서도 부모님께서는 '애를 낳아봐야 진짜 인생을 알게 된다'고도 합니다. 많은 이들이 '결혼하면 애를 꼭 낳아야 한다'고 생각지 않잖아요. 결혼과 출산 그리고 부부의 행복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정용희(가명·40)·김미란(가명·37)씨 부부에겐 아이가 없다.

아이가 생기지 않아서도, 두 사람이 '무자식 상팔자'를 주장하는 딩크족이기 때문도 아니다. '조금만 더 있다가 갖자'며 미루다 보니 그냥 그렇게 됐다.

4년 전 결혼정보업체의 소개로 만난 두 사람은 한눈에 서로에게 반했다. '자유로운 영혼' 둘이 서로가 서로를 알아본 듯한 느낌이었다. "나이도 찰 만큼 찼고 양가 부모 성화도 귀찮으니 일단 결혼부터 하자." 번갯불에 콩 볶듯 결혼에 골인했다. 행여 잘못된 선택이면 어쩌나. "서로를 잘 알 시간도 갖고 신혼을 좀더 즐기자"고 했던 건 일종의 보험 성격이었던 셈이다. 결혼 초 아내 김씨가 "당분간 출산을 미루고 아이를 낳을 때까지 혼인신고를 하지 말자"고 했고, 남편 정씨도 군소리 없이 "좋다"고 했다. "애 없이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던 부부였다. 4년이 지난 지금, 부부는 돌이켜 생각한다. "과연 잘한 결정이었을까."

두 사람은 '쿨한 부부'로 살았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구속하려 들지 말자."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두 사람의 결혼생활 제1신조였다. "결혼했다고 생활이 꼭 달라질 필요는 없다"는 데도 두 사람의 생각이 일치했다. 전문직 맞벌이 부부인 두 사람은 상대방의 월급이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 알지 못했다. 공동의 통장에 생활비를 입금하면 그걸로 끝, 더는 알려고 들지도 않았다. 간혹 외식이나 쇼핑을 할 때, 한 사람이 계산을 하면서 한턱 내는 듯한 기분을 즐기기도 했다. 일하느라, 동료들과 어울리느라 늦을 수도 있는 일, 공연히 서로의 귀가시간을 챙겨가며 싸우지도 않았다. 서로의 전화번호나 이메일 비밀번호 같은 건 굳이 묻지 않았다. 야근이다, 회식이다 둘 다 일이 바빠 평일엔 얼굴 보기도 힘들었다. 특별히 불만은 없었다. 가끔 둘 다 일찍 들어온 날에 나란히 앉아 술을 마시는 등 꿍짝도 잘 맞았다. 주말이면 둘이 팔짱 끼고 영화를 보러 가거나 산으로 들로 놀러 다녔다. "참, 애인처럼 산다." 친구들이 부러워하곤 했다.

결혼은 했지만 구속은 말자!서로의 사생활은 묻지 않았다혼인신고도 하지 않았다"우리 애를 낳는 건 어떨까?"남편 제안했을 땐 아내가 거부아내 제안했을 땐 남편이 거부연인처럼 산다지만때론 아름다운 구속이 간절하다

두 사람이 이제껏 애 낳는 문제를 한번도 얘기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단지, 두 사람이 애를 원했던 시기가 달랐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랄까. 그러다 보니 진지한 고민과 대화로 이어지지 못한 채 출산 논의는 흐지부지해지곤 했다. "애를 낳아보는 건 어떻겠냐"고 먼저 얘길 했던 건 남편 정씨였다. 결혼하고 1년이 좀 지났을 때였다. 그 무렵 정씨의 친구들 대다수는 애 아빠가 돼 있었다. 정씨는 '애가 울어대 간밤에 한숨도 못 잤다'면서도, 하루종일 애 사진을 꺼내 보며 벙글대는 친구들의 모습이 부럽기도 했다. 명절 때마다 "애는 언제 낳을 거냐"고 묻는 친척들 잔소리를 듣는 것도 귀찮았다. 좀스러워 보일까봐 얘긴 안 했지만, '선배'다 '오빠'다 하며 아내가 이 남자 저 남자와 어울리는 게 신경 쓰였던 것도 사실이다.

"싫어." 아내 김씨는 정씨의 제안을 거절했다. "직장생활 하기도 바쁘고, 당분간은 지금처럼 지내는 게 좋다"는 거였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속내는 '남편이 못 미덥다'는 것에 가까웠다. "덜컥 애를 낳았는데 이 남자랑 평생 못 살겠다는 생각이 들면 어쩌나."

한번 거절당한 뒤로 정씨는 가급적이면 아이 문제는 얘기하지 않았다. "애를 낳으면 아무래도 여자인 아내 쪽이 훨씬 잃는 게 많을 텐데, 자꾸 조르면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질 것"만 같아서다. 또 원치 않는 아내에게 굳이 매달려 애를 낳자고 할 만큼 애를 원하는가 생각해보니, "꼭 그런 것만 같지도 않았다". 자연스레 애 얘기는 사라지고, 1년이 훌쩍 지나갔다.

이번엔 아내 김씨가 애를 원했다. "주변 친구들도 다 애를 낳고 행복하게 사는데 나만 유별나게 살 필요가 있나" 싶었다. 결혼이다, 출산이다 해서 함께 어울려 놀 수 있는 친구들도 점점 줄어들고, 소위 노는 것도 좀 지겨워졌다. 건강하게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생물학적 시간이 다해 간다는 것도 은근 신경이 쓰였다. 남편과의 사이가 시들해진 것 같다는 느낌도 김씨의 신경을 건드렸다. 바빠서 서로 얼굴 보기도 힘들고, 같이 있어도 남편과 특별히 할 말도 별로 없었다. 친구들도 자꾸 "남편 그렇게 풀어놔봐야 좋을 것 없다"며 부추겼다. "뭔가 돌파구가 필요하다"며 김씨가 떠올린 게 출산이었다.

좋다고 할 줄 알았던 남편은 의외로 시큰둥했다. "정말 원해? 애 있는 집 보면 귀여운 건 잠깐이고 고생만 잔뜩이라는데, 그냥 이대로 둘이 여유롭게 사는 게 더 낫지 않겠어?"라고만 했다. 당시 정씨는 직장에서도 인정받고 있었고, 가정 밖의 인간관계에서도 만족감을 느끼고 있었다. 굳이 생활에 변화를 주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자기 주장 강한 아내가 아이를 낳아 잘 키울 것 같다는 생각도 잘 들지 않았다. 김씨는 남편의 그런 태도가 은근히 섭섭했다. 투닥투닥 말다툼을 하는 날이 많아졌다.

'더 늦기 전에 아이를 가져야 하는 건 아닐까.' 두 사람 모두 이따금씩 생각을 한다. 하지만 누구도 주도적으로 얘길 꺼내지 않았다. 이러다 부부 중 한 사람에게 '다른 사람'이 생기면 그냥 '이별'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전처럼 쿨하게 헤어질 수 있을 것만 같지는 않다. 이런 부부에게 김미영 서울가정문제상담소 소장이 말했다. "지지고 볶지 않는 쿨한 결혼생활이었지만 서로 책임감이 없어 부부의 밀착관계도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다"고. 부부는 자문한다. "우리가 서로 백년해로를 꿈꿨던 적이 있었던가. 상대방이 내게 헌신할 만한 대상인지 아닌지 그것만 계산하고 살았던 건 아닐까."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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